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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와 21세기 한국학 <17> 일본 ‘신황정통기’와 ‘삼국유사’

日신화 “천황은 神의 혈통” 우월함 강조 … 근대 군국주의 키웠다

  • 정천구 고전학자
  •  |   입력 : 2020-12-20 19:41:46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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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카후사가 쓴 ‘신황정통기’
- 日은 남들과 다른 ‘신국’이며
- 혈통 순수성 우월함 원천 삼아
- 민족 아닌 천황의 신화로 변모
- 지배층 절대적 권위 공고히 해

- 차별과 배척 없는 삼국유사는
- 한국 민중이 지배층 논리 맞서
- 대등한 관계 가졌단 사실 표현

11세기 이후 대륙과 한반도에 휘몰아친 전쟁과 격변에서 동떨어져 있었을 법한 열도 일본에서도 통사가 편찬되고 신화가 중요하게 거론되었다. 사실 일본도 카마쿠라 막부의 무신 정권이 들어선 뒤 몽골의 침입을 받았으며, 간신히 물리친 후에는 무사 집단 내에서 분란이 일어나 막부가 흔들렸다. 이때 천황가 내에서 황통(皇統) 싸움이 벌어지면서 귀족과 승려들도 갈라져 대립하고 싸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윽고 막부가 무너지고 고다이고(後醍醐, 1318∼1339 재위) 천황이 친정(親政)을 실시했으나, 곧 반기를 든 무리가 나와 60년에 걸친 남북조내란(1336∼1392)이 시작됐다. 이 혼란기에 고다이고 천황을 지지하며 내란의 중심에 있었던 귀족 지식인 키타바타케 치카후사(1293∼1354)가 쓴 통사가 ‘신황정통기(神皇正統記)’(1339)다. 이 역사서에 실린 신화를 살펴보면서 ‘삼국유사’와 간단하게 비교하기로 한다.

■‘신황정통기’의 신화

   
일본 열도를 낳은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남매이자 부부 신.
‘신황정통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신대(神代)’, ‘지신(地神)’, ‘인황(人皇)’이다. ‘신대’와 ‘지신’ 두 부분이 신화고, ‘인황’은 제1대 천황인 진무(神武)부터 96대 고무라카미(後村上) 천황까지 계보를 따라 편년 형식으로 서술된 역사다. ‘인황’에도 신화로 볼 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

‘신대’는 하나의 기운이 뭉쳐 있던 혼돈 상태에서 음기와 양기가 나뉘어 하늘과 땅이 형성되고, 그 안에서 갈대의 싹과 같은 물체가 생겨나 ‘쿠니노토코타치노 미코토(國常立尊)’라는 신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어 이 신이 지닌 목·화·토·금·수 오행(五行)의 덕이 각각 신으로 변했다고 한다. 일본 신화를 최초로 기록한 ‘고사기(古事記)’(712)에는 쿠니노토코타치 이전에 다섯 천신이 나오며 도교와 관련된 내용이 전혀 없었다. ‘고사기’ 이후 도교의 우주생성론에서 영향을 받아 신화가 변모했음을 알 수 있다.

쿠니노토코타치 다음에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두 신이 등장하는데, 음양의 두 기운이 나뉘어서 된 신들이라 한다. 쿠니노토코타치는 이 두 신에게 “도요아시하라노 지이호노아키노 미즈호노쿠니가 있으니, 너희가 가서 그곳을 다스려라”고 말하며 창을 주었고, 그 창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굳어 하나의 섬이 되었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그곳에 내려와 궁전을 짓고 부부의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두 신은 여덟 개의 섬을 낳고 산천초목도 낳았는데, 일본 열도가 생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뒤에 천하의 주인이 될 일신(日神)을 낳았으니, 여신인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다.

‘지신’은 아마테라스를 1대로 해서 5대 후키아에즈노 미코토까지 이어지는 다섯 신의 신화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신들은 각기 수십 만년씩 천하를 다스렸다고 하는데, 이런 시간관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 아마테라스의 동생 스사노오가 사나운 성질 때문에 지하세계에 쫓겨났다가 돌아오고 싶어 했을 때, 아마테라스는 그 마음이 깨끗한지 어떤지 확인해 보겠다며 “점치는 동안에 여자가 태어나면 사악한 마음이 있는 증표고, 남자가 태어나면 깨끗한 마음이 있는 증표다”고 말한다. 아마테라스 자신이 여신임에도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는 인식을 보여주는데, 이는 중세 일본 지배층의 사고가 배어든 결과로 해석된다.

   
키타바타케 치카후사와 그가 쓴 통사인 ‘신황정통기’.
■신국론과 정통론

‘인황’을 서술하면서 치카후사는 신들에게 붙여진 ‘미코토(尊)’가 인간의 시대에는 ‘스메라미코토(天皇)’라 해서 천황에게 붙여진 호칭이 되었다고 했다. 이는 일본의 천황들이 신들의 직계라는 뜻이고, 일본은 신국(神國) 곧 ‘신의 나라’라는 뜻이기도 하다. 인황의 1대인 ‘진무(神武) 천황’에 나오는 “진무 천황은 야마토국(大和國) 가시하라(橿原)에 도읍을 정하고 궁전을 지었다. 궁전의 제도는 천상의 제도와 동일했다”는 대목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일본을 신국으로 보는 관념은 ‘일본서기(日本書紀)’(720)에서 설핏 나타났다가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實錄)’(901)에서 한층 뚜렷해졌다. 그 책에는 869년에 신라의 선박 두 척이 일본의 경계를 침범하자 이세(伊勢) 신궁에서 “우리 일본은 신의 나라다. …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를 신국이라고 두려워하게 하소서”라는 기원문을 올린 일이 기록되어 있다. 처음에 ‘신국’은 ‘신이 지켜주는 나라’라는 정도의 의미를 가졌을 뿐이다. 이는 단군신화나 주몽신화 등에서도 볼 수 있는 소박한 관념이다. 그런데 몽골의 침입을 받고 또 내란을 거치면서 이 신국의 개념은 크게 변하는데, ‘신황정통기’가 그런 면을 잘 보여준다.

‘신황정통기’의 ‘서론(序論)’에서 치카후사는 “오오야마토(大日本)는 신국(神國)이다. 아마츠미오야(天祖, 쿠니노토코타치)가 처음 나라의 근본을 세우고 태양신 아마테라스가 오랫동안 자신의 계통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이는 우리 일본에만 있는 일이다. 다른 나라에는 이런 예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일본]를 신국이라 한다”고 썼다. 일본은 신국이어서 우월하다는 의식이 뚜렷하다. 이런 신국론에 정통론(正統論)이 더해지면서 일본 신화의 특수성은 강화된다.

치카후사는 “황통에 직계 자손이 있을 경우는 방계의 황자, 황손이 아무리 현명하더라도 결코 황위를 바라서는 안 된다”고 썼다. 현명함보다 직계라는 혈통을 중시한 것은 순수성을 우월함의 원천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천자의 성씨가 달라지고 왕조 교체가 잦았던 중국이나 혈통이 끊어진 인도보다 일본이 우월하다면서 “일본은 황위의 계승에 어지러움이 없이 하나의 혈통만이 황위에 있다”고 한 말에도 그런 뜻이 담겨 있다.

본디 신화는 민족의 신화다. 그런데 ‘신황정통기’의 신화는 신국과 황통을 결부시킴으로써 민족의 신화가 아닌 천황의 신화로 변모시켰다. 신국은 신의 나라고, 그 신의 자손이 천황이므로 천황의 나라가 되기 때문이다. 신국을 인민의 나라가 아닌 천황의 나라임을 천명한 ‘신황정통기’의 신화는 근대까지 꾸준히 영향을 끼치며 근대에 천황제 부활과 군국주의로 이어졌다.

■차등이냐 대등이냐

‘신황정통기’의 신화는 신국에서 황통으로 이어지는 지속성과 순수성을 강조해 자국은 타국과 차별되며 아주 우월하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이런 순수성은 타국을 배척하고 자국을 고립시킴으로써 확보될 수 있다. 한반도에서 도래한 사람들이 선진 기술과 문물을 전하며 정착하고 융화한 사실이나 도래인들이 상층 지배층을 구성하며 천황가와도 혼인 관계를 맺은 사실 따위가 은폐되고 배제된 것이 그 때문이다. 반면에 이주와 융합의 역사를 표현한 ‘삼국유사’의 신화들에서는 차별이나 배척을 찾아볼 수 없다.

   
‘신황정통기’의 신화는 치카후사를 비롯한 중세의 지식인들이 천황의 절대적 권위를 옹호하기 위해 관념적으로 윤색하고 변형한 것이며 차등적 질서를 공고히 하려는 지배층의 논리를 담고 있다. 후대의 지식인들도 이 신화의 논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며 민중에게 주입했다. ‘삼국유사’의 신화는 민중에 전승하던 것을 지식인이 기록한 것일 뿐이며 지배층의 논리에 맞서는 대등의 원리를 담고 있다. 이 원리는 ‘삼국유사’ 속 다른 설화에서도 표현되어 있으며 후대의 구전 설화들에서도 발견되고 있어 한국 민중이 지배층과 대등한 관계를 문학을 통해 지속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정천구 고전학자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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