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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권의 문화 동행 <11> 작가 이병주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시작’ 현장에서

다시 이병주 읽기 … “인간이 돈의 도구 된 세상, 그가 보면 분노했을 것”

  • 선임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21-04-13 19:29:36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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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전남·광주문인협회 다함께
- 지난 주말 하동 이병주문학관서
- 이병주 100주년 기념 학술행사

- 국제문학제, 선집·평전 발간 등
- 다채로운 프로그램 잇따를 예정
- 사업회 “단순히 기념하지 않고
- 어떻게 해석하고 이을지 고민"

김종회 ㈖이병주기념사업회 공동대표는 문학강연에서 이런 일화를 들려줬다.
지난 10일 경남 하동군 이병주문학관에서 열린 ‘2021 이병주 문학 영호남 학술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이 이병주 작가의 삶을 담은 영상을 관람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1936~2018) 선생을 타계하기 직전 병상에서 뵐 수 있었다. 그때 함께 있던 안경환 교수께서 ‘한국 작가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누구입니까’고 물었다. 김윤식 선생은 ‘이병주’라고 답했다. 이어 ‘그러면 인간으로서 기억할 만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물었다. 그의 답변은 ‘역시 이병주’였다.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한국 문학의 큰 산맥 같은 평론가 김윤식이 남긴 이 거대한 장면이 주는 느낌을 표현할 말을 찾기 어렵다.

지난 토요일(4월 10일) 경남 하동군 북천면 이병주문학관(관장 최영욱)에서 ‘2021 이병주 문학 영호남 학술세미나’가 이병주기념사업회 주최, 경남·전남·광주문인협회 주관으로 열렸다.이 세미나는 ‘이병주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첫 행사 격이었다.

김종회 공동대표의 개회사와 문학강연 ‘한국 대중문학의 정점에 이른 이병주 소설’에는 챙겨둬야 할 내용이 많았다.

“2021년은 나림 이병주 선생 탄생 100주년, 타계 29주기가 됩니다.”

문학평론가인 김 공동대표는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문인이 많은데, 조병화 김수영 김종삼 시인, 장용학 유주현 소설가 등이 그러하다”고 덧붙였다. 기념사업회로서는 여러 문인의 탄생 100주년을 함께 축하하면서, 이병주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는 더욱 돋보이게 해야 하는 형편인 셈이다.

그는 “오는 10월 2~3일 이곳 이병주문학관에서 열릴 ‘2021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에 즈음해 선집 12권을 펴낼 예정(편찬위원장 임헌영 문학평론가)”이라고 우선 소개했다. 가을의 국제문학제를 중심에 놓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더 마련된다. 별도로, 대산문화재단이 관련 학술행사를 열 계획이며 여러 문예지가 이병주 탄생 100주년 특집 기획을 준비 중이다.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가 쓰는 이병주 평전도 작업이 순조로워 내년에는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윗줄 왼쪽 첫 번째가 하태영 동아대 교수이고, 같은 줄 맨 오른쪽이 이권기 경성대 명예교수.
■독자들 가운데 고수 득시글

학술세미나는 주제발표 4개로 이뤄졌다. ‘이병주 문학의 시대성과 자장’(박성천·전남대/토론 이현숙 소설가) ‘단죄의 표상과 나르시시즘’(임종욱 소설가/토론 김홍섭 문학평론가)‘소설·알렉산드리아 속 상징 읽기’(은미희 소설가/토론 김미용 소설가) ‘지리산이 품은 생명의식’(남송우·부경대/토론 정찬영·동서대)이었다.

어떤 발표·토론은 괜찮았고, 어떤 발표·토론은 그렇지 못했다. 여러 발표·토론 사이에 밀도 차이나 높낮이 폭이 컸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행사를 주관하는 과정에서 현실적 이유로 ‘이병주를 읽는 독자의 특징’을 깊숙이 파악하거나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점이 문제의 출발점이 되어 세미나가 들쑥날쑥해졌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현재 ‘이병주 애독자’는 중·장년 이상이 많다. 이들은 살면서 좋은 일도 했고 죄(?)도 지었다. 삶의 희열도 느꼈고 고통도 겪었다. 지식과 부를 쌓거나 잃어봤다. 그런 차에 우연 같은 필연으로 ‘이병주’를 손에 쥐면, 빨려든다. 다른 이병주 책도 찾아 읽게 된다. 한 권만 읽고 멈추기는 어렵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학창 시절부터 깊고 재미있는 이병주에 푹 빠져 있다가 어른이 된 고참 독자들로 보면 된다.

이렇듯 웬만한 창으로 뚫기도, 웬만한 방패로 막기도 어려운 고수(高手)가 즐비한 곳이 ‘이병주 팬덤’이다. 그러니 학술 행사 얼개를 짜기가 쉬울 리 없다.

이날 학술세미나 자리에서 하태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뜻밖에 만났다. 하 교수는 법률 문장 바로 쓰기 분야 역저인 ‘형법조문강화’의 저자이자 ‘법률문장론’ 책을 꾸준히 펴내는 드문 법학자이고 문장가이다. 그가 하동 북천 이병주문학관까지 온 사연이 궁금해 “여긴 어쩐 일이시냐”고 물었다. 하 교수는 “학창 시절 이병주에 푹 빠져 살며 작가를 꿈꿨다”고 ‘실토’했다. ‘이병주 광팬’인 외화번역가 이미도 씨도 비슷한 말을 한 바 있다.

■그의 소설에 많이 나오는 표현은

이병주 흉상 앞에 선 임규찬 작가.
이번 취재에는 임규찬 작가와 동행했다. 그에게 ‘공동 취재’를 의뢰했다. 임 작가는 도서출판 함향 대표이며 국제신문 ‘감성터치’를 쓰는 칼럼니스트이고 ‘토끼와 빨래’ ‘발견의 시대’ ‘환대의 도시’ 저자이다. 50대인 그는 ‘지난해에야’ 이병주를 읽기 시작했다. 읽는 속도를 무섭게 높여 가더니 어느새 ‘거의 읽어 치운’ 상태가 됐다(국제신문 지난해 12월 21일 자 ‘감성터치-이병주 읽기, 고립의 즐거움’ 참조).

세미나에 빠져드는 듯하다가 빠져나오는 눈치이던 그가 물어왔다. “조 기자는 이병주 소설에서 아주 많이 나오는 표현이 뭐라고 생각해요?” 속으로 ‘여리박빙(如履薄氷·얇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은 위태로운 인생)’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자신이 없어 우물거렸다. (임규찬) “내가 볼 땐 ‘자중자애’ 같아요. ‘지리산’만 읽어봐도 자중자애하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옵니다.” (조봉권)(속으로) ‘아깝다! 여리박빙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그냥 말할걸’.그것은 통찰이었다. 세상의 사리를 알고 세상이 무서운 줄 아는 사람이 자중자애한다.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만이 깊고 거대한 거인이 될 수 있다. 이병주를 떠올리면 언제나 거인 이미지가 겹치던 이유를 알아낸 기분이었다.

“내 생각으로는….” 그가 말을 이었다. “작가 이병주는 사람을 ‘도구화’하는 것에 분노했고 인간의 도구화를 막으려고 분투했지. 그가 살았던 야만의 시대는 곧 이념의 시대였거든. 그러니 그는 사람이 이념의 도구가 되는 것에 문학으로 맞섰던 거라고.”

이병주 작가가 쓴 ‘문학이 봉사할 곳은 인간이다’ ‘이데올로기는 어느 단계에까지는 유익하지만, 그 단계 이상으로 넘어서면 반드시 해독으로 나타난다’는 문장을 임 작가는 보여주었다.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은

그가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이병주 선생이 이 시대에 산다면 어떤 도구화에 분노하며 글을 썼을까’ 이걸 물어야 해요. 그래야 지금 이병주를 읽는 가치가 더 분명해지니까. 나는 ‘돈’일 것 같아요. 인간이 돈의 도구가 되는 것.” 이는 김종회 공동대표가 개회사에서 ‘올해 탄생 100주년 사업에서는 단순히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시대에 나림 이병주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어받을 것인가 고민할 것’이라고 밝힌 것과 잘 만난다. 작가 이병주를 ‘오늘 여기’로 불러내겠다는 다짐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려, 사람을 많이 모을 수 없는 자리였다. 주최 측은 방역 조처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 악조건에서 참석한 내빈은 올해의 탄생 100주년 행사를 결국 끝까지 챙길 주역이기에 소개해둘 필요가 있다. 이도완 하동부군수, ‘북천출신 큰작가 나림 이병주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북천면민 추진위원회’ 최만진 상임위원장, 이승하 중앙대 교수, 이병주 작가의 아들인 이권기 경성대 명예교수가 자리를 지켰다. 김용국(전남) 탁인석(광주) 이달균(경남) 문인협회장도 손님으로 왔다.

나림 이병주 작가는 국제신문(당시 국제신보)에서 1958년 11월 5일부터 1961년 5월(서류상으로는 7월)까지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일했다(현재 이병주문학관 자료에 ‘1955년 입사’로 나온 기록은 잘못됐다).

선임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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