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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와 21세기 한국학 <16> 중국 ‘고사’의 신화와 ‘삼국유사’

中 ‘고사(古史)’ 속 신화 문명 우월성 강조…일연, 민중의 주체성 담아 차별화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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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12-13 19:20:55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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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철, 사마천의 ‘사기’ 비판하며
- 체제·대상 이어받아 ‘고사’ 서술
- 기록 중시하고 문장 격식 맞춰
- 신화로 ‘화이론’‘중화의식’ 표현

- 일연은 기록·구전 대등히 다뤄
- 상하의 화합·내외의 융합 등
- 민중이 바란 보편적 가치 담아
- 주체적 문화 이으며 대비 이뤄

유교사관에 입각해 저술된 ‘삼국사기’에도 신라 시조인 혁거세와 탈해, 알지 그리고 고구려 시조 주몽 등의 신화가 실려 있다. 이는 삼국이 고대에서 중세로 전환되던 시기에 건국되면서 그 주역이 숭배되고 신화화되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 신화가 수록되었다면, 비슷한 시기 고대사부터 역사를 서술한 중국의 통사들에도 신화가 실렸을 것이다. 실제로 그러했으니, 신화를 수록한 대표적 역사서는 북송 때 정치가이자 문장가 소철(蘇轍, 1039∼1112)이 쓴 ‘고사(古史)’(60권)와 정초(鄭樵, 1104∼1162)의 ‘통지(通志)’다. ‘통지’에 대해서는 이미 살펴본 바 있고, 또 신화에 관한 한 ‘고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식과 서술 방식을 보여주므로 여기서는 ‘고사’를 집중적으로 살피고 ‘삼국유사’와 비교한다.
   
농업과 의약의 신으로 알려져 있는 염제 신농씨.
■소철의 사마천 비판

‘고사’는 특이한 통사(通史)다. 아주 새롭게 쓴 것이 아니라 사마천의 ‘사기’를 비판하면서 ‘사기’의 체제와 서술 대상을 이어받아 고쳐 썼기 때문이다. 삼황(三皇)에서 진시황까지 ‘본기’(7권), 오태백(吳太伯)에서 전경중(田敬仲)까지 ‘세가’(16권), 백이(伯夷)에서 골계전(滑稽傳)까지 ‘열전’(37권) 등으로 이뤄져 있다. 권1과 권2에 복희와 신농, 소호 등의 신화를 실은 것은 ‘사기’와 아주 다른 점이다.

   
‘고사’의 서문 및 신화인 ‘삼황본기’.
소철은 ‘고사’의 서문인 ‘원서’에서 이렇게 썼다. “태사공(太史公, 사마천)이 처음으로 편년체 서술 방법을 바꾸어 본기, 세가, 열전을 마련하고 오제(五帝)와 삼왕(三王, 하·상·주 세 왕조의 시조) 이후를 기록했으니, 후세에 바꿀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사람됨이 얄팍하고 배우지 못한 데다 꼼꼼하지 않고 쉽게 믿었다. … 전국 시대에 제자백가의 변사들이 각자 책을 저술하면서 옛일을 늘이거나 줄이고는 스스로 믿었는데, 그런 한때의 주장을 사마천은 모두 믿었고 심하게는 세속에서 서로 전하는 말을 채록해서는 옛글이나 오래된 이야기를 바꾸어버렸다.”

‘사기’는 본기, 세가, 열전, 표와 지 등으로 구성돼 수많은 인물과 사건이 서로 겹치면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그 때문에 착오와 모순도 적지 않다. 그것을 두고 소철은 “사람됨이 얄팍하고 배우지 못한데다 꼼꼼하지 않고 쉽게 믿는”(其爲人淺近而不學, 疎略而輕信)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역사가로서 자질을 문제 삼았다. 또 전국시대에 변사들 즉 제자백가 사상가들이 제멋대로 지은 저술들과 세속에서 구전되는 말을 채록해 중요하게 다룬 점 또한 문제로 삼았다. 이는 구전보다 기록을, 창의적인 글보다 오래도록 권위를 누린 글을 더 중시했음을 의미하는데, 지극히 중세적인 인식이다. 또 소철은 “성현이 남긴 뜻을 덧붙여서 써넣어 후세에 분명하게 보여주고 득실과 성패에 이르러서는 그렇게 된 까닭을 모두 따졌다”고 말했다. 성현의 뜻을 전하고 정치적 득실과 성패를 따지고 밝혀 후세 사람에게 분명하게 보여주려는 것은 중세 내내 중시된 유교사관이다.

소철과 달리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기록과 구전을 대등하게 다루었으며, 민중의 이야기를 그 자체로 존중했다. 민중 또한 역사의 한 축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깨닫고 그들이 경험한 세계와 역사적 진실이 이야기에 생동하게 표현되어 상층 지배층이 은폐하거나 왜곡한 세계관을 따지고 뒤집는 구실을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고사’의 신화들과 그 의미

   
‘고사’의 저자인 소철. 아버지 소순, 형인 소동파와 함께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다.
유교적 인식이 강한 소철이 사마천이 ‘사기’에서 배제한 신화들을 ‘고사’에 실은 것은 꽤 의외다. ‘고사’ 권1의 ‘삼황본기(三皇本紀)’는 태호(太昊) 복희씨(伏羲氏),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 등의 신화다. 사마천이 오제(五帝)에 넣은 헌원씨를 소철은 삼황에 넣었고, 그 대신 소호(少昊) 금천씨(金天氏)를 오제에 포함시켰다.

소철은 복희의 신화에서 “태호는 복희씨이며 풍성(風姓)이다”고 한 뒤 천지의 형상과 짐승들의 무늬를 살펴 팔괘(八卦)를 그린 일부터 혼인하는 일, 사냥과 고기 잡는 방법, 짐승을 기르는 일 따위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서술했다. 이어 신농씨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 “염제는 신농씨이며 강성(姜姓)이다. 화덕(火德)으로써 목(木)을 이어 화사(火師)가 되어서 ‘불’의 이름을 갖게 되었으니, 그 때문에 염제라 한다. 나무를 깎아서 보습을 만들고 나무를 구부려 쟁기를 만들어 백성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으므로 신농이라 한다. 처음으로 저자를 두어서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바꾸게 했고, 초목의 온갖 약을 맛보고서 질병과 고통을 고쳤으며, 그의 아들 주(柱)는 온갖 곡식과 남새를 심을 줄 알았다. 오제의 시대에 오곡의 신으로서 제사를 지냈고, 자손들이 대대로 전하다가 황제에게 멸망했다. 황제 또한 신농의 후예인데, 그의 덕이 달랐기 때문에 다른 이름과 다른 성을 썼다.”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격식에 맞다. 구전되는 이야기의 느슨함과 엉성함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소철의 붓끝에서 신화가 아주 다른 꼴을 갖췄다고 할 만하다. 일연이 민중의 이야기를 전혀 다듬지 않고 엉성해 보이는 그대로 실은 것과 대비된다.

소철은 복희와 신농뿐 아니라 다른 제왕에 대해서도 주로 그들이 한 일들을 나열했다. 이렇게 일을 중시한 까닭을 소철이 스스로 밝혔다. “사마천에 이르러 본기에 오제를 두면서 황제(黃帝)를 첫머리로 삼을 때 복희와 신농을 버리고 소호를 몰아내고는 제왕은 모두 황제에서 나왔다고 했다. 아마도 세계(世系)를 실마리로 삼고 그 일을 실마리로 삼은 게 아닌 듯하다.(盖紀其世, 非紀其事也.) 그래서 나는 그 일로써 말미암았다.” 사마천이 황제에서 이어진 혈통을 중시한 데 대해 소철은 혈통보다 업적이 제왕의 요건임을 강조한 셈이다.

삼황을 비롯한 신화적 영웅들은 인간의 삶에 긴요한 갖가지 방법과 제도를 마련하며 문명의 기틀을 다졌다. 소철이 ‘일’로써 계보의 축으로 삼은 것은 그런 문명화 과정과 중화의 우월성을 되새기고 과시하기 위해서다. 사마천이 ‘사기’에서 흉노, 남월, 동월, 조선, 대완(大宛) 등 주변 민족의 유래와 역사를 한낱 ‘열전’에 서술함으로써 중화가 문명의 중심이어서 우월하고 주변 민족은 문화적으로 열등하다는 화이론(華夷論)을 구체화하고 중화의식(中華意識)을 공식화한 것을 소철은 신화를 통해 표현한 셈이다.

■중세의 신화와 오늘의 문화

‘고사’의 신화들은 매끈한 한문으로 표현되어 지배층이 자부하는 중화 문명의 우월성을 적절하게 보여준다. ‘통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일찌감치 구전이 사라진 여파인데, 민중적 진실이 더욱더 설 자리가 없어졌음을 알려준다.

반면 ‘삼국유사’의 신화들은 거친 한문으로 표현되어 구전에 가까우며, 민중이 바라던 대등, 상하의 화합, 내외의 융합 등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다. 중국에서 유무형의 온갖 문화를 2000년 동안 끊임없이, 게다가 통짜로 받아들였던 한국의 문화가 중국의 아류가 되지 않은 까닭이며, 근래에 한류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까닭은 모두 민중이 상층의 횡포에 맞서 주체적인 문화를 이어오면서 상층 문화에도 영향을 끼쳐왔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오늘날 중국이 한국 문화를 자국 문화라 우기면서 한국인의 창작물을 도용하는 지경에 이른 것은 민중의 주체성과 창조성이 오래도록 억눌린 결과다.

정천구 고전학자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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