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역 최우선” “개인권도 중요”
- 팬더믹 확산 속 여론 양분
- 英 자유주의가 제시한 해법
- “사상·표현 자유 추구하려면
- 소수 의견 경청 자세 중요
- 진리 위해선 반대론도 포용”
- 개성 존중은 건강한 사회 척도
- 국내도 규제 완화 촉구 목소리
- 계층별 이견 줄이는 게 숙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한 단어를 불러냈다. ‘자유’. 가공할 전염병이 활개 치는 와중에 방역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를 주장하는 개인·단체가 잇따랐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선 일부 노동·종교계가 거리두기를 무시한 채 집회·예배를 벌였다. 공공 이익을 위한다면 자유가 구속돼도 될까? 해묵은 논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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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집회의 자유는 공공 이익에 우선하는가. 밀은 ‘자유론’에서 이에 답한다. 왼쪽 사진은 지난해 8월 1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사랑제일교회 주최로 열린 정부·여당 규탄 집회. 스스로 자유를 얻고자 투쟁하는 민중은 역사를 다시 썼다. 1830년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시민 혁명을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외젠 들라크루아 작(1830년). |
유시민 작가가 기름을 부었다. 고전을 소개하겠다며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로 복귀해 ‘자유론’을 꺼내 들었다. 논쟁은 잦아들었지만, 폭발할 위험은 여전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터질지 모른다. 자유가 무엇인지 얼개 정도는 알아둬야 한다. 악용하는 불순한 무리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가는 공익에 도움이 된다면 개인·단체의 자유를 제한해도 되는가, 허용된다면 어느 수위까지? 코로나 사태, 부동산 안정화 정책 같은 여론을 양분하는 국가 사안에 고전하는 우리 사회가 받아 든 질문이다. 19세기 영국 자유주의자인 밀은 그 답을 내놓았다.
우리는 민주주의 자유 개성 다양성 자율성 같은 단어에 익숙하다. 밀은 ‘자유론’(On Liberty, 1859년)에 이를 다뤘다. 160여 년 전 영국 자유사상에 디딤돌을 놓은 이 고전이 출간됐을 때 왕조 아래 놓인 조선에서 자유는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엔 전범국가 일본이, 6·25전쟁 뒤로는 군부·보수 정부가 자유를 눌렀다. 촛불 정부가 출범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손에 쥔 자유를 본다. 이젠 여유롭게 ‘자유 사용 설명서’를 읽게 됐다.
밀은 ‘자유에 대한 에세이’라 했지만, 탄탄한 이론서로서도 손색 없다. 1장(서론)을 보면, ‘시민·사회’가 갖는 자유를 세 가지로 구분·설명했다. 첫째 양심의 자유다. 의식(내면) 영역에서 양심은 절대 자유를 누린다. 양심은 사물에 대한 가치·선악·시비를 판단하는 도덕의식. 사상·감정은 억압돼선 안 된다. 과학 도덕 종교와 관련된 의견·감각은 절대자유를 얻는다. 저자는 사상·표현의 자유는 같은 몸이며, 언론·출판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둘째, 취향·탐구의 자유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도 된다.” 셋째, 개인은 단결할 자유를 갖는다. 헌법상 집회·결사 자유와 노동자 단결권이 여기에 포함된다. 밀이 제시하는 자유 개념은 이렇게 요약된다. “개인은 100% 자유를 누린다. 누구라도 간섭해선 안 된다. 단,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자유는 제한을 받기도 한다. 개인은 타인이 자신을 부당하게 공격할 때 스스로 보호할 권리(Self-protection)를 갖기 때문이다.” 밀 사상은 현대 자유관에 스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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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와 희망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 |
그는 자유 개념을 제시한 뒤 “이러한 자유가 없는 사회는 그 통치 형태가 어떠하든,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고 단정 지었다. 밀 논의는 명쾌해 보이지만 허점이 보인다. 무엇보다 (남에게 해롭지 않고) 오로지 개인과 관계된 자유와 그렇지 않은 자유를 확실히 구분하는 게 가능할까? 그런 구분은 중요하다. 사회가 합법 아래 개인에게 권력을 행사할 때 그 권력이 가진 정당성을 규명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 밀은 명확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밀이 왜 그랬는지 알게 된다. 구분 짓는 경계가 움직이기 때문. 자유는 시대와 사회와 형성하는 연결망에서 살아 숨 쉬는 유기체이므로 그 경계도 늘 움직인다. 경계를 결정하는 절대 법칙은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한 자유는 토론을 통해 얻는다. 최대한 많은 이가 만족하도록 합의에 도달하는 방안 중 하나다.
한국은 이런 과정을 잘 수용하나? 최근 예를 보자. 국민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코로나 시국 아래 의학계와 정부 정치권은 방역을 놓고 무척 불협화음을 냈다. 가까스로 봉합됐지만, 정부 의학계 시민 모두 피해를 본 뒤였다. 정치권은 민생 수호를 말로만 외칠 뿐 안으론 당리당략을 좇는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우리 사회가 토론에 좀 더 익숙했더라면 겪지 않았을 일. 자유론 2장 ‘사상·토론의 자유’를 읽으면 이런 우리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여기서 밀은 자유·인권론자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밀이 저술한 여러 저서 중 ‘자유론’이 으뜸이고, ‘자유론’ 중에서도 2장이 가장 반짝인다. 사상·표현의 자유를 구가하기 위해선 토론하는 자유가 무제한 보장돼야 한다고 이렇게 강조했다. “모든 인류 중 한 명만 이견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인류는 그에게 침묵을 강요해선 안 된다.” 밀은 토론의 자유가 가진 가치를 세 가지로 역설했다. 토론할 때는 소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경청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소수 의견이 진리일 가능성을 망각해선 안 된다. 다수 의견이 진리이고, 소수 의견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소수 의견이 표현될 자유를 주는 게 유용하기까지 하다고 했다. 이런 경우엔 소수 의견이 진리인 다수 의견을 한층 부각하는 효과를 내기 때문. 소수에 관대하지 못한 사회라면 귀 기울일 만한 충고다. 인권론자인 밀이기에 이런 주장을 폈다.
아울러 그는 개인(집단)이 자기 의견·행동에 오류가 없다며 나머지 의견을 배척하는 이른바 무오류 함정을 경계했다. 토론 없이 도출된 진리는 독단이며, 진리에 이르려면 반대론도 존중해야 한다. 이 덕목을 잘 따르면 세상은 한결 조화롭게 굴러갈 게 분명하다.
3장에서는 복지 요소인 개성을 다뤘다. 밀은 논의를 전개하면서 ‘국가 영역과 의무’를 펴낸 독일 언어학자·철학자 빌헬름 폰 훔볼트(1767~1835) 의견을 자주 인용했다. ‘인간을 최대한 다양하게 발달하게 하는 게 본질상 절대로 중요하다’는 훔볼트 주장을 서두에 소개하며 “이 책 모든 논의가 직접 지향하는 숭고한 기본원리”라고 썼다.
여기서 저자는 전체주의가 가장 경멸하고 억압하는 ‘인간 개성’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가 보여준다. 인간이 다양하게 발달하는 게 ‘인간 진보’다. “인간의 자유가 올바르게 구현돼야 인류는 진보한다.” 여기선 행동의 자유를 논한다. 개인에겐 자기 방식으로 행동할 자유가 부여된다. 이때 그 개인이 ‘무엇을 하는가’와 ‘어떤 특징을 갖는가’를 눈여겨본다. 다양한 개성이 존중돼야 한다고 밀은 거듭 강조했다. ‘개성=밀’이란 등식이 떠오를 정도다. 다채로운 자유와 생활이 보장되고, 강렬한 욕망과 충동이 이어져야 개성이 다양해진다고 밀은 확신했다. 당대 일반인은 개성에 대해 무관심하다며 한숨 쉬었다. 유연하지 못한 사회일수록 개성을 ‘모난 돌’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개인에 대한 사회적 권위의 한계’를 다룬 4장에서 결론이 등장한다. 행동의 자유와 관련해 두 원칙을 내민다. 첫째, 개인은 서로 이익을 침해하지 마라. 둘째, 사회와 구성원을 보호하는 희생·노동과 관련한 개인에겐 그 몫이 엄정히 분배돼야 한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자유인데도 윤리 도덕 사회규범이란 틀을 씌우면 안 된다. 개인은 자기 행동에서 절대 주권을 갖기 때문. 한국에서도 국가보안법 개정·폐지,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법원 인용과 여론 수용 추세, 포괄적 차별 금지법 제정 같은 개인 자유를 키우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계층별로 큰 시각차를 줄이는 건 숙제다.
마지막 5장에선 사회가 개인 자유에 개입할 때 유념해야 할 2대 원칙이 나온다. 첫째, 개인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타인 이해와 무관하면 그 행동과 관련해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둘째, 타인에게 손해를 끼쳐 사회를 보호할 필요가 인정되면 그 개인은 처벌 대상이 된다. 밀은 국민이 자유로운 교육을 받게 하고, 배심제와 지방자치제를 하라고 목소리 높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는 ‘자유’를 압도한다. 하지만 배가 부르더라도 자유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면 인류는 진보하지 못한다는 걸 잊지 말자. 서평가·세상관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