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이자 현직 교도관인 그녀
-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 데뷔 10년 만에 첫 소설집 펴내
- 교도소에 수감된 인간들의 군상
- 세심하게 관찰하고 생생히 기록
- 죄와 속죄·갱생의 가능성도 물어
소설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작가가 허구로 만들어 낸 하나의 세계이다. 그래서 소설은 세계의 축소판이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현실을 본다. 소설 속 인간군상을 보면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만날 때 소설은 더 흥미롭다. 이시은의 소설집 ‘고래 365’를 그런 기분으로 읽었다. 이 소설집의 작품들은 교도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필자에게 교도소는 아직도 경험해보지 못한 생경한 공간이다. 면회를 딱 한번 가본 적이 있는데, 접견실 안에서도 답답하고 두려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곳이 출입금지 구역이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그 안에는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범죄자나 부패한 권력층의 이야기 말고,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범죄나 교도소를 다룬 몇몇 드라마도 보았고 심지어 예능의 소재가 된 감방생활도 보았지만,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고래 365’는 교도소라는 낯선 세계를 생생하게 열어준다. 교도소라는 공간의 특수성보다 눈에 띄는 건 살아 있는 인물들이다. 소설에는 교도소에 수용된 사람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목도하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소설이다. 이시은 소설가는 또 하나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교도관이라는 직업이다. 현직교도관이 교도소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라는 점이 궁금증을 자극했다. 이시은 소설가를 강원도 춘천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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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도소라는 낯선 세계를 소재로 소설 ‘고래 365’를 쓴 이시은 작가. 현직 교도관이기도 한 그를 강원도 춘천 소양강변의 카페에서 만났다. |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
이시은 소설가를 만나러 간 날, 춘천은 흐렸다. 작가와 함께 다니는 춘천은 흐린 하늘과 물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소양강댐에도, 강에도, 산에도 안개가 자욱했다. 강원도의 늦가을을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물과 안개의 도시’ 춘천은 제대로 보았다.
이시은은 경북 청송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춘천에서 살고 있다. 2010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손’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문학충전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등단한 지 10년 만에 첫 소설집을 냈어요. 늦었지요. 등단 전에는 애를 많이 태웠습니다. 작품을 응모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거든요. 최종심에 오르기도 했지만 당선소식이 오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점을 치러 갔지요.” 점을 치러 갔다는 고백에 귀가 솔깃했다. 이렇게 솔직한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이름을 바꾸라더군요. 이름도 지어주었죠. 그 이름을 받고 바로 등단했습니다.” 굳이 본명을 묻지 않았다. 그는 그냥 소설가 이시은이다.
“저는 소설을 쓰면서 스스로 위안을 받았습니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소설을 쓰는 동안 성장했고, 소설이 저를 위로했지요. 등단 이후에 소설가로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 저의 직업이 교도관이라는 걸 알고 나면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나의 직업일 뿐입니다.”
그는 ‘수용자’라는 말을 사용했다. ‘재소자’라는 말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수용자라는 단어가 조금 낯설었다. “교도소라는 공간에 수용돼 있는 사람들이죠. 우리는 수용자들을 바라봅니다. 혹시 위험한 상황이 발행하지 않을까 보는 거지요. 그것을 ‘계호’라고 합니다. 그 사람의 표정을 보면, 어떤 삶의 내력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어떤 죄목으로 교도소에 들어왔는지 알기 전에 그 사람을 보면 평범한 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그런 범죄를 저질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때도 있죠.” 사람을 오래 바라본다는 것, 대충 보는 것이 아니라 세심히 바라보는 것. 교도관의 시선으로 보고 만난 세계와 사람들은 소설가의 손에서 작품과 작중인물이 되었다.
■‘죄’와 ‘속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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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 365-
이시은 지음/ 북인 |
높고 견고한 교도소의 담장은 이시은이 말하는 ‘수용자’와 ‘일반인’을 구분한다. 그들은 어쩌다가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수감되었을까. 알고 보면 사연과 이유가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벼랑 끝까지 내몰렸거나, 막다른 상황에서 인간 내부에 잠재한 악이 폭발했거나, 통제할 수 없는 불운이 찾아왔거나…. 범죄자가 되기까지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표제작 ‘고래 365’에는 불운한 남자가 있다. 고래잡이를 꿈꿨으나, 상업 포경 금지로 꿈이 좌절됐다. 남자는 조리사로 살았다. 영양탕집, 중국집, 삼계탕집, 만둣집까지, 남자의 삶은 뜨거운 불에 내던져졌다. 불 가까이에서 일한 탓인지 남자는 불임판정을 받았고, 아이를 열망하던 아내는 돌아섰다. 종교에 빠진 아내는 딴사람으로 변했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 아내는 쓰레기만두 사건을 꾸며내 허위 고발로 남편을 감옥으로 보냈다. 고래잡이가 되고 싶었던 남자는 도리어 작살에 찔린 고래가 되고 말았다. 마음으로 피를 흘리는 남자는 감옥에서도 취사장에서 조리사로 일했다. 남자는 손만 뻗으면 칼을 쥘 수 있다. 이시은은 소설에서 ‘죄’를 저지른 사람을 다루면서 ‘속죄’의 가능성을 묻는다. 억울함과 분노를 참을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고, 엉망이 되어버린 삶을 딛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소설에는 과격한 언어가 툭툭 튀어나온다. 교도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작가가 바라본 여러 삶의 내력들이 그려지기에 그렇다. 그 언어들과 삶이 교도소 밖에 있는 필자를 긴장시킨다. 교도소 안에 사람이 있었구나. 그 당연한 사실을 마치 처음으로 알게 된 기분이었다. 경험해보지 않았던 공간을 읽는 것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만나게 한다. 소설집 ‘고래 365’는 교도소에 갇히기 전에도, 갇힌 후에도 굴곡진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한다. 교도소 밖에 있는 우리는 갇혀있지 않는 것일까. 우리 역시 ‘삶’에 갇혀 있는 건 마찬가지다.
이야기를 마칠 때쯤 비가 내렸다. 눈에 보이는 식당의 간판이 온통 닭갈비와 막국수로 이어지는데도, 작가는 가장 맛있는 막국수집을 찾아다녔다. 춘천에 있는 동안 내내 필자를 가만히 바라보는 작가의 보살핌 ‘계호’를 받은 기분이다.
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