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정아 공동대표 1997년 시작
- 남편 김영수 씨도 전국적 활동
- 풀뿌리문화공간 모범으로 우뚝
- 2009년 교대 인근 건물 신축
- 책 사랑방·전시실·뜰 등 갖춰
- 도서전, 인문학·그림강좌 진행
- 강 대표 유방암 투병에도 꿋꿋
- 방정환 전집 읽기모임 등 계획
- 연제구에 소극장 마련 꿈 꿔
코로나19는 모든 종류의 ‘사랑방’을 덮쳐 무력하게 만들었다. 사람이 만나고 모여야 사랑도 꽃피고 웃음꽃도 만발하고 좋은 일도 하게 되는 곳이 사랑방이다. 코로나 역병은 사랑방 문화가 깃든 곳을 맨 먼저 그리고 집요하게 위협했다.
‘책과아이들’(부산 연제구 거제동) 형편이 어떤지 궁금하고 걱정됐다. 부산에 흔치 않은 ‘진짜 마을문화 사랑방’으로 의연하게 자리 잡은 책과아이들이 코로나 탓에 무사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 책과아이들은 책·문화·예술·가족이 어우러지는 ‘사랑방’이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책과아이들에 찾아가 강정아(56) 김영수(58) 공동 대표를 만났다. 책과아이들을 24년째 가꾸며 한국에서 손꼽히는 마을서점으로 만든 두 사람은 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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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연제구 동네책방인 책과아이들을 24년째 가꿔온 강정아(왼쪽) 김영수 부부가 지난 24일 서점 내 책사랑방에 나란히 앉아 뜰을 내다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정빈 기자 |
■뜰이 있는 동네책방
국제신문 근처 부산교대 교문 인근에 있는 책과아이들에는 잔디가 예쁘게 자란 뜰과 그네의자, 뜰에 사는 고양이, 마당 벤치, 책을 파는 매장, 책 사랑방, 전시실 등이 있다. 어린이 청소년 책을 주로 갖춰 놓고 파니 어린이·청소년 서점인 셈이다.
당신에게 책을 살필 시간과 책에 대한 사랑과 책을 오프라인 서점에서 살 마음이 있다면, 책과아이들은 드물게 멋지고 편한 곳이다. 그뿐 아니다. 책과아이들의 저력과 매력은 ‘마을의 문화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해내는 ‘동네책방’이란 데서 더 선명해진다. “이 책들 좀 보시겠어요?” 강정아 대표가 신간 동화책 ‘자꾸자꾸 책방’(글 장수지 외 8명·그림 김민선)과 그림책 ‘황새알마을 아이들’(글 안미란 그림 공동환)을 건넨다.
‘황새알마을 아이들’은 부제가 ‘부산 거제1동 어른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2019년 부산 연제구 거제1동 주민센터와 주민자치위원회가 제안하고 책과아이들이 기획·실행한 ‘거제1동 마을 산책’ 프로그램이 어린이와 주민 참여 속에 열렸다. 2020년에는 그 성과를 이어 ‘동화작가와 만드는 황새알마을 이야기 주민 취재단’(강정아 공소연 김민선 김영수 이진경 박종숙 황희경)을 꾸려 거제1동을 누비며 어르신들 이야기를 들었고, 이를 안미란 동화작가가 이야기로 창작해 예쁘고 재미있는(!) 책(비매품)으로 펴내 주민과 나눴다.
■주민과 함께 만든 우리 동네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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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김중석 그림작가 초청 행사에 참여한 어린이와 어른이 그림 솜씨를 자랑하고 있다. 책과아이들 제공 |
‘자꾸자꾸 책방’은 얘깃거리가 더 많다. 지난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사업에 책과아이들이 응모해 선정됐다. 동화작가를 비롯해 글 쓰기 좋아하고 동네책방을 아끼는 이웃이 함께 책과아이들을 주인공이자 배경으로 이야기책을 쓰는 프로젝트였다. 한국의 동네책방에 관한 많은 책 가운데 유일한 동화책이 이렇게 탄생했다. 비매품으로 지난해 말 나온 이 책을 유명한 사계절출판사가 보고 정식 출판을 제안해왔고, 현재 막바지 출간 작업 중이다.
이 두 책의 출판기념회가 지난해 말 각각 열렸는데, 이성문 연제구청장이 두 번 다 와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여기엔 이 구청장 부부가 자녀를 책과아이들에 한동안 보내 책과 친해지도록 안내했던 인연도 작용했겠지만, 두 책이 나온 과정 자체가 문화를 매개로 한 주민 참여와 자치, 우리 동네를 우리가 가꾸는 지역문화 활동의 요체를 잘 보여준 점이 더욱 컸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살피면, 2020년 한 해와 2021년 초 책과아이들은 코로나 역병 방역에 힘을 다하면서 해야 할 일은 돌쇠처럼, 여우처럼 많이 해냈다.
■연극·전시·독서·토론·체험
예컨대 책과아이들 5층 평심갤러리에서는 지난 23일부터 그림책 ‘태극기를 든 소녀 2-독립을 위해 싸운 용감한 여성들’(황동진 박미화) ‘할머니 우리 할머니-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기억합니다’(한성원) 전시 및 관련 도서전을 시작했다.
지난해 9월~올해 2월 진행한 ‘청소년, 가족과 함께 인문학을 읽다’ 시즌 9 프로그램은 코로나 방역에 신경 쓰느라 예년보다 빡빡하게 운영했다. 이 프로그램을 위해 조현설(신화) 이임하(전쟁) 강신준(경제학) 김태권(예술) 안치용(정치경제) 씨가 강사로 다녀갔다. 김영수 강정아 대표가 참 아끼는 ‘한 반 나들이’(초등학교 1개 학급 단위로 서점을 체험하는 행사)는 코로나로 지난해 제대로 못 열게 됐다. 실망하지 않고 전통 연희·연극·이야기를 합한 ‘두근두근 당당하게-구름과 잠잠이의 옛이야기판’ 등을 펼쳤다. 그림 강좌도 인기가 높았다.
2021년에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 서점 지원사업’에 선정돼 방정환 전집 읽기 모임과 온동네 집단 창작 프로그램에 곧 들어간다. 책과아이들 페이스북과 인터넷 카페를 살피면 코로나 공격 속에서도 열심히 ‘문화 사랑방’ 구실을 하는 모습이 훤히 보인다.
■1997년 시작한 ‘큰엄마’ 동네책방
책과아이들은 강정아 대표가 1997년 12월 부산 부산진구 양정 현대아파트 상가 40㎡(12평) 작은 공간에서 어린이책 서점으로 시작했다. 아이들이 그 좁은 공간에서 즐거워하지 않는 현실에 부딪히자 “엄청나게 무리해서” 2001년 도시철도가 가까운 부산교대 앞으로 왔다. 책과아이들이 자리 잡고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공간은 더 절실하게 필요해졌다. 고심 끝에 또 한 번 모든 걸 걸고 건물을 새로 지어 입주한 해가 2009년이다.
책과아이들은 전국 동네책방들이 인정하는 선구자이다. 강 대표는 “전국 동네책방 모임에 가면 우리 서점을 ‘큰엄마’라고들 한다”고 전했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초대 대표를 김영수 씨가 맡았던 것이나 2017년 대한민국 독서대전 대통령상을 책과아이들이 받은 것 등도 도무지 쉴 줄 모르고, 지역사회 문화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낸 책과아이들의 에너지·뚝심·인문정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강정아 대표, 병마와 맞서다
그런데 2019년 9월 강정아 대표가 발병했다. 유방암 4기 진단이었다. 전이가 이뤄졌고, 그 영향으로 한쪽 눈이 안 보이게 됐다.
김영수 대표가 떠올렸다. “2019년 가을 암 진단받고 서럽다며 울더라고요. 서러운 이유가 ‘청소년, 가족과 함께 인문학을 읽다’ 프로그램 준비를 막 끝내놓고 이제 진행만 하면 되는데 병이 나 못 하게 된 게 서럽다는 거예요.”
다른 선생님들이 일제히 나서서 ‘다다닥’ 임무를 나눠 맡아 이 프로그램은 무사히 진행했다.
강 대표는 지난해 9월 응급실에 실려가는 등 만만찮은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기자가 물었다. “부산 문화판에 불가사의가 몇 개 있거든요. 그중 ‘책과아이들이 아직도 부산시문화상을 못 받은 것’도 불가사의로 꼽혀요. 진작 받았어야 정상이란 거죠. 어떻게 생각하세요?” 두 사람은 눈길을 마주치더니 말했다. “그런 상도 있어요?” 내 이럴 줄 알았다. 숱한 사람이 타보겠다고 애쓴다는 소문이 파다한 그 상에 관해 막상 가까이 다가서 있는 당사자는 잘 모른다는 항간의 농담이 확인된 순간이다.
■주민 위한 소극장 짓는 꿈
두 사람이 말했다. “저희는 책과아이들 근처에 연극과 독서활동이 가능한 소극장을 만드는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훌륭한 구실을 할 겁니다. 다행히 연제구도 관심을 보여요.” 책과아이들은 이미 ‘어린이·청소년 서점’을 넘어섰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민과 함께 걷는 좋은 동네책방이자 마을 문화 사랑방이 그 자리에 듬직하게 서 있다. 선임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