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급 메뉴로 개발한 청요릿집
- 경제제재로 몰락 뒤 싸게 팔아
- 해외서 유입 돈가스·커피·카레
- 한국인 밥상에 오른 역사 추적
- 미원·다시다의 원조 이야기도
인천에 터를 잡은 중국 산둥 출신 화교의 손에서 한국식 짜장면이 탄생했다는 일화는 상식이다. 그 기원이 중국의 짜지앙미엔(작장면·炸醬麵)이라는 것도. 하지만 ‘임오군란과 짜장면’ ‘박정희 정권과 짜장면’의 스토리는 또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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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경성의 조선철도호텔 커피점. 무용가 최승희가 커피를 마시고 있다. 추수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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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역사서 작가, 동화작가인 저자 정명섭이 ‘한국인의 맛’이라는 신간을 냈다. 한국인의 맛이라면 고추장, 김치, 콩나물국밥을 다루나 싶겠지만 목차를 보면 이렇다. 아지노모도(옛 감미료), 짜장면, 돈가스, 설탕, 카레, 단팥빵, 김밥, 팥빙수, 커피. 이 리스트에 반감이 생긴다면 이 음식들이 대개 일본에서 건너와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정착했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또 가만히 보면 ‘미원’의 모태인 아지노모도를 포함해 이중 어느 하나 ‘한국인의 맛’이 아닌 것도 없다.
이 음식들은 대체 어떻게 한국민의 삶 속에 슬그머니 들어앉아 버린 걸까. 이 책은 당대의 신문·잡지 기사, 지면 광고 등 자료를 바탕으로 그 시작을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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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감미료인 아지노모도 신문 광고. |
임오군란의 결과로 제물포 조약이 체결되자 청나라의 군대, 상인 등이 인천 제물포를 통해 조선으로 물밀 듯 들어온다. 산둥 출신 화교들이 인천에서 처음 만들어 판 짜장면은 자국 일꾼을 위한 값싼 음식이었지만, 이후 ‘공화춘’ 등 이름난 청요릿집들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달짝지근한 춘장을 개발해 판매하면서 고급요리가 된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들어 화교들의 어마어마한 현금을 겨냥한 경제 탄압이 이어지자 고급 사교의 장이었던 청요릿집은 ‘동네 중국집’으로 전락했고 고급 요리였던 짜장면도 만만하게 시켜 먹는 값싼 음식이 됐다. 정권의 화교 억압이라는 역사가 없었다면 짜장면이 한국인의 소울 푸드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돈가스가 ‘코틀레트’라는 프랑스 음식에서 비롯됐고 영어 ‘커틀릿’을 거쳐 일본어 ‘까스’로 바뀐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근대 일본에서 돈가스라는 음식이 생겨난 것은 서양인에 대한 일본인의 열등감과, 서양인처럼 되고 싶다는 그들의 열망 때문이었다. 당대 일본의 지식인들은 고기를 많이 먹어야 서양인처럼 몸집이 커질 수 있다고 역설하며 ‘고기 먹기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친다. 당시 육식을 꺼리던 일본인에게 고기를 먹이기 위해 개발된 음식이 돈가스다. 익숙한 튀김 조리법을 고기 요리에 적용해 거부감을 줄인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들어온 이 돈가스는 일본인은 물론 한국인까지 사로잡았다.
‘고열량 고단백의 서양 음식을 많이 먹이겠다’는 목표로 만들어진 또 다른 일본 식품이 아지노모도, 즉 감미료다. 서양요리의 이질감을 중화시킨 감미료의 중독성은 대단했고, 해방 이후 일본 현지에서 생산을 멈춘 뒤에도 한국인은 아지노모도를 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탄생한 제품이 ‘미원’ ‘미풍’이고, ‘다시다’ 역시 아지노모도에서 이어진 맥락이다.
한 챕터에 하나의 음식을 다룬다. 일제강점기 ‘별세계’라는 잡지의 기자 류경호가 근대화 물결과 함께 조선에 들어온 음식에 관해 알아본다는 설정의 짧은 소설이 호기심을 자극한 뒤 보다 더 자세한 백과사전식 설명이 뒤따른다. 음식이 역사를, 역사가 다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흥미롭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