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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권의 문화 동행 <8> 정방록 빛 보게 한 김종수 씨

25의용 흔적 뒤쫓다 만난 후손, 그의 족보서 ‘수영향토사’ 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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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영史에 평생 바친 부친 따라
- 지역 역사 되찾기 활동에 앞장
- 책 쓰며 정방록 찾기 매달렸지만
- 문헌 속 존재기록 확인에 그쳐

- 최막내 의용 15세손 도움으로
- 국가가 내린 정방록 내용 확인
- 호역 면제·공적에 따른 상 담겨

- “수영 25의용 대부분 일반 백성
- 왜란 활약 국가에서 인정한 셈
- 부산 대표 역사 콘텐츠로 가꿔야”

그 모든 일은 ‘아버지’를 기리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선친께서는 1925년 수영본동(수영동 85번지)에서 태어난 수영 토박이셨습니다. ‘수영 25 의용’을 기리는 일부터 수영의 얼을 잇고 가꾸는 일에 한평생 노력하셨죠. 수영기로회, 사단법인 수영 의용충혼숭모회 등의 대표를 맡아 열과 성을 다하셨습니다.” 김종수(72)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산수영구협의회장은 “그런 아버님 모습을 곁에서 보며 힘을 보태다 보니 저 또한 수영 향토사와 문화를 가꾸는 일을 오랫동안 하게 됐다”고 선친을 회고했다.

김 회장의 선친 백산 김기배(1925~1997) 선생 일대기를 보면 그분의 ‘수영 사랑’과 진취적 인품을 짐작할 수 있다. ▷수영고당 중건·신축 ▷수영 의용충혼숭모회 초대 이사장 ▷1963년 부산시 일반개간허가 제1호 동흥농장(백산 일대) 개척 ▷1950년 이전부터 현재 부산데파트 일대에서 전국 규모 동흥농약 경영 ▷무술년(1994) 수영 25 의용 향사 초헌관 등 부산현대사, 수영지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삶을 살았다. 수영 의용충혼숭모회는 25 의용을 기리는 단체다.

김 회장은 “저 또한 수영의 여러 모임 대표를 맡아왔고 우리 고장 일에 내 일처럼 나서왔다. 민락동 100년 역사를 담은 책 ‘민락 100년’, 수영 어부의 삶을 담은 ‘도시어부의 삶과 일상’ 발간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모두 선친의 영향이다”고 말했다.

■선친의 뜻 잇고자 책 집필 나서

김종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산수영구협의회장이 부산 수영구 수영사적공원 안에 있는 25 의용단에서 최근 찾아낸 ‘정방록’의 가치와 활용방안에 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김성효 전문기자 kimsh@kookje.co.kr
김종수 회장은 수영 향토사에 관한 책을 쓰는 것으로 선친의 뜻을 잇고자 했다. “애초 책 제목에 ‘수영 25 의용(단)’을 넣고 내용 또한 그 중심으로 전개할 구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평소 교류하던 동길산 시인이 ‘수영 25 의용의 공적을 국가가 공인한 기록으로, 이안눌 동래부사가 쓴 ‘정방록(旌榜錄)’ 자체가 중요하니 그걸 찾아보라’고 말해주더군요. 동 시인은 수영구가 내는 신문에 10년 넘게 글을 쓰고 있어 수영 역사와 문화에 해박한 분이죠.”

김 회장은 “1592~1598년 벌어진 임진왜란·정유재란 내내 왜적에 대항했던 분들이 수영 의용 25인(하급 군관 또는 평범한 백성이었다)이고 그 공적을 기록한 것이 ‘정방록’이라고 설명했다. 한시(漢詩) 4300여 편을 남긴 탁월한 문인이자 백성을 잘 보살핀 빼어난 목민관인 이안눌(1571~1637)이 동래부사로 있던 1608년 수영 주민의 청원을 받아 조사한 뒤 ‘정방록’을 썼다. 이를 둘러싼 상황 전반은 1853년 수영 25 의용단을 조성하면서 경상좌수사 장인식이 지은 ‘의용제인비(義勇諸人碑)’에도 잘 정돈돼 있어 일부를 인용한다.

“…난리가 끝난 뒤 동악(東岳) 이안눌 공이 부사로 와서 백성의 탄원서에 따라 25인의 행적과 7년 동안 육지와 바다에서 전투한 행적을 탐문하고 의용(義勇) 두 글자를 여러 집 대문에 걸게 하며 ‘정방록’에 먼저 기록하였다. 이때는 살아남은 사람이 몇 있었으니 반드시 상세하게 조사했을 것이다. 그 뒤 오한원 공이 부역을 면제해줌으로써 포상하고 글을 지어 표창하였다.…이 25명은 먼 변방의 군교(軍校)로서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할 것을 맹세하였고….”

■파묻혔던 ‘김가정방록’ 재발견

최도선 씨가 족보에 수록된 ‘최가정방록’을 설명하고 있다. 김성효 전문기자
“수영 25 의용 자료를 많이 접할수록 ‘정방록’ 언급도 늘어났는데, 정작 ‘정방록’ 자체를 찾을 수 없어 힘들었다”고 김 회장은 떠올렸다. “‘정방록’이 침략자인 일본군에 항거해 투쟁한 기록을 담은 만큼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의해 멸실된 게 아닌가 하는 데 생각이 미쳤고, 괴로웠다”고 그는 말했다. 어쨌든 부산시 디지털 부산역사문화대전 등에는 ‘글(정방록)은 남아 있지 않고, 있었다는 기록만 전한다’고 돼 있고, 한국학 관련 사료를 뒤져도 ‘정방록’은 안 나왔다.

지난해 9월께 김 회장이 말하는 ‘첫 번째 기적’이 왔다. “‘정방록’ 자체를 찾아보라는 동길산 시인의 권유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으나 찾지 못하고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선친께서 각별하게 여기신 수영 의용충혼숭모회 관련 기록을 보던 중 짚이는 데가 있어, 1986년 부산 남구청(당시 수영은 남구에 속했다)이 펴낸 ‘남구향토지’를 찾아보니 독립지사 이태길 선생(당시 동천고 교장)이 번역한 ‘정방록’이 들어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남구향토지’에는 이‘정방록’을 구성하는 ‘유향소위핵보사’(유향소에서 조사해 보고한 기록), 이안눌 동래부사가 쓴 ‘김가정방록-도호부위완호사(김옥계 의용의 집안에 대한 동래도호부의 표창기록)가 실려 있다. 또 1806년 동래도호부사 오한원이 수영 25 의용의 후손에게 원호를 제공한 뜻과 내역을 담은 ‘도호부위완위완호사’도 포함됐다. 1980년대 중반 ‘남구향토지’에 실렸던 것을 ‘재발견’한 것이지만, 이 향토사 기록 자체가 그간 사실상 파묻혀 있었기에 그 의미는 뚜렷하다.

■최막내 의용 후손 최도선 씨

수영 25 의용단의 사당 ‘의용사(義勇祠)’ 전경.
그즈음 김 회장은 수영 25 의용 가운데 한 분인 최막내(崔莫乃) 어른의 15세손 최도선(72) 씨를 만나게 된다. 부산 연제구 연산동에 사는 최 씨는 이렇게 회고했다. “족보를 통해 최막내 할아버지께서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워 공을 세우신 분이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 충렬사에서 향사를 열 때 의용의 후손에게 보낸 초청장, 고종의 칙서 등 관련 유물도 있지요.”

2000년대 초 최도선 씨 아들이 학교에 다녀와 말했다. “아버지, 우리 집안에 위인이 계신지 알아보라는 숙제를 받았습니다.” 최 씨는 “그럼! 계시지”라고 말하고는 아들 손을 잡고 최막내 의용을 모신 수영사적공원 25 의용단을 비롯해 충렬사 등지를 다녔다. 그런 인연으로 김 회장과 연락이 닿았다. 최 씨는 김 회장에게 참고가 될지 모르겠다며 족보(가문에 전해지던 것을 1970년 한문으로 다시 정리한 것) 일부의 복사본을 건넸다. 김 회장은 “놀랍게도 그 속에 ‘최가정방록’이 있었다”며 그때의 흥분을 떠올렸다. 최 씨는 “최막내 할아버지 묘소 등과 관련한 기록은 인지했지만 ‘정방록’은 채 몰랐다”고 떠올렸다. 김 회장은 “큰 복이고 천운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최가정방록’도 묻혀 있다 세상에 나왔다.

■되새기고 가꿀 역사문화 자산

위에 언급한 ‘김가정방록’과 ‘최가정방록’은 내용이 같다. 받는 사람 이름이 김옥계·최막내로 다를 뿐이다. ‘정방록’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이곳 수영은 멀리 바다 한 귀퉁이에 있는데 지난 임진년 영내의 백성이 왜적의 수중에 함몰되어…이에 ‘의용’ 두 글자를 새겨 25인의 집 대문 위에 달게 하라. 호역(戶役)을 면제하고 공적에 따라 상을 내리는 일은 마땅히 순찰사에 보고하여 시행하겠으니 그대들은 잘 알고 그대들의 절의를 더욱 힘쓰면서 길이 영광을 받을지어다.”

25 의용은 김옥계 정인강 최송업 최수만 박지수 김팽량 박응복 심남 이은춘 정수원 박림 신복 이수 이희복 최한련 최한손 최막내 최끝량 김달망 김덕봉 이실정 김허롱 주난금 김종수 김진옥이다. 김 회장은 “부산이 가꿔야 할 소중한 역사문화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조봉권 선임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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