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이 이렇게 만루홈런을 칠 줄 몰랐다. ‘옥자’ 이후 엄청난 시나리오가 나왔다는 카더라 소문이 돌기는 했다. 봉준호의 신작은 그렇게 또 한 번 봉테일의 진가를 보여줬다. 포스터부터 본 팬들은 ‘결국 누구 하나 죽어나가나 보다’며 상상력을 발동했고, 녹색 잔디가 주는 평안함과 대비되던 송강호·최우식의 검정 테이핑의 불안함은 결국 ‘냄새’로 구분되는 우리 사회 계급 차이를 드러냈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석권한 날, 혹시 절판될 새라 잽싸게 각본집과 스토리보드 북을 샀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영화 장면과 놀랍게 맞아떨어지는 스토리보드가 정말 인상 깊다. 이렇게 스토리보드를 직접 그리며 시대 우울을 놓치지 않는 감독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지난 3월부터 영화계·극장가는 얼어버렸다. 2019년 누적 관객 수 500만을 넘은 영화가 ‘극한직업’을 비롯해 10편이나 있었지만, 올해는 0편이다. 그나마 ‘남산의 부장들’‘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가 주연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480만을 기록했다. 연상호 감독의 ‘반도’는 마니아 입소문에 380만 명이 관람해 선전했다.
영화제작사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배우들의 해외촬영은 줄줄이 무산됐다. 넷플릭스는 배우에게 큰돈이 나가는 작품 대신 CG나 특수효과 VFX에 돈을 쓰더라도 1차적 흥행이 검증된, 웹툰 원작의 판타지를 선택한다. 충격적인 소식도 있었다. 타향에서 코로나 합병증으로 숨진 김기덕 감독의 쓸쓸한 말로에 허무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한국을 등지지 말고 결자해지했으면 우리는 한국영화사에 굵직한 필모그래피를 남긴 한 감독을 이렇게 떠나보내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 한겨울에 동네 미나리밭을 얼려 임시 스케이트장을 만들곤 했다. 그 스케이트장을 우린 미나리꽝이라 불렀다. 얼음을 뚫고 나오는 미나리의 힘을 그리려 했을까? 영화 ‘미나리’의 배우 윤여정은 봄 미나리 같은 힘으로 미국 내 크고 작은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LA비평가협회 여우조연상도 받았다. 윤여정의 주름과 비음 섞인 목소리에서 묘하게 잘 숙성되어가는 와인이 떠오른다. 당당하고 멋진 메릴 스트립처럼.
동명대 외래교수·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