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영 중인 TV 드라마를 보면 본방 사수 욕구를 일으키는 작품이 별로 없다. 상반기 ‘부부의 세계’만큼 화제가 된 드라마도 없고, 하반기 기대작으로 꼽혔던 판타지 드라마들은 영 맥을 못 춘다. 판타지 드라마에 대한 대중의 이상기류는 올 상반기부터 시작했다. 방영만 하면 시청률 25%는 가뿐히 넘기던 스타 작가 김은숙은 ‘더 킹:영원의 군주’로 야심 차게 복귀했지만, 전작 ‘미스터 션샤인’에 훨씬 못 미친 시청률 11%대의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다.
시간여행 판타지는 2013년 ‘나인:아홉 번의 시간여행’을 시작으로 양산됐고, ‘신의’ ‘명불허전’ 이후 주춤했다가 2018년 다시 나타났다. 단순한 시간여행 설정을 떠나 평행우주와 대체 역사로 접근한 ‘더 킹’은 로맨틱 코미디 ‘밀당’에 살짝 판타지만 얹던 김은숙 스타일과 달라진, 대놓고 복잡한 판타지 세계관을 추구하다 당황한 수용자들과 간극을 못 좁힌 채 막을 내렸다. 하반기 기대작으로 꼽힌 ‘좀비탐정’과 ‘구미호뎐’도 성적 매력을 갖춘 남성 몬스터를 내세웠지만, 한국 드라마에서 반복된 이물(異物) 클리셰의 한계를 못 벗어난 채 제자리걸음 한다.
대중은 왜 판타지에서 빠져나오는 걸까. 지금 대중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건 삶의 처절함이 보이는 리얼리티 드라마이다. tvN 의 8부작 ‘산후조리원’은 여성 시청자의 지지를 얻으며 선전하고 있다. 임신·출산·육아 전쟁에서 사투를 벌이는 주인공들 모습이 ‘공감률 100%’를 자아낸다는 댓글이 쏟아진다. 이는 드라마 작가가 직접 체험한 산후조리원 공간에서 여성이 산모라는 변화 과정을 통해 엄마와 여자로 살아가는 데 대한 공감의 철학을 전달하기에 가능하다.
‘청춘 기록’ 역시 치열한 20대를 사는 청춘을 통해 더는 젊음이 자산이 아닌 세대의 모습을 비춘다. 이들이 ‘현타(현실자각타임) 오는’ 이 시대에 살아남는 법이란 끝이 안 보이는 지옥과 같은 체험, 삶의 현장을 버티는 것뿐. 드라마는 결국 버티는 자만 살아남는 것이란 슬프고도 아픈 희망 메시지를 던진다. 전쟁터 같은 일터에서 돌아와 몸을 누이며 바보 같지만 꼭 나를 닮은 모습이 나오는 TV를 보며 히죽 웃다 잠든다. 고단했던 하루가 또 간다.
동명대 외래교수·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