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생적으로 부산 DNA를 가진 사람도 아니요, 어린 시절 잠시 머물렀다가 30대에 부산을 찾아온 ‘이방인’이다. 부산이 마냥 좋았던 그 이방인은 부산에 스며들기 위해 부지런히 갈맷길을 걸었으며 부산 남자와 결혼했다. 이제 15년 가까이 살다 보니 부산이 어떤 곳이며 어떤 속살을 가졌는지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도 같다.
부산 출신 인물 1호를 꼽는다면 나훈아 설운도 같은 연예인부터 베풂의 삶을 실천한 장기려 의사와 이태석 신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말하는 이 사람은 묵묵히 40여 년 자기 길을 걷는다는 점에서 투박하고 우직한 부산 정서와 가장 잘 맞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가수 최백호. 하얀 서리가 내려앉은 머리칼과 주름 속에 그의 인생이 켜켜이 쌓여있다. 어릴 적 나는 언니들 보물단지 속 LP판에 흠집을 좌악 내는 대형사고를 치고 친구 집으로 도망가곤 했다. 그때 내 손에 잡혔던 음반의 주인공 최백호는 세월에 묻혀있다 IMF를 거치며 ‘낭만에 대하여’와 함께 다시 세상에 나왔다.
‘낭만에 대하여’는 첫사랑 찬가이자 중년을 향한 쓸쓸한 위로이면서 우리 시대 낭만을 새로 정의한 노래다. 사실 낭만이 별건가. 비 오는 날 단골 다방에서 도라지 1%도 안 들어간 ‘Torage 위스키’ 시켜놓고 마담과 시답잖은 농담을 해가며 사는 것도 다 인생이고 낭만인 거지. 나는 울적한 날이면 송정에서 기장 일광을 거쳐 그의 고향 좌천에 잠시 멈췄다가 서생을 달려 포항 영일만을 잇는 ‘최백호 낭만 드라이브 길’을 무수히도 달렸다.
최백호는 멈추지 않고 젊은 세대와 소통하며 끝없이 정진한다. ‘부산에 가면’은 최백호가 부를 때 세월의 더께가 느껴져 짙고 아련하다. ‘부산에 가면’ 가사를 새겨본다. 부산에 와도 이제 없는 그녀, 세월이 흘러 서울로 갔는지, 어딘가에서 첫사랑을 잊은 채 조용히 살고 있을지. 부산역에 도착하면 긴 머리 휘날리며 마중하던 그녀를 더는 만날 수 없다는 슬픔. 너무나 달라진 부산역과 광안리, 가슴이 아린다. 최근 발표한 ‘우리들의 이별’도 바다의 아들 최백호가 느껴진다. ‘우리들의 이별’과 ‘청사포’를 들으며 청사포를 걷고 싶다.
동명대 외래교수·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