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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권의 문화 동행 <3> 행복한 도서관, 행복을 ‘연결’하다

‘온정의 마음’ 연결해 일군 기적, 다문화 그림책 도서관

  • 선임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20-12-22 19:39:37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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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감만동 지역 유일한 시설
- 해외 도서만 1만4000권 소장

- 고향숙 씨, 좋은 일에 쓰겠다며
- 집 구입해 공공공간으로 활용
- 중고시장 등 쫓아다니며 책 모아
- 그 선행 알음알음 알려지자
- 국내외 개인·단체도 기부 동참

- 딸 진현지 씨는 매니저 자처
- 대학 자원봉사 활동 등 이끌어

부산 남구 홍곡로47번길 19. 골목을 헤집고 가면 소박하고 오래된 이층집을 만난다. ‘행복한 도서관’이다. 이곳은 ‘다문화 어린이 그림책 도서관’이다. 부산에 하나뿐이다. 지난 1년 동안 행복한 도서관에서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 마법의 핵심은 ‘연결’이다. 이 기사는 그 마법 같은 연결을 일궈낸 고향숙(53) 관장과 진현지(25) 매니저(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석사 과정)를 이달 초 두 차례 만나 이야기를 듣고 간추린 것이다.
   
부산 남구 다문화 그림책 도서관인 ‘행복한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자원봉사 대학생, 진현지(오른쪽에서 세 번째) 매니저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사진은 최근이 아닌 이달 초 촬영했다. 방역 지침을 이행한 뒤 장면을 일시적으로 연출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2016년 이 집(행복한 도서관)을 매입했어요. 딸(진현지 매니저)이 형편이 어려운 미혼모를 도울 방법이 없겠느냐고 의논해온 게 계기가 됐죠. 그때까지 저는 살림하는 주부였습니다.” 고향숙 관장은 “그런데 상황 변화가 생겨 그 일(미혼모 돕기)은 진행되지 않았고 대신 부산문화재단이 시작한 ‘반딧불이 사업(빈집 활용 예술가 입주 지원 사업)’에 2017년 제1호 공간으로 이 집을 제공했다”고 떠올렸다.

반딧불이 사업에 참여하던 때 이 집에 ‘감만동미술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금도 ‘감만동미술관’을 검색하면 행복한 도서관 위치가 뜬다. 주민과 부경대 용당캠퍼스 학생 등이 이 문화공간을 들락거리며 활용했다. 그중 근처에서 2003년부터 작은 도서관인 ‘행복한 도서관’을 운영하던 분도 있었다. 고향숙 관장은 “그분이 제게 ‘행복한 도서관’을 아예 이 집으로 옮겨와서 운영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고 회상했다. ‘좋은 용도’를 생각하고 산 집이었다. 2018년부터 ‘행복한 도서관’ 일을 돕던 그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2018년 11월께였다.

■ 세계 각국 그림책 1만4000권

   
행복한 도서관 고향숙 관장.
“그새 깜짝 놀란 일이 있었어요. 이 집에서 반경 15m 안에만 다문화 가정 아이가 8명이나 살더라고요. 감만동 전체로 따지면 다문화 가정, 외국인 노동자, 외국인 유학생이 정말 많은 거죠.” 관심을 쏟아봤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한국말이 서툴러 유치원·학교에서 공부하기 어렵다. 놀고 소통할 공간은 매우 모자랐다. 부모가 각각 다른 모국어를 가졌으므로 이중언어를 익혀 미래를 위한 강점으로 가꿀 수 있건만, 현실은 이도 저도 아니다. 엄마(대부분 엄마가 외국인이다)의 고충도 크다.

오랜 준비 끝에 남구 홍곡로 주택가에 행복한 도서관이 다문화 어린이 그림책 도서관으로 2019년 11월 새롭게 문을 연다. ‘맨땅’에서 시작한 셈이었다. 그런데 행복한 도서관에는 현재 그림책이 1만4000여 권 있다. 베트남 책이 800여 권, 방글라데시 책이 130여 권, 중국어책도 수백 권 갖췄다. 영어책, 중앙아시아 5개국 책, 캄보디아 책, 몽골 책, 필리핀 책(따갈로그어), 아랍어·히브리어·인도네시아·프랑스·스페인·한국 책 등이 있다. 진현지 매니저는 “10권 미만으로 소장한 책까지 꼽으면 나라는 더 많다”고 설명했다.

고향숙 관장은 “예컨대 베트남·방글라데시 그림책만 따진다면 우리가 국립중앙도서관보다 많지 않을까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모았을까? 행복한 도서관의 ‘연결 마법’이 힘을 발휘했다. “처음엔 사 모으고 기증도 받았죠. 당근마켓도 많이 이용했어요. 부산 전역을 다녔습니다.” 당근마켓에서 만난 선문대 이지연 교수의 경우 후원자가 돼 선문대 학생들이 아이들을 위해 드론과 자율주행자동차 체험 활동을 돕는 자원봉사 등을 연결시켜줬다.

■ “필요하면 어디든 갔죠”

   
이달 초 생일을 맞았던 아이를 위해 행복한 도서관에서 케이크를 마련했다.
“저는 필요하면 어디든 가서 우리 도서관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어요.” 고향숙 관장의 말이다. 부지런히 움직이자 연결이 시작됐다. 독일코리아재단 장 쿠스코 대표가 베트남 그림책 100권을 기증했고, 한 베트남 유학생은 베트남 현지 출판사에 연락해 200권을 살 돈으로 330권을 공급받게 해줬다. 코베카(한국-베트남경제문화협회)도 도왔다. 한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중국인 부부, 한중우호문화교류재단, 주한중국대사관과 주부산중국총영사관이 나섰고 일본에 사는 고향숙 관장의 친척은 일본 그림책을 보내줬다. 이런 사례는 숱하다.

행복한 도서관의 연결 마법이 제대로 가동된 영역은 자원봉사와 도서관 프로그램 운영이다. 행복한 도서관은 여러 단체와 협약을 맺고 지역사회의 자원봉사 자원을 발굴하고 이었다. 경성대 심리학과, 선문대 스마트자동차공학부 등이다. 협약은 안 했지만 꾸준히 봉사활동을 펼치는 기관과 개인도 아주 많다. 부경대 유아교육과 창의인성교육봉사프로그램이 올해 2학기 진행됐고, 동아대 국제교류처와 함께하는 동화책 번역 활동인 동아동화프로그램도 있다. 경성대 사진학과 학생들은 행복한 도서관과 아이들을 위해 가족 사진과 동영상·홍보영상 촬영, 홈페이지 제작을 했다. 부경대 시작디자인학과 등 여러 과의 학생들은 도서관 홍보물과 캐릭터를 만들고 다양한 도움도 줬다. 동명대 자원봉사팀은 스스로 ‘자발적 노예 1호, 2호, 3호’라고 할 만큼 열심히 한단다.유튜브 채널도 그렇게 열었다.

동아대 국제대학원, 성산교회, 독일명예영사관, 엘지그룹 해외 법인장들, 원영아 피아노 선생님, 김지영 타악기 앙상블 선생님, 정경아 상담 봉사자, 다문화 엄마들을 대상으로 언어치료와 한국어수업을 하는 문예랑 봉사자….

■ 협업이 꽃을 피우고

연결이 활발해진 데는 진현지 매니저의 공이 컸다. “어른들은 좋은 생각을 하시면서도 그걸 실행에 옮길 때는 좀 어려워하는 것 같았어요.” 그는 20대 청년 특유의 순발력과 IT 기기 활용 솜씨, 정보의 길을 꿰뚫어보는 힘을 발휘했다.

각 대학·학과 홈페이지나 SNS를 통해 자원봉사 자원을 파악하고, 글을 올리고, 연락해 행복한 도서관 활동과 잇는 일은 진현지 매니저 몫이었다. 이런 연결은 자원봉사를 하는 이들에게도 보람이 되고 힘이 된다. 행복한 도서관에서 만난 부경대 유아교육과 1학년 변혜민 원채은 구미진 유지원 씨는 “다문화 아이들과 함께하는 자원봉사 활동은 뿌듯한 마음이 들게 한다. 아이들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게 좋다. 전공 공부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행복한 도서관을 이용하는 다문화 이웃들도 큰 도움을 받는다. 초등학생 현수는 “상담시간이 참 재미있다”고 말했다. 어린 아비드의 엄마(방글라데시)는 “자주 와서 아이들 돌보고 책도 본다. 피아노는 여기서 처음 쳐봤다”고 웃으며 말했다. 행복한 도서관은 일요일의 경우 인근 다문화 아이들 9명이 오고, 부모들도 함께 와 상담을 하거나 한국어수업을 받느라 복작댄다. 주중에도 꾸준히 돌아간다.

   
물론 코로나19 탓에 요즘에는 어려움이 있다. 작은 2층집에 깃든 행복한 도서관은 굴하지 않는다. 또 연결에 나섰다. 지난 16일 부산외국어대 한국어문학부와 힘을 합쳐 한국어교육 자원봉사자(비대면)를 모집하는 공고를 띄웠다. 행복한 도서관의 연결은 우리 사회에 소중한 열매를 조금씩 조금씩 영글게 할 것 같다. 스티브 잡스가 그랬다. “창조는 연결이다.” 행복도 그렇다. 인스타그램 @gamman_gallery

선임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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