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매력 함축해야할 공간인데
- 오래되고 낡았다는 인식 대부분
- 실제로 노후 건물 누수 등 말썽
- ‘고립된 섬’처럼 접근성도 약해
- 박스형 전시 탈피할 디지털존
- 온·습도기능 등 시설 개선 넘어
- 혁신적 기획력과 예산 확보로
- 핵심 스폿될 콘텐츠 강화해야
제1회부터 제3회까지 ‘부산 관광, 예술로 리디자인’ 총론을 짚어보았다. 이제 실제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가능성을 살피고 한계와 과제와도 직면해보고자 한다. 이런 접근으로 예술로 부산 관광이 발돋움할 큰 그림에 다가가고자 한다. 첫 대상은 부산시립미술관이다.
단체여행이든 개인여행이든, 코로나19 직전까지 우리가 해외 도시를 여행한 패턴을 복기해보자. 미술관은 거의 빠지지 않는다. 당신이 가본 도시와 그 곳의 미술관을 따로 지도에 표시한 뒤 그 둘을 합치면, 상당히 겹칠 것이다. 그 도시의 창의성, 품격, 자유로운 기풍, 이미지를 미술관에서는 압축해서 느낀다는 공감대가 있는 덕분이다. 여행자의 목적지로서, 미술관의 힘은 여전히 세다. 파리를 떠올리면, 루브르가 따라온다.
■ 시민이 느끼는 존재감도 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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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립미술관 2층 대전시실에서 방문객들이 기획전 ‘상흔을 넘어 The Scar’를 감상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
부산시립미술관은 가능성을 인정받는다. 1998년 해운대구 우동에 자리 잡은 부산시립미술관(2015년 이우환 공간 별도로 개관)은 전국 공립 미술관 가운데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벡스코, 누리마루 APEC 하우스 등 국제회의 복합지구와 가깝고 대형 백화점과 센텀시티도 지척에 있다. 해운대해수욕장과도 멀지 않다. 거장 이우환의 작품을 만나는 이우환공간도 인기가 높다.
지난해 부산이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국내 첫 국제관광도시가 됐다. 2024년까지 5년간 국·시비 1500억 원을 들여 부산을 매력 있는 국제관광도시로 가꾸는 사업이다. 부산시립미술관도 이를 계기로 ‘핵심 관광 스폿’이 되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현재 연간 37만 명(2019년 내국인 36만698명·외국인 1만9212명)인 방문객을 70만 명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다양한 실행계획도 있다. 그런데 곧장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현재의 미술관 상태로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지난해 2월 1500명을 대상으로 만족·인지도 조사를 했다. 대면·온라인으로 시민에게 미술관에 관한 느낌을 물으니 많은 응답자가 ‘박물관’을 연상하거나 ‘힙(hip)하지 않은 곳’이라고 밝혔다. ‘오래되고 낡았다’는 인식인데, 이는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건물부터가 노후화로 말썽이다. 장마철이면 미술관 기본인 항온·항습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되풀이된다. 수장고와 서비스 공간도 충분치 않다. ‘대한민국 1호 국제관광도시’ 타이틀을 따낸 부산의 대표 미술관이라 하기엔 민망한 수준이다. 서울 제주 그리고 세계 관광도시와 경쟁을 준비하는 지금, 도시 매력의 바로미터가 될 부산시립미술관 혁신은 시급한 과제다.
■ ‘고립된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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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여름 폭우로 부산시립미술관 2층 전시장에 비가 샐 당시 쓰레기통으로 빗물을 받으며 임시조치에 나선 모습.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
언뜻 부산시립미술관은 규모도 크고 접근성도 좋아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동선부터 ‘불친절’하고 옹색하다. 정문은 벡스코 제2전시장 측면을 향해 있어 개방감 없이 막힌 느낌이다. 뒤쪽은 차로인 광안대교 진입로가 버티고 있어 단절된다. 벡스코 제1 전시장과 제2 전시장을 잇는 구름다리(보행로)는 미술관 외관을 가린다. 한 해 370만 명(2019년 기준)에 이르는 벡스코 방문객을 미술관으로 유인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고립된 섬처럼 단절된 형국이다.
해마다 보도되는 항온·항습 기능 부재에 더해, 지난해 여름에는 누수와 천장 꺼짐 현상까지 발생했다. 부산 최고 미술관에서 터진 황당한 일이다. 이 탓에 작품이 부풀고 크랙(갈라짐·틈)이 생기는 치명적 문제에도 직면했다. 지금의 박스형 전시공간으로는 최신 흐름을 반영한 전시를 구현하기 어려운 구조적 약점도 도드라진다.
한편으로는 미술관 콘텐츠가 약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콘텐츠 강화에는 기획력에 더해 예산이 따라야 하지만, 현재 연간 사업비는 40억 원 수준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작품 구입비는 원래 10억 원에서 5억 원으로 더 줄었다. 서울시립미술관(서소문 본관, 북·남서울 미술관)의 사업비가 150억 원 수준(2020년 기준)인 것과도 비교된다. 필로아트랩 이지훈 대표는 “문화공간에서 관광효과를 기대하려면 콘텐츠·접근성·클러스터(집적과 연계)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부산시립미술관은 여러모로 약하다. 이를 직시하고 진지하게 대처해야 어느 정도라도 변화와 생존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구입비를 늘려 콘텐츠를 강화하고, 관광 철에 맞는 전시 등 기획을 늘리는 일도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 계획은 오래전 다 짜놓았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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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도 조절에 어려움을 겪어 내부 벽면에는 곰팡이도 생겼다.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
부산시립미술관도 이런 문제를 절감하고 오래전 리노베이션 계획을 세웠다. 그 방향은 ▷미래지향적 예술공간 ▷디지털 콘텐츠 강화·시민 소통 프로그램 활성화 ▷국제관광도시 부산의 핵심 관광 스폿 ▷시민 일상 속에 스며드는 미술관이다. 좀 더 상세히 보자. 지하 1층에 어린이 갤러리를 만들고, 강의 체험 등 예술문화교육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가꾼다. 상징성이 강한 입구의 시각적 주목도를 높이고, 출입구를 개선해 편리하고 친절하게 개선한다. 지상 1층은 로비 기능을 활성화하고, 디지털 콘텐츠 존을 설치한다. ‘글로컬(global+local)’을 중시해 지상 2층은 부산 미술 의미를 확장할 인문 플랫폼으로 구상한다.
지상 3층은 첨단 동시대 미술을 만나는 공간이 된다. 트렌드 반영에 한계가 있는 박스형 전시 공간에서 탈피해 융·복합 미술을 수용할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각성에 따른 것이다.
부산시립미술관 기혜경 관장은 “부산을 중심에 놓고, 세계 유명 작가 전시를 아우르는 동시대 미술의 플랫폼을 구상한다. 부산에서 디지털로 전 세계와 소통하면서 ‘국제관광도시 부산’과도 같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 세계 미술관은 재단장 열풍
2010년 이후 세계 유수 미술관들은 리노베이션 열풍이 거세다. 인터넷·디지털 기술과 대중문화가 발달하면서 미술관 경쟁 상대가 다른 미술관·박물관이 아니라 막강한 흡인력을 자랑하는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됐다는 위기의식이 그 중심에 있다. 미술관이 보유한 고급 콘텐츠를 발판 삼아 변화를 감행한다.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휘트니미술관, 영국 테이트모던 등은 리노베이션에 각각 5000억 원 규모 예산을 투입했다. MoMA는 배움의 공간을, 휘트니 미술관은 시민·예술가·예술이 새로운 관계를 맺는 중심 장소란 점을 명확히 내세웠다. 테이트모던은 박스형 갤러리에서 탈피해 디지털화를 통한 21세기형 예술을 지향하는 것으로 캐치프레이즈를 고쳤다. 노르웨이 뭉크미술관, 오스트리아 알베르티나미술관, 영국 로열 아카데미 오브 아트도 최근 5년 내 리노베이션을 시작했거나 완료했다. 숱한 해외 미술관이 외면받지 않으려 혁신을 서두른다. 미술관이 도시 매력을 높이고, 창의성을 자랑하며, 관광을 리디자인할 핵심 공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전히 예산이다. 부산시립미술관이 구상하는 리노베이션에는 모두 261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에도 본예산 반영을 기대했지만, 코로나19 대응 등으로 밀렸다. 복도 누수와 천장 꺼짐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2억5000만 원은 그나마 확보했지만, 리노베이션은 뚜렷한 기약이 없다. 기 관장은 “올해에는 리노베이션을 위한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비’만이라도 부디 반영되기를 희망한다”고 당부했다.
민경진 기자 jnm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