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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영화 ‘미나리’ 한예리

미나리처럼 가족 지탱한 사랑의 뿌리 “어릴적 엄마의 기억 도움됐죠”

  •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  |   입력 : 2021-03-02 18:50:10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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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남부 이민 1세대 가족 이야기
- 두 아이 어머니 모니카 역 맡아
- “감독과 유년 회상, 연기에 도움”

- 20억 저예산 … 6주간 현지 촬영
- 윤여정과 에어비앤비서 묵기도
- 美 영화상 65개 휩쓴 비결 묻자
- “관객, 부모세대 이해할 계기돼”

- 직접 부른 엔딩 OST ‘레인 송’
-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 올라

아메리칸드림을 꿈꿨던 미국 이민 1세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미나리’(개봉 3일)가 지난해부터 미국 영화계에서 화제다. ‘미나리’는 2020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 수상을 시작으로 미 영화협회 및 각종 비평가협회 시상식에서 총 66관왕을 차지했다. 그리고 지난달 28일(현지시간)에는 아카데미상과 함께 북미 양대 영화상으로 알려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영화 ‘미나리’에서 낯선 땅으로 이민 온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엄마 모니카 역을 맡은 한예리. 그는 “오직 대본 안의 모니카와 제가 생각하는 모니카와의 조율만 있었다”며 한예리만의 모니카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을 설명했다. 판씨네마 제공
실제 이민 2세대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미나리’는 1980년대 초반 희망을 품고 미국으로 이주한 제이콥과 모니카 부부, 이들의 자녀 데이비드와 앤, 그리고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먼 길을 온 친정어머니 순자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았다. 가장인 제이콥은 우리에게 이창동 감독의 ‘버닝’으로 낯익은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이 맡았으며, 아내 모니카는 한예리, 할머니 순자는 윤여정이 맡아 40년 전 미국 남부 아칸소에서 자신의 농장을 가꾸려는 이민 1세대의 모습을 재연했다. 낯선 땅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고 실패하며, 갈등하고 화해하는 가족의 모습 속에서 희망의 메시지와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동양인 이민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미국에서 공감을 얻는 이유에 관해 최근 화상 인터뷰로 만난 한예리는 “미국이라는 땅 자체가 여러 나라에서 온 이민자의 다양한 문화가 섞여, 이 속에서 부딪치면서 자란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며 “이들은 ‘미나리’를 보기 힘들어하면서도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듬고 부모 세대를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자신도 모니카 역을 맡아 영화를 촬영하면서 부모님과 할머니에 대해 떠올렸다는 한예리에게 ‘미나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미나리’의 모니카가 되다

1980년대 초반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을 담은 영화 ‘미나리’. 판씨네마 제공
한예리가 ‘미나리’의 대본을 처음 접한 것은 2019년 드라마 ‘녹두꽃’을 촬영하고 있을 때였다. 영어 대본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었지만 완벽한 번역이 아니라서 ‘미나리’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다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정 감독을 빨리 만나고 싶었는데 “막상 감독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도 뭐가 딱 좋은지는 잘 모르겠더라. 그런데 너무 좋고 따뜻한 분이어서 이 사람과 뭐라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미나리’와 정 감독에 대한 초반 인상을 떠올렸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녹두꽃’의 마지막 촬영 일정이 나오지 않은 터라 출연에 대한 확답은 할 수 없었다.

한예리는 만일 자신이 못하게 되면 다른 좋은 배우를 소개하겠다는 답변을 했다. 물론 그는 자전적 이야기를 대본으로 쓴 정 감독과 대화를 하는 동안 자신의 부모님과 유년 시절을 떠올릴 수 있어서 더욱 풍부한 모니카를 만들 수 있겠다는 어렴풋한 자신감도 있었다. “정 감독님과 ‘어렸을 때 부모님이 싸웠을 때나 혹은 비슷한 상황의 기억이 있느냐’고 하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했다. 그때의 엄마의 표정 불안감을 이야기했다.”

결국 모니카는 한예리에게 들어왔고, 미국으로 날아가 바로 모니카로 변신했다. 한예리는 “정 감독님은 절대로 본인 어머님과 비슷하게 연기하길 바라지 않았고 그래서 촬영 전에 사진도 보여주지 않았다. 오직 대본 안의 모니카와 제가 생각하는 모니카와의 조율만 있었다”며 한예리만의 모니카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을 설명했다. 그런데 혹시 정 감독은 한예리가 실제 어머니와 닮아서 캐스팅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감독님께서 어머님과 제가 닮아서 캐스팅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중에 감독님의 어머님을 만났을 때 무척 곱고 예쁘셔서 모니카와 닮았지 저와 닮았다는 생각은 안 했다. 이민을 와서 오랜 시간을 이겨내신 분이어서 멋있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저예산의 25회 차 촬영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실제 한 가족처럼 6주간 촬영을 진행한 ‘미나리’ 출연진과 정이삭 감독. (위 왼쪽부터 정이삭 감독, 한예리, 스티븐 연, 윤여정, 앨런 김, 노엘 케이트 조). 판씨네마 제공
일반적으로 미국 영화에 출연한다고 하면 화려한 할리우드 상업영화 촬영 현장을 떠올린다. 주연 배우들을 위한 화려한 트레일러와 뷔페 같은 케이터링 등을 상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나리’는 그런 할리우드 상업영화 촬영 현장과는 전혀 다른 일반 한국 상업영화보다 저예산인 20억 원 정도로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진행됐다. 그래서 촬영 기간은 6주로, 겨우 25회 만에 모든 촬영을 마쳤다. 숙소도 호텔이 아닌 에어비앤비(숙박 공유 서비스)로 얻었다. “윤 선생님과 영화를 도와준 한국 스태프, 제가 한 집에서 보냈다. 스티븐 연이나 정 감독님도 그곳에 와서 밥을 먹고 대본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때 문어체로 된 한국어 대사를 구어체로 바꿀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 시간이 있어서 좀 더 빠르게 촬영이 진행될 수 있었다.” 한예리는 그때 함께 지냈던 경험을 지금도 그리워하며 “코로나19에서 벗어나면 다시 모여서 밥 한 끼 먹고 싶다”고 희망했다.

한편 윤여정은 영화 속 배경이 되는 1980년대 초에 미국에서 이민 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혹시 당시 분위기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그때만 해도 비행기 타는 일이 큰일이었고, 가족을 떠나서 이민을 가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다고 하시더라. 다시는 가족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떠났기 때문이다”며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미나리’의 의미

정 감독은 ‘미나리’에 대해 “‘가족 간의 사랑’을 의미한다.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이 우리 가족과 닮았다”고 밝혔다. 영화에서는 순자가 맑은 냇가에 심은 미나리가 풍성하게 자라 고난을 겪는 제이콥과 모니카 가족에게 희망으로 다가온다. 또 미나리는 한예리가 연기한 모니카와 닮았다. 그는 “제이콥과 모니카는 어린 나이에 결혼해 경제적 기반이 없었고, 특히 아들이 아픈 상태에서 낯선 곳으로 와서 생활하면서 트러블이 있었을 것”이라고 전제한 후 “하지만 모니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사랑이었고, 그것이 뿌리가 돼서 가족을 지탱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가정의 해체를 원하지 않았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를 기르고 싶었고, 제이콥을 사랑하고 지키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가족의 행복을 꿈꾸며 딸과 아들 세대가 행복한 꿈을 꿀 수 있는 터전을 만들고 싶었던 모니카의 마음을 연기한 것이다.

한예리의 이런 마음은 엔딩 크레딧에서 들리는 OST ‘레인 송(Rain Song)’으로 이어진다. 에밀 모세리 음악감독이 작곡한 ‘레인 송’은 오는 4월 25일에 개최되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 1차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감독님이 내가 부르면 좋겠다고 했는데, 영화에 도움이 되는 일이고 곡이 너무 아름다워서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했다. 녹음할 때는 자장가처럼 편안하게 부르면 된다고 해서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카데미 1차 후보에 올라서 너무 신기했다”며 여전히 얼떨떨해했다.

한편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지금까지 영화상 66관왕을 달성한 ‘미나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게 한다. 특히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은 유력하다. ‘미나리’가 지금까지 얻은 성과에 대해 “이민자들이 따뜻한 위로를 받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는 한예리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일부를 담담하게 그려내는 것이 ‘미나리’의 아름다운 지점”이라며 “‘미나리’가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latehop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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