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장기화 상황은 방송 콘텐츠의 방향성을 바꾸고 있다. 바쁜 현대인에게 여행, 맛집, 체험 스포츠를 보여주며 대리 만족을 선사하던 방송사들은 해외 촬영 전면 불가와 제한된 국내 촬영 상황에서 출연자의 매력에 100% 의존하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김태호 PD가 ‘놀면 뭐 하니’에서 유재석을 트로트 신인 ‘류산슬’로, 미국 유학파 연예제작자 ‘지미 유’로 선보이며 꾸준한 인기를 구가한 데는 유재석 개인의 매력과 함께 오랜 인연의 ‘절친 케미’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요즘은 이런 ‘절친 간 궁합’을 제대로 활용한 프로그램이 재미와 감동, 둘 다 잡는다. 그런 점에서 눈에 띄는 프로그램이 있으니, MBC 월요 예능 ‘안 싸우면 다행이야’다.
‘안 싸우면 다행이야’는 한마디로 ‘나는 자연인이다’와 ‘삼시세끼’ 포맷을 혼합한 프로다. 절친과 함께 오지 체험을 하고, 자급자족 방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밑도 끝도 없이 티격태격하면서 두 사람만 할 수 있는 ‘티키타카(tiqui-taca)’ 토크를 선보인다. 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뜻하는 티키타카는 축구에서는 짧은 패스를 주고받는 전술이지만, 궁합 맞는 절친끼리 주고받는 현대식 만담의 상징이 됐다.
방송인으로 자리 잡은 허재와 박중훈의 40년 묵은 수다를 보며 ‘그래, 저렇게 허물없이 카메라 앞에서도 얘기할 수 있는 게 친구지, 대본 없이 불쑥 나오는 농담과 ‘폭로’도 웃어넘길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친구처럼 편안한 느낌이다. 80년대 청춘스타가 넌 왜 철이 안 드느냐고 타박하자, 80년대 농구 황제가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며 맞받는 모습은 정겨웠다. 날렵했던 청춘을 지나, 세월 속에 익어가는 편하고 사람 냄새 나는 모습을 전달하는 게 의도였다면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
중년 남성이 ‘나는 자연인이다’를 선호한다고 한다. 골치 아픈 현실을 떠나 한 번쯤 자연 속에서 홀로 도인처럼 살고 싶은 판타지를 채우기 때문이다. ‘안 싸우면 다행이야’도 따뜻한 체온을 선사하는 프로다. 다만 절친의 환상 궁합을 보여줄 출연자를 줄곧 섭외할 수 있을는지. 그것이 프로그램 장수를 향한 숙제일 것이다.
동서대 외래교수·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