‘공자의 도덕은 남성을 위한 도덕이었고, 어른을 위한 도덕이었고,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이었다. 때문에 공자의 도덕을 딛고 선 유교 문화는 정치적 기만과 위선, 남성적 우월, 젊음과 창의성의 말살 등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김경일)에서 제기된 공자 비판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사대와 당쟁이 가장 큰 문제로 꼽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의 사상이 2500년을 이어온 이유는 인(仁)사상, 중용(中庸)사상이 인간 세상의 정도(正道)이자 기준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실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고, 민생은 너무 불안하며 피폐했다. 올바른 정치 이념이 필요하다.
송나라에서 성리학이 부흥한 이유는 불교 이념 극복이란 의지가 컸다. 당나라 이후 불교가 번성하면서 부작용이 많았다. 나라가 어지러워질만큼 심했다. 이는 고려 불교의 부패와 마찬가지 상황이다. 정몽주와 정도전은 특히 맹자의 역성혁명론과 대국이 소국을 섬기고 소국이 대국을 섬기는 방법에 주목했다. 역성혁명론은 정도전이 이성계와 힘을 합치는 계기가 됐고, ‘이소사대’와 ‘이대사소’ 논리는 사대주의의 뿌리로 지목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학의 장점을 되찾고 이를 현재화하려는 이유는 많다. 유학의 균형을 중시하는 인본사상은 불교와 기독교 등 다른 종교와 갈등없이 조화를 이룬다. 당쟁의 대표적인 예인 예송 논쟁에서 보듯이 제사 등에서의 허례허식은 버려야 마땅하다. 하지만 제사를 통해 확인하는 끈끈한 가족애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유학을 당위의 차원에서 접근했다면 소통의 가능성이라는 관점도 필요하다. 포용과 관용이 본류임에도 그 반대편의 편가르기와 편협 이미지가 강하다. 유학의 맥과 핵심을 이해하며 조화와 통합의 실마리를 풀어낼 때 현재적 가치를 재확인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