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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27> 울산 장생포 고래탕

흔해 빠진 고래고기 넉넉히 끓여먹던 시절 ‘추억의 한 뚝배기’

  • 최원준 시인
  •  |   입력 : 2021-01-26 19:58:29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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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경 성업 이뤘던 울산 장생포
- 1986년 상업포경 금지 전까지
- 각 가정서 고래고기 즐겨 먹어

- 포구서 고래 부위별 해체하면
- 남는 살코기·힘줄·등살 얻어와
- 무·대파 넣고 얼큰한 찌개 끓여

- 울산 곳곳 아직도 명맥 이어져
- 1인분씩 저렴하게 파는 식당도

한때 ‘동네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식언이 있을 정도로 ‘바다의 노다지’로 각광받았던 포경산업. 우리 해역의 근대 포경은 구한말 일본, 러시아 등 열강들에 의해 시작하여, 해방 후에는 울산 장생포, 방어진, 구룡포를 중심으로 근해 포경업이 성업을 이뤘다.

   
울산 장생포 고래문화마을 내 고래해체장 모형. 포경이 성업하던 시절을 재현했다. 국제신문 DB
고래를 선미(船尾)에 매단 포경선이 뱃고동 소리를 울리며 귀항을 하면, 동해안 고래마을 사람들은 삼삼오오 부두에 나와 집채만 한 고래를 구경하곤 했다. 그러나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의 상업포경금지협정이 발효된 이후 국내 포경업은 그 종말을 고한다. 이와 더불어 동해안 고래마을들도 그 화려했던 시절의 끝을 맺는다.

그러나 고래고기의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입맛의 추억’은 아직까지도 그들의 식탁에 고래음식을 소환하고 있다. 울산 장생포와 포항 죽도시장, 부산 자갈치시장 등에서는 혼획(混獲)되거나 좌초(坐礁)된 고래고기를 취급하고 있다.

■울산 장생포, 고래의 고장

   
고래국밥.
‘자갈치시장 하면 고래고기’였던 시절이 있었던 만큼 부산에서는 지금도 고래고기를 맛보려면 자갈치시장에 가야하고, 포항 죽도시장은 구룡포항에서 해체한 고래를 전국에 도소매로 유통하는 고래고기 유통 본거지이다.

특히 장생포는 현재 ‘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된 곳으로, 고래의 모든 것을 관광자원화 해 옛 고래산업의 영화를 재현하려 노력하고 있다. 마을 인근에 집단화 된 고래전문음식점에서 다양한 고래 음식들을 맛볼 수도 있다.

한때 국내 최대 포경어업 전진기지이자 항구에 들어온 고래로 온 마을이 떠들썩하던 고래마을, 울산 장생포. 그래서 장생포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당연히 ‘고래’다. 포경산업이 사양화 되었지만 그래도 장생포 사람들의 고래음식 사랑은 끝이 없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꿈과 추억의 맛이기도 하거니와 할아버지 때부터 먹어왔던 ‘배냇음식’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렇다.

장생포 사람들에게 있어 고래고기는 가난했던 시절 소중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포구로 들여온 고래를 고래해체장에서 부위별로 해체하고 난 후, 살코기 부위는 동네사람들에게 듬성듬성 썰어서 나눠줬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고기로 다양한 고래음식을 만들어 가족과 나눠먹었다. 당시 흔한 고래살코기로 귀했던 소고기를 대신해 단백질을 보충한 것.

■해장국 고래탕·서민음식 고래국밥

이렇게 큰 고래가 들어온 날이면, 여인네들은 얻어온 고래살코기를 간장양념에 재워두었다가 불고기를 볶고 얼큰한 고래탕을 끓여 밥상 위에 올렸다. 이때만큼은 온 동네 사람들의 밥상에는 든든한 고래음식들이 오르고, 고래불고기를 안주삼은 남정네들은 밤이 이슥하도록 술추렴을 했다. 그중에서도 가족 밥상에 자주 올랐던 음식은 ‘고래탕’이었다.

소고기육개장처럼 무와 콩나물, 대파 등속을 넣고 얼큰하게 푹 끓여낸 ‘고래탕’은 아침 해장국으로도 안성맞춤이었고 가장의 반주에 어울리는 술국으로도 널리 소용되었다. 현재 장생포에서는 이 ‘고래탕’을 외식음식의 하나로 개발해 ‘고래찌개’라 부르고 있다. 음식도 음식이름도, 세월 따라 그 지역 사정에 따라, 바뀌기도 변하기도 하는가 보다.

이처럼 울산은 고래가 친숙한 ‘고래의 도시’이다. 때문에 어느 동네에 가도 고래고기집이 한두 곳은 있을 정도다. 울산시청 인근 신정시장에도 고래고기집이 하나 있다. 이 집 젊은 사장 최도영(43)씨 또한 장생포 사람이다.

최씨는 호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에게 점심시간에 한해 ‘고래국밥’을 판다. 한 냄비에 끓여 함께 즐기는 ‘고래찌개’를, 1인분씩 밥과 함께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이 ‘고래국밥’이다. 원래 고래국밥은 포항 사람들이 즐겨먹던 음식이다. 포항 사람들은 겨울철 해장을 하거나 따뜻한 음식이 생각날 때면 고래국밥을 먹었다.

고래국밥은 포경시절 항구에서 뱃일을 하는 어부들이 출출한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기도 하고, 한 잔 술의 해장국으로도 즐겨 먹었던 음식으로 유명했다. 요즘처럼 가격이 만만찮은 고래전문식당에서, 옛날 ‘고래탕에 밥 말아먹던 추억’을 저렴하게 제공하고 있는 최씨가 참으로 미덥다.

고래국밥 한 그릇 주문한다. 혼자서 고래음식을 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흔쾌하다. 언뜻 보기에는 소고기육개장이나 소고기국과 별반 차이 없는 모양새다. 칼칼하게 보이는 붉은 국물 위로 되는대로 삐져 넣은 무와 적당한 양의 콩나물, 어슷하게 썬 대파가 보인다.

찌개 안에는 살코기, 힘줄을 비롯해 우네, 오배기, 등살 등의 자투리 살들이 들어간다. 고래를 부위별로 장만할 때 정형을 하고 남은 부위를 찌개용으로 넣고 끓여내는 것이다. 숟가락으로 휘휘 뒤적이다보니 탕 안에 고래고기가 수북하다.

“사실 우리 집은 고래고기보다 탕이 더 가성비가 높습니다. 시장 분들이 옛 생각하면서 부담 없이 고래국밥 한 그릇 드시고 갔으면 해서 고기를 넉넉히 넣기 때문입니다.” 최씨의 설명이다.

■넉넉함에 한 번, 맛에 두번 놀라다

그래서 고래국밥을 먹어본 사람들은 그 맛이나 고기 양에 깜짝 놀라 단골이 된단다. 한때 이 자투리 고래고기는 울산의 재래시장 등에서 꽤 인기 있게 팔리던 시절도 있었단다.

국물 한 술 떠본다. 진하면서도 칼칼하다. 짙은 풍미 속에서도 입안을 기분 좋게 얼얼하게 해준다. 한 술 더 떠먹어보니 급기야 속이 화악 풀리면서 편안해진다. 국밥 안에 있는 고래고기도 한 점씩 맛보는데, 각각의 부위를 일별하는 맛 또한 재미나다. 꼬들꼬들한 식감부터 질릴 정도로 고소한 맛, 소고기처럼 부드럽게 씹히는 부위까지, 그리고 풍성한 육향이 치받듯이 하는 것부터 아련하게 코끝을 스치는 부위까지, 각각의 맛이 흥미진진하기가 이를 데 없다.

살코기를 정구지 김치와 곁들여 먹는다. 고기의 육향과 정구지 김치의 알싸한 향이 너무 잘 어울린다. 장생포 사람들은 이 정구지 김치가 고래고기와 궁합이 잘 맞아, 고래음식을 낼 때는 늘 정구지 김치를 함께 상에 올린단다.

밥을 만다. 밥을 말면 제대로 된 고래국밥이다. 밥알과 고래고기가 서로 어우러져 고소하면서도 진하고 풍성하다. 콩나물은 아삭거리고 무와 대파는 국물의 그 시원함을 넉넉히 책임지고 있다. 한 술 뜨고 두 술 뜨고, 고기 한 점에 두 점 먹고 나니 어느새 배가 든든하다.

   
한때 가난한 이들의 소고기 대용 음식으로 조리해 먹었던 고래고기. 그 맛이 쇠고기와 비슷해, 소고기육개장, 소고기국, 소불고기, 두루치기 등 소고기 음식의 대체 식재료로 널리 착하게 쓰였었다. 그랬던 고래가 지금은 구하기조차 힘들어 ‘바다의 로또’라고 불릴 정도로 귀하게 대접받는 시절이다.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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