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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02> 김호준 작가의 장편소설 ‘디그요정’

뒤처져도 괜찮아, 냉대와 상처를 ‘디그’할 수 있다면…

디그- 공격을 받아내는 배구 기술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1-03-21 19:52:01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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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 보광고 학생부장 선생님
- 23년 교직 경험 담은 첫 장편 내
- 아이들 배구로 역경 극복 스토리
- “땀·승리의 기쁨 일깨워 주고파”

중고등학교 시절의 다른 이름이 ‘사춘기’였다. 그 시기에 필자의 감정은 늘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중학교 때도 매주 일기장 검사를 하겠다는 담임을 만났다. 일기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속상해서 “선생님도 매일 일기 쓰시나요?” 물었다가 혼이 났다. 억울했다. 주변에는 온통 완벽한 표정을 지으며 늘 통제하려 드는 나이든 사람들이 포위를 하고 있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습량은 늘어났고, 어려운 교과시간은 따분하고 지루했다. 무엇을 향해,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말해주는 어른이 없었다. 그런대로 큰 일 없이 지나오기는 했으나, 뭔가 불안정했던 그 시기는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다. 김호준의 장편소설 ‘디그요정’이 그 시기의 필자를 만나게 했다. 경남 양산에서 김호준 작가를 만났다.
   
소설가 김호준이 교사로 재직 중인 경남 양산 보광고 교정에 섰다. 그가 좋아하는 수령 200년 적송이 뒤에 보인다.
■교사와 소설가의 길

김호준은 1969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현재 양산 보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 중이다. 교사가 되어 처음 온 이 학교에서 23년째를 맞았다. 양산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비에 젖은 도로 건너편에 학교가 있었다. 정문에서 키가 크고 잘생긴 적송을 보았다.

   
디그요정- 김호준/ 양철북
“학생들이 학교에 오면서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이 소나무에요. 200여년 수령입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나무랍니다. 매일 아침 이 나무아래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만납니다.” 그는 내친 김에 학교 안의 느티나무 왕벚나무 은행나무 등을 자랑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도서실 한쪽의 좌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 자리가 창밖으로 영축산이 잘 보이는 명당입니다. 오늘은 비가 오고 안개가 끼어서 잘 안보이네요.”

그는 학생부장이다. 학창시절 내내 잘못한 것 없어도 왠지 두려워서 슬슬 피했던 학생부장 선생님이 떠오른다고 했더니 그는 슬며시 웃었다. “학생부를 맡는 교사들은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에요. 누군들 학생들이 싫어하는 악역을 맡고 싶겠어요. 가장 하기 싫은 일 중에 하나일겁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합니다. 마음이 약해서 떠맡았다고나 할까요. 저도 어쩌다보니 15년째 학생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아니, 필자가 별다른 이유도 없이 피했던 그 시절 그 학생부 선생님들 마음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김호준은 고등학교 시절에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강제적인 야간자율학습, 제대로 된 책이 없는 도서관…. 잘 아시죠? 그때는 책도 귀했어요. 친구들끼리 소설을 돌려 읽곤 했어요. 이외수의 ‘들개’ ‘꿈꾸는 식물’, 김홍신의 ‘인간시장’을 차례를 기다렸다가 읽었죠. 국어교과서에서 문학작품만 따로 떼어내 묶어서 보기도 했구요. 소설이 쓰고 싶어 대학은 국문학과로 진학했습니다. 이병주의 ‘지리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같은 대하소설에 빠졌습니다. 제대 후에 교지편집실의 소설 공모에 당선이 됐어요. 심사를 맡았던 려증동 선생님께서 제게 ‘큰 이야기꾼이 되겠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제게 큰 힘을 주셨죠.”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 교사의 길을 택했지만, 소설은 그의 마음에 풀지 못한 숙제처럼 남아있었다. “조계종 산행수기 공모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소설가 이복구 선생님께 1년 정도 배우기도 하고, 여러 매체에 응모도 해보고요. ‘디그요정’을 양철북 출판사에 투고 해봤는데, 곧바로 연락이 와서 책이 나오게 됐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아이를 더 이해한다

김호준의 첫 장편소설 ‘디그요정’에는 교사로 살아오면서 아이들과 함께 겪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소설 속에는 푸른 나이의 청소년들이지만, 삶의 의욕을 상실한 아이들이 있다. 부모의 이혼, 사고로 죽은 동생, 아껴주던 할머니의 죽음으로 ‘수능’이는 막바지까지 내몰렸다. 일찌감치 공부도 친구도 삶도 포기했다. 수능이 뿐이랴. 많은 아이들이 순조롭게 공부를 따라가는 몇 명의 아이들 위주로 돌아가는 수업 탓에 그저 들러리 역할만 하고 있다. 그 아이들을 위해 발버둥 치는 선생이 바로 김봉수다. 그는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간다. 아이들은 때론 비웃고 때론 반감을 드러내며 대들기도 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김봉수 선생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다.

김봉수 선생은 배구를 통해 아이들과 만난다. 배구에서도 ‘디그’를 강조한다. 그것은 김호준의 마음이기도 하다. 실제로 작가는 보광고 아이들과 배구를 했다. 디그는 배구 기술로 상대편의 공격을 받아내 재공격 할 수 있도록 한다. 공의 방향이나 착지 지점을 예측하는 능력과 몸의 유연성과 순발력을 요구하는 수비 동작이다. 김봉수는 자신의 몸을 스펀지처럼 만들어 어떤 강력한 공이라도 받아내는 디그가 삶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유용한 기술임을 아이들에게 몸으로 가르쳐준다. 아이들이 세상으로부터 받는 냉대와 상처에 지레 겁먹고 외면하거나 아파하지 말고 스펀지처럼 그것들을 가볍게 받아쳐 내길 바라며 ‘디그요정’이 되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조금씩 변해간다. 우여곡절 끝에 나간 시합에서 패하고 말지만, 대신 뭔가 하고 싶다는 뜨거운 마음을 얻는다.

소설 말미의 ‘작가의 말’은 우리의 교육현실과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말해준다. “뒤처진 아이들은 학교에서 할 일이 없습니다. 책상에 얼굴을 붙이고 자는 일에 익숙해집니다. 방과 후에는 길거리를 배회합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자신에게 미안해합니다. 부모님께 죄송해합니다. 소리 없는 울음이라 주변에 들리지 않을 뿐입니다. 배움에 뒤처졌다고 남은 인생 다 뒤처진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배구를 통해 정직하게 땀 흘리는 기쁨, 승리의 기쁨을 조금이라도 맛보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옆에서 힘내라고 열심히 응원하는 어른도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김호준은 이 소설을 쓰면서 아이들을 더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 뒤처지고 싶은 아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외침일지도 모른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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