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나라 법률·제도 만든 주공
- 제후로 남아 애민 사상 실천
- 공자, 대동사회 계보 만들어
- 조선, 유학을 국가 이념 삼아
- 정약용 등 실학사상 열매 맺어
- 그 가르침 결국 사람이 터전
“심하구나. 나의 노쇠함이여. 오래되었구나. 내가 다시 꿈에서 주공을 뵙지 못함이….”
공자의 탄식이 처연합니다. 롤모델인 주공(周公)을 꿈에서도 만나지 못한다니 공자께서 그만큼 기력이 떨어졌을까요, 아니면 세상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닐까요. 천하를 떠돌며 정치적 이상을 펴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였습니다. 3000여 제자를 거느리며 교육과 경전 편찬에 힘을 쓰지만 어지러운 나라 사정에, 백성의 고단함에 마음이 편치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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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모국인 노나라와 강대국인 제나라의 첨예한 이해 관계를 풀어낸 협곡 회맹을 표현한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의 한 장면. 공자가 회맹 장소로 향하고 있다. 영화사 화수분 제공 |
주공은 주나라 예악을 완성한 사람입니다. 폭군인 은나라 주왕을 무찌르자고 깃발을 세운 문왕(文王) 아들이요, 혁명에 성공한 무왕(武王) 동생입니다. 주공의 진가는 주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으며 확인됩니다. 신생 주나라의 무왕은 어린 성왕(成王)을 두고 일찍 세상을 뜹니다. 주공은 7년 동안 성왕을 도와 섭정하면서 주나라 법률과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성왕이 스무 살이 되자 주공은 왕권을 고스란히 성왕에게 넘겨줍니다.
‘금등지사’(金縢之祠) ‘삼토삼악’(三吐三握) ‘성강지치’(成康之治)는 주공이 남긴 교훈입니다. ‘쇠줄로 단단히 봉해 비밀 문서를 보관하는 상자’란 뜻의 금등지사는 억울하거나 비밀스런 일을 글로 남겨 후세에 그 진실을 전한다는 말입니다. 병든 무왕을 위해 주공은 ‘나의 목숨을 대신 가져가달라’고 하늘에 호소합니다. 이 간절한 바람을 적은 글귀를 나중에 성왕이 보고 주공의 진심을 깨닫는다는 고사가 전해옵니다. 주공은 찾아오는 사람을 만나고자 한 번 식사할 동안에 세 번이나 입에 든 음식을 뱉고, 한 번 목욕할 동안에 세 번 머리를 거머쥐고 나왔다고 합니다. 삼토삼악은 사람을 배려하는 지극한 정성입니다. 이를 본받으니 성왕과 아들 강왕(康王)이 다스릴 때가 가장 주나라다웠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를 성강지치라고 합니다.
이처럼 하늘에 순응하고 사람을 아끼는 일, 공자께서 주나라와 주공에 주목한 이유지요. ‘주나라 문화의 전승자’로 자임한 공자였습니다. 주나라의 예악과 법제는 중국 문화의 모범이지요. 그 밑바탕에 하늘의 명을 받아 은나라 주왕을 벌하고 주나라를 세웠다는 명분이 있습니다. 또 정의로운 주나라를 이끄는 원칙인 장자승계의 봉건제를 지켜낸 주공이 있습니다. 주공은 어린 조카의 지위를 탐하지 않았고, 공자의 고향인 노나라 제후가 됩니다. 주나라가 공자가 되찾고 싶어한 이상적 나라로 꼽히고, 주공이 공자가 닮고자 하는 사람인 까닭입니다.
공자는 이상향인 대동사회, 즉 나와 너가 함께 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요(堯)·순(舜)·우(禹)·탕(湯)·문왕·무왕·주공의 계보를 만들었습니다. 태평성세라는 요순시대를 기점으로 하나라 우임금, 은나라 탕임금, 주나라 문왕 무왕 그리고 주공으로 이어집니다. 유가의 맥, 도통(道統)입니다.
오정숙 명창의 판소리 ‘춘향가’ 가운데 어사 출도 대목(QR코드 또는 인터넷 주소 https://youtu.be/XZknnOWiV94)을 들으며 시작하겠습니다.
■이상향 요순부터 신유학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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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개혁군주인 정조의 사위 홍현주가 그린 산수도. 실학사상 대가 정약용이 글을 적어 더 각별한 작품이다.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213호. 동아대학교 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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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 마지막 편인 20편(요왈) 첫 장은 요임금에서 주공까지 도통을 보여줍니다. 요임금은 순임금에게 ‘윤집궐중’(允執厥中), 즉 중용의 미덕을 강조했습니다. 순임금도 우임금에게 같은 가르침을 베풀었습니다. 순임금은 선행과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절을 했다고 합니다. 탕임금은 ‘온 세상 사람에게 죄가 있다면 그 죄는 저 자신에게 있다’고 하늘에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주나라는 백성과 양식과 제사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너무 먼 이야기 아니냐고요. 중도를 지키고, 현명한 사람을 세움에 출신을 가리지 않는 일, 백성 보기를 다친 사람같이 하는 일, 가깝다고 너무 끼며 돌지 않고 멀리 있다고 잊지 않는 일인걸요. ‘임금은 껍데기고 백성은 알곡’이라고 했습니다. 애민 사상의 실천입니다. 그게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언제든 사람이 들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맹자’(孟子)에서는 요(堯)·순(舜)·우(禹)·탕(湯)·문왕을 거쳐 공자까지 연결하며, 송나라 주자(朱子)는 공자 뒤에 증자(曾子)와 자사(子思)를 추가하고 이것이 맹자를 거쳐 자신의 스승인 이정(二程)에게 이어진다 하며 도통을 확립했습니다.
주공부터 500년을 지나 공자, 또 1000년을 흘러 송나라에서 신유학이 부흥했습니다. 신유학의 중심은 주자입니다. 주자는 주렴계 소강절 정명도 정이천 장횡거 등과 ‘송조육현’으로 불립니다. 그는 공자와 맹자까지 원시유학과 노장사상, 불교사상을 흡수해 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불교의 융성과 부작용, 이민족의 침입에 따른 자각 등이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조선 유학, 그리고 오늘
유학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건 삼국시대였지만,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자리잡은 건 조선시대였습니다. 바로 송나라의 신유학, 성리학입니다. 고려 충신 정몽주, 조선의 기틀을 닦은 정도전을 거쳐 이황과 이이에서 조선 성리학이 꽃을 피웠고, 다시 박지원 정약용 등 실학 사상으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중국 성리학은 도통의 원리를 성즉리(性卽理), 즉 하늘이 내린 성품을 이치라 했습니다. 조선 성리학의 양대 거봉인 이황의 ‘성학십도’와 이이의 ‘성학집요’는 이를 발전시킨 성리학의 최종 버전이라고 평가합니다.
이처럼 25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유학의 가르침은 결국 사람이 터전입니다. 공자께서 인(仁)으로 강조했던 오륜(五倫)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원시유학에서 성리학으로, 하늘을 섬기는 경천(敬天)에서 사람을 아끼는 애인(愛人)으로 이어지는 교훈입니다. 스스로 깨우치고 단련하는 지혜, 나와 우리를 아우르는 지혜를 찾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국민가수이자 라틴아메리카 누에바 칸시온의 대모로 불리는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의 Todo Cambia(QR코드 또는 인터넷 주소 htps://youtu.be/98XkPHcmCv0)를 들으며 마치겠습니다.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