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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00> 김보한 시인의 시집 ‘하늘재에서 천왕봉까지’

문학의 길 택한 공학도…백두대간에 푹 빠진 10년을 詩로 기록하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1-02-21 18:56:15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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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대학 입시 위해 부산행
- 공대 진학했지만 작가 꿈 키워
- 20년 양어업 종사로 해양시 써

- 2003~2013년 50일간 산악종주
- 시집엔 산과 봉우리 이름 담아
- 차기작은 강 주제로 집필 계획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여행을 가는 길에는 늘 창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도시를 벗어났다 싶으면 산이 나타난다. 산을 보면서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본다. 꽃이 피고, 녹음이 우거지고, 단풍이 든 산이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겨울산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잎을 떨구어 낸 산은 비로소 단단한 뼈대와 질긴 힘줄을 드러낸다. 그 풍경을 보노라면 ‘산(山)’이라는 글자가 왜 생겨났는지 알 것 같다. 눈앞으로 천천히 다가와 물러나는 가까운 산, 버스가 아무리 달려도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멀리 있는 큰 산. 어렸을 적에 우리나라 땅의 70%가 산이라고 배웠다. 너무나 많은 산들을 허물어버린 지금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더 안타까운 건 눈앞을 스쳐 지나는 그 산들의 이름을 다 모른다는 것이다. 어쩐지 부끄럽고 미안하다. 직접 가 본 산도 그리 많지 않다. 백두대간을 위해 만 10년의 세월을 바친 김보한 시인의 시집 ‘하늘재에서 천왕봉까지’를 펼쳤다. 우리 땅이 흩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고 있는 산맥의 능선과 봉우리를 마음으로 하나씩 걸어본다. 김보한 시인을 경남 통영에서 만났다.
경남 통영에서 만난 김보한 시인. 통영은 그의 고향이다. 김 시인은 “1987년 낙향한 뒤 바다에 관한 시를 쓰고 있다”고 한다.
■부산에서 시작된 문학의 길

김보한 시인은 1955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74년 대학입시를 위해 부산으로 왔다. 동아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하면서, 소설가를 꿈꾸며 장편 2편을 습작하기도 했고, 1977년경부터 시에 관심두기 시작했다. 공학을 공부하는 아들이 문학에 빠져드니 집안의 반대가 극심했다. 공학과 시의 접점은 필자도 궁금했다. 김보한 시인은 “초등학교 5학년부터 죽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왔습니다. ‘왜 인간은 죽어야만 하는지?’ 그런 류의 것이지요.” 죽음과 삶을 생각하며 철학자가 되고 싶었던 그는 전공을 공부하는 한편 문학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문학의 길이 이렇게 심오할 줄은 몰랐지요. 갈수록 무언가의 마력에 홀린 느낌입니다. 시를 쓰면서 죽음의 공포감 같은 게 많이 완화된 느낌입니다. 수학이나 공학자가 예술을 선호해 성공한 예는 드물게 나타납니다. 이치 계산에 밝다는 이유가 아니겠어요. 시학은 곧 공학에서 비롯된다고나 할까요, 구체적인 공학적 추리력은 심도 깊은 문학적 상상력에 많은 기여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되고, 1987년 ‘문예중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하기 까지 많은 시와 시조들은 부산의 초량동에서 탄생한 작품들이다. 통영의 강구안길에서 만난 시인은 부산의 창작시절부터 들려주었다.

강구안 포구로 달려오는 통영 바다는 아직은 겨울바다이지만, 어느새 봄기운이 조금씩 번지는 듯했다. “산에 대해 쓴 시집이니까, 어디 산자락에서 만나야 하는데 이렇게 바닷가에서 만나네요.” 강구안은 근대 통영읍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했던 포구이다. “혹한에는 북풍을 막는 여황산이 엄마 품 같이 포근히 감싸주고, 여름에는 한려수도 너머 대양으로부터 해풍이 불어오지요. 연중 더불어 살기 편안한 곳입니다.” 길지 않은 설명에도 고향 사랑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그는 바다를 쓴 시인으로 더 유명했다. “1987년 가업을 위해 낙향하면서부터 바다를 시로 썼습니다. 근 20년간 양어업을 하면서 제 삶은 바다와 함께였습니다. 바다가 현장이었고 현실이었죠. 저 나름대로 구축한 시학이라 한다면 ‘현상의 시학’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몸으로 체득한 날것에서부터 삭혀져 발효되어진 현장의 구체적 현상을 이미지화 한 것을 말합니다. 체험과 상징이 어우러지는 형상화이죠. 이는 1979년 계엄군부에 저항했던 시절의 시편들에서부터, 신발공장 노동자의 삶을 대변한 시, 연·근해 해양시, 그리고 ‘산악시’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시로 풀어낸 백두대간의 산

하늘재에서 천왕봉까지- 김보한 /시계
김보한 시인은 1985년에 지리산을 만난 일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1999년경에 가업인 양어장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죠. 주위 분들이 산을 권유했고, 저도 점점 더 산에 매료됐습니다.”

그가 걸었던 백두대간을 지명과 거리로 짚어보자. 그는 2003년부터 2013년까지 백두대간(진부령에서 천왕봉까지) 구간종주(총거리 734.65㎞)를 했다. 1년에 3∼5회(회당 1박 2일 포함) 종주를 합산해서, 총산행기간은 전체 50일 정도이다. 스틱도 없이 발목 짧은 안전화를 끌고 걸었던 길이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낙남정맥 구간종주(239.85㎞)도 마무리 했다.

시인은 마음속에 가득한 백두대간을 시로 풀어냈다. 시집 ‘진부령에서 하늘재까지’(2008), 시조집 ‘백두대간, 길을 묻다’(2017), 그리고 시집 ‘하늘재에서 천왕봉까지’(2020)에는 이 나라의 산맥이 힘차게 달린다.

‘하늘재에서 천왕봉까지’의 목차는 ‘배꼽 진부령’ ‘별천지 소청봉산장’ ‘부봉을 만나다’ ‘조령산 넘다’로 시작해, 산과 봉우리의 이름들이 줄줄 이어진다. 솔직히 모르는 산들이 많았다. 오래, 묵묵히 우리 곁을 지켜주었던 든든한 친구를 외면하며 살아온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도 든다. 김보한 시인이 그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고, 힘들게 걸어가 그 풍경을 담고, 마음을 나누어 주어 고맙다.

‘하늘재에서 천왕봉까지’를 읽다가 아는 산길이 나오니 와락 반갑다. 시 ‘촛대봉’이다. “길길이 날뛰며 분기등천하는 자 있으면 펑펑 눈이 눈을 가리는 날 세석산장에서 가파르기 자랑 으뜸인 촛대봉 길 오르라.” 첫 구절이 언젠가 한여름에 숨을 헐떡이며 걸었던 지리산의 추억, 눈앞에 있는 것 같았으나 좀처럼 가까이 와주지 않았던 촛대봉의 기억을 떠올려주었다. 그래, 거기에 산이 있었다. 힘들다고 투덜대면서 걷다 보면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고 넓혀주던 산은 한 번도 우리를 떠난 적이 없었다. 이 땅이 만들어지던 때부터 사람과 세월을 품어 온 산은 눈만 돌리면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김보한 시인은 이제 강을 꿈꾼다. 10년의 여정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그의 발길이 강에 가서 닿는 날, 그의 시집에서는 강이 푸르고 시리게 흘러갈 것이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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