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문화예술 발전에 이바지한 인물을 시상하는 ‘부산시문화상’은 1957년 시작해 2020년 63회를 맞은, 꽤 역사가 오래된 상이다. 지난해에는 조선통신사 학술 연구를 오랜 기간 수행한 부산대 김동철 교수와 배우로서 부산 예술 발전에 기여한 고인범(사진) 부산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 등이 받았다. 수상자 명단에서 배우 고인범의 이름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필자가 10여 년 전 부산 정착을 결심하고 서울 KBS를 떠나올 때, 친하게 지낸 PD가 부산 가면 이 사람을 만나보라며 명함을 건네줬다. 명함에는 부산 지역 방송사 PD 이름이 적혀있었다. 부산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나이는 내 또래로 보이는 이 PD는 전날 음주를 했는지 머리는 쑥대머리를 하고 코는 빨갰다. 그가 대뜸 내민 기획안이 ‘촌티콤 웰컴 투 가오리’였다. 부산판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라고 할까? “끝내주는 기획안”이라며 침 튀기며 말하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밉지 않았다. 그때 마을 촌장 역을 맡을 사람으로 물망에 오른 배우가 고인범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나는 기획회의에만 참여하고 결국 ‘촌티콤…’ 제작에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그 후 인기 프로그램이 된 ‘웰컴투 가오리’에서 촌장 역할을 하는 고인범 배우를 보면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배우 고인범은 여러 드라마에서 푸근하고 넉살 좋은 아버지를, 때론 소름 돋는 비정한 반전 연기를 소화하며, 찰진 부산 사투리로 승승장구했다. 방송과 영화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면서도 부산 연극계를 위해서 헌신했다.
부산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으로 뛰면서 부산에서 연극 활동을 이어가고,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속에 늘 그가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각별한 부산 사랑을 그는 보여줬다. 지난해 부산문화상 수상 이후 그는 부산 소극장에서 ‘파 한 단 두부 한 모’를 공연했다.
부산을 대표하고 사랑하는 예술가가 어떤 모습, 어떤 자격을 가져야 하는지 이제 막 이순(耳順)에 들어선, 백발 성성한 이 배우를 보며 느낀다.
동서대 외래교수·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