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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03> 이기록 시인의 첫 시집 ‘소란’

시집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손잡이 같은 詩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1-04-04 19:40:40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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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생 시절부터 개금동 거주
- 2016년 ‘시와사상’ 신인상 등단
- 어려운 시 읽기 주저하는 독자들
- 입문 바라는 마음으로 시어 고민

길을 걷다가 한 시절 전의 소소한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를 보았다. ‘추억을 돌려드립니다’는 작은 안내판이 있다. 가게 안을 기웃거리는데 큼직한 라디오가 보인다. 학창시절 소풍을 갈 때 저런 걸 들고 오는 친구들이 있었다. 함께 유행가요와 팝송테이프를 듣던 기억이 떠올라 가게를 보고 있는데 주인이 손짓을 한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더 재미있는 물건이 많아요.” 어쩐지 겸연쩍어 발길을 돌렸는데, 내내 아쉬웠다. 들어가서 물건을 하나씩 구경했더라면, 주인 말대로 많은 추억을 돌려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시집 ‘소란’을 발간한 이기록 시인을 부산진구 개금건강공원에서 만났다. 마침 벚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시를 읽는 일이 이와 비슷하다. 시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혹은 “이해가 안 돼”라고 투덜거린다. 꼭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아니 그런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국어시간에 시를 배우면서 주제, 소재, 비유법 등을 따지느라 시에 질린 이들도 있다. 그 마음도 안다. 그런데, 시는 그냥 읽는 것이다. 마음에 와 닿으면 가슴에 담고, 아니면 그대로 덮어버리면 된다. 일단, 읽는 것이 먼저다. 일단, 가게 안으로 들어가야 물건이 제대로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기록의 시집 ‘소란’을 펼쳤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가게에 선뜻 들어서지 못했던 것처럼, 어쩌면 이 시집 안으로 들어서길 주저하는 독자들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기록 시인을 부산진구 개금동에서 만났다.

■내내 시가 목말랐던 시간

소란- 이기록 / 책읽는저녁
개금1치안센터 앞에서 시인을 만나 맞은편 길을 따라 올라갔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잠시 걷다보니 왼편에 개금건강공원이 보인다. 벚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쉼터로 지어진 정자 마루 끝에 바둑판이 있다. 어르신들이 바둑도 두고 바람도 쐬는 곳인가 보다. 공원 내 산책길에는 걷기운동에 열심인 주민도 보이고,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어린아이들이 까르륵 웃으며 냅다 달리기도 한다. 그 모습에 절로 미소가 머금어진다. 이기록 시인은 이 곳에 가끔씩 온다. “집이 바로 이 근처입니다. 걷기도 하고, 생각에 잠겨 앉아있기도 하죠.”

이기록은 1975년 충청도 청주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1학년이 끝날 무렵 부산으로 와서 줄곧 이 동네에서 살았다. 개금동은 그에게 가장 익숙한 장소이며 고향이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쏘다니며 놀던 학교 뒷산에 아파트며 건물이 잔뜩 들어섰어요. 손금 보듯 훤한 동네죠. 그 동네가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살고 있어요. 다정했던 동네 골목길이, 산이 바뀌는 걸 보고 있습니다.”

이기록은 2016년 ‘시와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등단연도와 상관없이 그의 시 인생은 중학교때부터 시작됐다. “공부보다는 문학이 좋았어요. 고등학교, 대학교에서도 문학동아리 활동을 했지요. 학원강사로 국어를 가르치며 사느라 시를 쓰지 못하는 동안 내내 시가 목말랐습니다. 그래서 대학동아리 후배들과 동인을 만들어 다시 시를 찾았습니다. 전 글을 쓴다는 것과 시인으로 등단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등단이 늦어졌는데, 모든 걸 떠나 저는 글을 쓰는 게 좋았어요.” 시집 ‘소란’은 이기록이 오래도록 품어온 시세계를 보여주는 첫시집이다.

■언어에 대한 고민이 시가 된다

이기록 시인에게 독자들이 이 시집을 어려워할 수도 있겠다는 말을 건넸다.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지도 모르지요. 일상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어법이 아니니까요. 오랫동안 ‘언어’에 대한 고민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말이 원래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고 있을까 하는 것들이죠. 실컷 이야기했는데 터무니없이 오해받기도 하잖아요.” 그의 시에서 ‘입’ ‘말’ 이라는 단어가 많이 보이는 것이 그 때문인가 보다. 이기록의 시가 그려 보이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처음에는 안개로 가리워져 잘 잡히지 않는다. 익숙한 일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긴 익숙한 일상을 익숙한 언어로 표현한다면, 시가 주는 특유의 재미를 느낄 수 없다.

필자는 늘 그랬던 방식대로 ‘소란’를 읽었다. 마음에 드는 단어와 구절이 보이면 밑줄부터 긋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생각하기 시작하면 꼬리를 물고 그 한 구절의 파장이 커진다. 두뇌 회전이 팽팽 돌아가는 기분이 들기 시작하면 시가 천천히 마음에 들어온다.

그의 시 한 편의 전문을 읽어보자. ‘詩’라는 제목이다. “나는 죽었다/ 아무도 울어주지 않는 수산시장에서/ 횟감의 가격을 흥정했다/ 살점이 투명할수록 가격은 높았다/ 나는 검게 마른 살점을 토막 내듯/ 훑어내리고 있었다” 필자는 이 시를 읽을 때 짙푸른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던 기억을 가진 물고기가 횟감이 되었고, 제철과 무게와 맛 등 인간이 정한 각종 항목에 따라 값이 매겨지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것이 사회의 기준에 따라 평가받아야 하는 인간의 운명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록에게 이 시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물었다. “이 시집을 만들면서 제일 마지막에 쓴 시입니다. 세상에 시를 내놓는 순간 어떤 식의 평가가 내려지고 값이 매겨지겠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집을 내는 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읽는 사람 마음이지요.” 그렇다. 이기록의 시는 시인의 말이고, 독자는 독자대로 읽을 뿐이다. 그게 조금 어긋난들 뭐 어떻겠는가. 시를 읽는 동안 우리는 드디어 ‘깊은 생각’에 빠질 것이다. 그것이 가장 값진 시읽기의 기쁨이다.

시 ‘몸에서 자란 소리’에는 ‘손잡이를 열어둔 사막’이라는 구절이 있다. 사막에 손잡이가 있을 리가 없다. 있다 해도 그것이 보이겠는가. 그런데 그 구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시집 가득 그어둔 밑줄들이 손잡이였구나! 그 손잡이를 열고 시집 안으로 들어왔던 거구나! 이기록 시인도 또 다른 많은 시인들도 어쩌면 시를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을 것이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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