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최원준의 음식 사람 <25> 나주곰탕

일제, 나주 소 하루 400마리 도살…조선인은 남은 부산물 한데 끓였다

  • 최원준 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0-12-29 18:57:48
  •  |   본지 1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한우 수탈 한창이던 일제강점기
- 日, 나주에 통조림 공장 세우고
- 전쟁 나간 군인 위해 고기 공급
- 남은 뼈·내장 등 조선인에 넘겨

- 상인들, 장터서 가마솥 걸어놓고
- 푹 끓여 국과 밥 함께 담아 팔아
- 값싼 고단백 음식 서민들에 인기

- 기름기 없이 맑고 담백한 국물
- 3, 4대째 그 맛 이어져 오는 중

가마솥에 곰국이 펄펄 끓고 있다. 뚝배기에 담긴 곰탕 한 그릇에 김이 모락모락 난다. 찬모들이 토렴하랴 뚝배기에 국밥 담으랴 분주하다. 국밥 위에 고명 올리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게 현란하다.한 그릇 한 그릇이 든든하게 먹음직스럽다.
   
나주곰탕
곰탕은 건더기를 넣고 오래도록 푹 고아낸 진국을 총칭해서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국물이 진하면서도 영양가가 높아 보양식으로 널리 먹는 음식이다. 구수하고 담박한 맛에 남녀노소가 즐겨먹는다. 원래 곰국으로 불렸지만, 외식산업화 되면서 곰탕으로 불리고 있다.

조선 중종 때 역관 최세진이 집필한 훈몽자회(訓蒙字會)에 의하면 “곰탕은 국에 비해 국물이 진하며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진귀한 음식”이라고 기술하고 있을 정도로, 오래도록 고는 정성과 식재료에서 우러나는 영양성분이 남다르다고 하겠다.

주로 ‘곰탕’이라 함은 소의 고기 부위를 비롯해 대가리, 내장, 사골, 그 외에 혀, 꼬리 등 다양한 부위를 넣고 팔팔 끓여서 우려낸 국을 지칭한다. 물론 고는 식재료에 따라 닭곰탕, 생선곰탕, 염소곰탕 등도 있기는 하다.

■최대 곡창지로 목축업 발전한 나주

   
수육에 뜨거운 나주곰탕 국물을 붓는 모습.
곰탕하면 떠오르는 여러 지역이 있겠지만, 큰 ‘쇠장’이 있던 대구 현풍과 영천, 나주 등이 대표적으로 맛있는 곰탕지역으로 꼽힌다. 특히 그 지역을 떠올리면 바로 곰탕이 생각나는, 지리적 특장의 곰탕은 단연 ‘나주곰탕’이다. 이미 나주곰탕을 브랜드화 한 전국적인 프랜차이즈도 있을 정도다. 그럼 왜 나주가 다른 지역보다 특별하게 곰탕으로 유명한 도시가 되었을까?

나주는 고려시대부터 전주와 함께 전라도 최대의 고을이었다. 전라도 행정과 경제·군사·문화의 중심지인 나주목과 나주읍성이 자리했던 곳으로, 당시 인구로 치자면 전국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혔을 정도로 고을의 규모가 컸다.

예부터 비옥한 곡창지대를 끼고 있었기에 호남의 쌀이 한데 모이고, 농경에 필요한 소들을 키우는 목축업이 발달했다. 전국 유일의 내륙 항구인 영산포 뱃길로는 홍어를 비롯한 남도 특산의 해산물들이 집산되는 등 다양한 물산이 흘러넘쳤다.

이렇듯 남도의 최대 중심지였기에 조선 선조 임금조차도 “나주가 없으면 호남이 없고, 호남이 없으면 조선이 없다”고 했을 정도로 나주를 중요시했다. 때문에 전국 최초의 5일장이 개설되기도 했던 남도물산의 거점이기도 했다.현재의 전라도(全羅道)가 전주(全州)의 전(全), 나주(羅州)의 라(羅)를 붙여서 지어진 것만 봐도 알 법하다.

■일제강점기 소 수탈이 집중된 곳

   
전남 나주의 한 곰탕집에서 주문받은 곰탕을 차리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으로 가는 물산 또한 나주를 중심으로 수탈되었다. 남도 곡창에서 생산되던 쌀을 비롯해 다양한 수산물이 헐값으로 반출되었다. 뿐만 아니라 1916년에는 일본인 ‘다케나카 신타로(竹中新太郞)’에 의해 군납용 소고기통조림 공장인 ‘다케나카 통조림공장’이 나주에 들어섬으로써 수많은 농업용 소 또한 희생을 당한다.

나주시의 몇몇 향토연구자에 따르면 “나주를 비롯해 함평, 영암 등지에서 트럭으로 실려 온 조선 소를 이곳에서 하루 200~300여 마리 도축을 했다.”면서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때에는 하루 400마리 넘는 소가 도살당했다.”고 당시의 기억을 전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소를 도살했는지 ‘다케나카 통조림공장’에는, 소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축혼비(畜魂碑)‘를 세우기도 했다고 한다. 부산 우암동의 ‘이출우역검역소’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소와 함께, 나주의 소들 또한 일제에 의한 수탈이 아주 심각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태평양전쟁에 투입된 일본군의 영양보급용 소고기통조림을 만들고 남은 소의 여러 부산물들은 조선인 업자들에게 헐값에 팔렸다. 일본인들은 먹지 않는 소의 대가리나 내장 등 각종 부산물들이었다.

당시 상인들은 이렇게 헐값으로 넘겨받은 소의 부산물로, 장터에서 가마솥을 걸고 장작불을 피워 국과 밥을 한데 담은 음식, 국밥 형태의 ‘곰탕’을 만들어 팔았다. 싼값에 영양가도 높고, 맛있으면서도 빨리빨리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이었기에, 장터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대를 이은 곰탕맛집 즐비

현재 나주 금성관길 주변에는 10여 곳의 나주곰탕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맛난 곰탕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는 나주곰탕 명가들로는 ‘하얀집’ ‘남평집’ ‘노안곰탕집’ 등이 있다. 3, 4대를 걸치며 각기 다른 특색의 맛을 내는 이들 곰탕집들은, 한국전쟁 전후부터 곰탕을 팔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주 ‘하얀집’ 4대 주인장 길형선 명인에 의하면 “나주곰탕의 육수는 가마솥에 소의 사골을 넣고 오래도록 끓여내어 뽀얀 국물을 먼저 우려내고, 거기에 양지머리, 사태살, 목살 등을 넣고 진하게 더 끓여낸다.”고 말한다. 이때 발생하는 기름기는 말끔히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국물이 맑고 담백해진다.

손님이 주문을 하면 뚝배기에 밥을 넣고 뜨거운 육수로 여러 차례 토렴한 후, 채 썬 달걀지단과 대파 등 고명과 함께 따로 장만해둔 고기를 얹어 손님에게 낸다. 토렴과정을 거친 곰탕은 가장 먹기 좋은 섭씨 75도 정도에서 손님상에 오른다. 이렇게 해서 곰탕이 상에 오르는 시간은 2~3분 남짓. 가장 맛있고 영양가 높은 한국식 패스트푸드가 완성이 되는 것이다.

상에 오른 나주곰탕 한 그릇을 마주한다. 맑은 육수에 채 썬 대파와 노란 달걀지단이 식감을 자극한다. 수저로 국밥을 휘휘 저으니 큼지막한 소고기 몇 점이 숟가락에 가득하다. 국물을 한 술 뜬다. 처음에는 삼삼한 듯하다가, 입맛을 다실수록 진하게 차오르는 것이 일품이다.

소주 한 잔에 소고기 한 점 소금에 찍어 맛본다. 보들보들 부드러운 고깃살이 씹을수록 고소하면서 진한 육향 또한 그득하다. 밥 한 술 떠먹으니 밥알이 곰탕국물을 머금어 한 알 한 알 살아서 제 맛을 낸다.

제대로 담근 남도식 배추김치와 시원한 깍두기를 국밥과 함께 곁들인다. 소박한 찬이지만 이를 척척 걸쳐먹는 국밥 맛은 ‘제대로의 한 끼’에 손색이 없다. 남도사람들은 기호에 따라 깍두기 국물로 간을 해 먹는데, 이것 또한 나주곰탕의 맛을 기껍게 한다.

   
한 겨울, 뜨끈한 곰탕 한 그릇이면 부러울 것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한때는 임금께 진상했던 고급음식 중 하나가 곰탕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에게 수탈당하고 남은 소고기 부산물로 고아, 서민들 보양식으로 널리 사랑받기도 했었다. 바람이 차다. 슬슬 끓는 곰탕 한 그릇으로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이는 것도 참 좋을 일이다.

시인· 음식문화칼럼니스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지광, 국감 출석 거부…“해결의지 있다면서 책임 회피”(종합)
  2. 2간부 줄이고 예산 반납 미루고…사하구 힘겨운 적자 경영
  3. 3부산 동물원(옛 삼정더파크) 정비 착수…안전 등 꼼꼼히 챙겨 2029년 개장
  4. 4김태형 결국 롯데 떠난다…구단 늑장대처 도마
  5. 55월 3.84대 1 이었는데…부산 청약경쟁률 사상 첫 미달
  6. 6가덕 내달초 착공 여부, 이번주가 최대 분수령
  7. 7김해 국제선 지난해 대비 석달 빠른 1000만…외신도 부산 조명(종합)
  8. 8‘YS 영원한 오른팔’ 최형우 전 장관 별세…향년 91세(종합)
  9. 9시내버스·우유팩·유튜브로…양보·배려운전 동참 호소
  10. 102심 무죄 오세훈, 장동혁·한동훈과 보수 재편 주도권 경쟁(종합)
  1. 1지광, 국감 출석 거부…“해결의지 있다면서 책임 회피”(종합)
  2. 2‘YS 영원한 오른팔’ 최형우 전 장관 별세…향년 91세(종합)
  3. 32심 무죄 오세훈, 장동혁·한동훈과 보수 재편 주도권 경쟁(종합)
  4. 4막판까지 조희대·김현지 정국…쇼츠 경쟁 오명도
  5. 5[속보] 이 대통령 지지율 다시 하락해 35.3%…민주 36.0%·국힘 42.6%
  6. 6부산시의회 회의일수 연장 추진…김태효 “충분한 심의 시간 필요”
  7. 7"김혜경, 세계적인 골프선수와 황제골프?" 주진우 국감서 공개 예고
  8. 8與, 국감 이후 ‘조작기소 특검법’ 본격화
  9. 9北도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서한…“지뢰 폭발 사건은 한국 자작극”
  10. 10이헌승 “국제신문 100억 체불 지광스님 불출석은 어불성설… 동행명령장 발부해야”
  1. 15월 3.84대 1 이었는데…부산 청약경쟁률 사상 첫 미달
  2. 2가덕 내달초 착공 여부, 이번주가 최대 분수령
  3. 3“SMR 제작·운영·인재양성 부산허브 구축 속도를”
  4. 4해상풍력 육성, 정부·동남권 공조가 ‘키’
  5. 5스마트링부터 부산 새 패션 브랜드까지…백화점 신수요 공략
  6. 6청년 55% “조건 맞으면 지역 중소기업 갈 것”
  7. 7FOMC에 반도체 실적까지…널뛰기 장세에 이벤트 촉각
  8. 8도로정보 실시간 공유, 운전석 없는 車…교통올림픽 달군 국내기술
  9. 9김창수 위스키 마리골드 52.2도, 롯데마트 268병 한정 단독 판매
  10. 10견과류 한 봉지에 980원
  1. 1간부 줄이고 예산 반납 미루고…사하구 힘겨운 적자 경영
  2. 2부산 동물원(옛 삼정더파크) 정비 착수…안전 등 꼼꼼히 챙겨 2029년 개장
  3. 3김해 국제선 지난해 대비 석달 빠른 1000만…외신도 부산 조명(종합)
  4. 4시내버스·우유팩·유튜브로…양보·배려운전 동참 호소
  5. 5[속보]마트 출입구 안까지 차량 돌진한 50대 “영업하는지 확인하려고”
  6. 6해양·양자 미래산업 닻 올린 부산…청년 인재 끌어당긴다
  7. 7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26일
  8. 8부산도시철 현장안전인력 산정 TF 구성 잠정합의(종합)
  9. 9수로입구서 사라졌던 부캉이, 국제여객터미널 인근서 관측(종합)
  10. 10생굴의 계절…통영굴수협 초매식
  1. 1김태형 결국 롯데 떠난다…구단 늑장대처 도마
  2. 2불가능을 가능케…亞패러게임 5위
  3. 3‘올림픽 3연패 주역·AG 金6’ 펜싱 구본길 칼 내려놓다
  4. 4은퇴 앞둔 최민정, 시작부터 금빛질주
  5. 5롯데자이언츠 새 사령탑 ‘NC 우승 감독’ 이동근…단장에는 이택근 선임
  6. 6태풍 ‘참피’영향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1차전 취소
  7. 7안세영, 시즌 10번째 우승…프랑스오픈 3연패
  8. 8종합 6위 부산, 고른 활약에도 아쉬움
  9. 9만년 꼴찌 삼성 선두 ‘파란’…前 챔프 KCC 최하위 ‘수모’
  10. 10쇼트트랙 전설 최민정의 마지막 질주
우리은행
한국문학관 기행
바람처럼 자유로운 김홍신 문학을 ‘건축언어’로 표현한 공간
최진숙의 유네스코 세계 유적지 이야기
보리수가 휘감아 지킨 불두, 몰락왕조 영광의 기억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실크로드 연구자이자 간첩 ‘깐수’ 外
일상 언어에서 찾은 삶의 방향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지나-마음
남인목-웃는 나무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설상수
경비원 /박필상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누적 180만 넘긴 ‘극장판 치이카와’ 2주 연속 정상…예매율도 1위
팬덤의 힘 ‘극장판 치이카와’ 1위로…암살자(들) 근소한 차 2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6일 (음 9월 16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2일 (음 9월 12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지리산 연곡사를 찾아 시 읊은 매천 황현
겸재 정선은 금강산의 참모습을 어떻게 그렸을까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