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 임신행의 신작이 나왔다. 섬마을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서현이는 엄마가 베트남 사람인 다문화가정의 아이다. 부모가 뭍에서 일을 하고 어린 서현이는 조부모가 돌봐주고 있다. 이런 가정이 어디 한 둘일까. 다문화가정이 아니라도 할빠, 할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부모가 육아를 전담하는 경우는 이제 흔한 일이 돼 버렸다. 서현이는 따뜻하게 품어주는 조부모 아래서 그늘 없이 잘 지내지만 부모가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얼마 전부터 치매가 시작돼 할머니의 걱정을 사고 있다. 그럼에도 서현이의 친구 영아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는 너는 좋겠다”며 다정한 가족의 모습을 부러워한다.
새로울 것 없고 감정의 기복이나 큰 사건도 없는 이야기지만 페이지 마다 따뜻함과 편안함이 묻어나 자꾸 들춰보게 된다.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아닌데도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운 포근함과 이상향을 담고 있어서다. 작은 섬에서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노부부가 손주를 돌보면서 조금씩 저물어 가는 모습이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젊었던 시절 두 노부부가 비밀 데이트 장소로 쓰던 오래된 버드나무 속 구멍에 오순도순 모여 앉은 조손간의 모습 자체가 동화같다. 아이들에게 아직은 차갑고 혹독한 현실을 보여주기 보다는 좋은 모습부터 알게 하고 싶은 어른의 마음이 담겨 있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이런 곳이 있다면 할아버지의 치매도 천천히 순하게 진행될 것만 같고 할머니의 건강도 오래오래 유지될 것만 같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이기도 하지만 어른들의 메마른 마음을 다독거려주는 연륜이 느껴진다. 할머니는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와 산책을 하면서 속삭인다. “자기 건강은 자기가 스스로 챙기고 보살펴야 해요.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 주겠어요”. 바쁘고 힘든 현실을 견뎌내며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조금만 천천히 속도를 늦춰도 별 일 없다. 나를 돌봐가며 살아가는 여유가 필요하다’며 다정히 등을 쓸어주는 것 같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그림체도 포근한 내용과 잘 어울린다.

최영지 기자 jad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