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봉권의 문화 동행 <15> 제자 김미자 씨에게 듣는 스승 이애주 선생 춤의 길

“농사일 동작도 춤 일부여” 스승 이애주가 삶에서 일깨워준 승무

  • 선임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21-06-08 19:15:46
  •  |   본지 1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작고한 李 선생 특별했던 가르침
- 승무 명인이자 민주화에도 헌신
- 농사 안 지으면 제자로 인정 않아
- 연습 복장 등 사소한 것에도 엄격
- 주역·천부경 등 사상 공부도 강조
- 오늘 김미자 씨 스승 기리며 공연

지난 5월 10일 ‘춤꾼’ 이애주 선생이 향년 74세로 별세했다. ‘춤웹진’ 6월호가 마련한 ‘기획특집 고 이애주’에는 추모하고 조명하는 글이 일곱 꼭지 실렸다. 공연사(史)에서 중요한 자료 2건이 포함됐고, 추도사는 채희완 부산대 명예교수가 썼다. 한국의 춤 예술이 시대의 불길과 물결 속에서 오늘 여기 이르기까지 이애주 선생이 끼친 영향력과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한성준(1874~1942)~한영숙(1920~1989)을 잇는 한국 전통춤의 명인으로, 민주화 운동 시기 독재에 맞서던 젊은이들이 스러져간 자리에서 생명의 춤을 주저 없이 춘 춤꾼으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 보유자로서 엄격하고 깊이 우리 예술을 가르친 스승으로 이애주라는 이름은 자리매김한다.
   
이애주(왼쪽) 선생과 김미자 씨가 공연장에서 함께 다정하게 사진을 찍었다.
■그가 살며 가르친 방식의 충격

부산의 중견 춤 예술인 김미자 씨는 이애주한국전통춤회 사무국장이며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이다. 이애주 선생 생전에 ‘마지막으로’(2018년) 승무를 이수한 춤꾼이다. 부산대 무용학과와 대학원(체육학과 박사 수료)을 나왔고, 현재 부산 금정구 장전동 예(Ye) 아트센터 대표이다. 김미자 씨가 준비 중이던 공연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자 지난달 7일 만났을 때, 실은 ‘이애주 선생께 춤 배운 이야기’만 두 시간 넘게 듣게 됐는데 그 가르침의 방식과 철학이 크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선생이 살며 가르친 방식은 깊은 사상성, 무섭도록 성실한 정진, 전통에 관한 곧은 탐구가 숨 쉬는 귀한 이야기보따리였다. 작가 박경리 선생이 가꾼 생명·생기의 철학·실천과도 만나는 듯했다. 지역을 가릴 것 없이 예술인·학인(學人)·시민에게 두루 도움이 될 예술 이야기라고 판단해 김미자 씨에게 보충 취재나 선생 면담을 요청하려던 차인 5월 10일, 이애주 선생이 타계했다.

■“농사짓는 일, 쉽지 않았죠”

이젠 김미자 씨를 붙들고 물어야 했다. 지난 3일 춤 공간 예 아트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서울대병원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서 문화예술인장으로 치러진 이애주 선생 장례식 현장을 지킨 그는 9일 오후 7시30분 국립부산국악원 예지당에서 한성준 한영숙의 맥을 이은 이애주류 작품으로 마련하는 공연 ‘천년의 세월이 흐르는 춤-인의예지’를 준비하고 있었다.

‘농사짓는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김미자 씨가 말했다. “제가 농부반장 출신입니다.” 선생이 살며 춤을 가르친 경기도 ‘과천승무전수관’에는 널따란 밭이 있다. 그 밭에서 농사를 지어야 문하로 인정할 정도로 농사를 중요시했다. “농사일은 아주 고되기도 했어요. 맡으면 수확까지 책임지도록 가르치셨습니다. 노동하고 기르는 일을 해보라는 거죠. 모두가 장화 신고 모자 쓰고 방석 달고 씨 뿌리고 거름 내고 배추 상추 케일 같은 쌈은 기본이고 호박까지 스무 가지쯤…쌀 빼고 다 있죠(웃음).” 못 견뎌 포기한 사람도 꽤 있었다고 한다.

■생활·노동·생활문화에서

   
김미자 씨가 수확한 토실토실한 고구마.
2001년부터 부산에서 과천승무전수관을 오가며 배우던 그는 출산 등으로 한동안 못 가다가 2015년부터 제대로 다시 다녔다. 2018년 승무 이수자가 됐는데, 그 뒤로도 줄곧 이곳에 와서 춤을 익혔다. 줄곧 농사를 지었다는 뜻이다. “선생님은 춤을 ‘몸짓’으로 이해하셨죠. 기예나 예능 차원에서 예쁘게만 선을 만드는 것은 싫어하셨습니다. 노동에서, 생활에서, 생활문화에서… 예컨대 볏짐을 들어 올리면 그게 하나의 동작이 되는 거죠.”

선생은 25년 전 승무 보유자가 된 뒤로도 전국을 다니며 영가무도 영산재 봉산탈춤 경기도당굿 같은 우리 춤과 장단을 끝없이 익히고 배웠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춤은 그 기본과 원리를 땅, 땅의 기운, 답지저앙(踏地低昻·땅을 밟고 구부렸다 폈다 함), 삼진삼퇴(三進三退) 등에서 찾았습니다. 승무 태평무 살풀이를 예쁘게 추려는 데서 벗어나 호흡과 의식, 원리에 중심을 두라고 하셨어요. 근본 근원이 잘 설 때 도가 생긴다고 강조하시면서.” 장식하는 아름다움이 아닌, 삶과 일에 이어지는 미적 원리를 중시한 것으로 이해됐다.

■승무 속에 계절 흐름이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를 추는 이수자 김미자 씨.
“승무 또한 삶과 일이 어우러진 계절 흐름으로 설명하셨다”는 점은 정말로 흥미로웠다. 대략 이와 같다. “(한영숙류) 승무는 염불-타령-굿거리-법고-당악에 이어 뒷굿거리가 있습니다. 이를 춘하추동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죠.” ‘염불’은 봄 되어 땅이 갈라지는 형상·기운이다. 땅에서 일어나 땅을 갈라 일구는, 오체투지 절을 해서 땅을 불리고 일구는 모습이 다 있다. ‘타령’은 말뚝 박고 집 짓고 농사짓는 여름이다. ‘굿거리’는 추수하는 가을로, 함께하는 풍류가 있고 ‘법고’와 ‘당악’으로 이어져 추스르고, 다시 봄을 맞는다.

승무는 관객이 흔히 형이상학적이고 정신적이며 좀 어려운 춤으로 느낀다. 분명 그런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애주 선생 설명을 들으면, 거기에만 머물지 않고 ‘일하는 보통 사람의 춤’도 되고 한결 가까이 다가오는 춤도 된다. 김미자 씨는 “스승님은 승무 자체는 일반인의, 대중의, 각자 모두의 승무로 보신 것”이라고 했다.

■섬세하고 철저하게 근원을 향해

“모든 춤을 엄격하고 까다롭게 가르치셨어요.” 승무 이수 시험 준비를 할 때 일화를 들면 이렇다. 오전 9시쯤 제자가 한복을 입고 연습을 시작해야 하는데 들여다보니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그러면 혼이 많이 난다. 심지어 그 길로 슬쩍 외출해 심야에 돌아오기도 한다. 제자는 그 시간까지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 ‘이치’에 맞다. “연습 때는 언제나 한복을 입습니다. 다른 옷은 안 되고요.” 한국 춤 호흡을 느끼고 간직하려는 마음씀씀이다.

“이미 배운 기존 춤, 자기 몸에 익은 춤을 털어내고 처음부터 시작했습니다. 그게 힘들어 저도 많이 울었죠.” 비움·채움의 원리이겠다. 연습 중에는 우리 정서를 담은 우리 말을 썼고, 장단 넣을 때 ‘원 투 쓰리’ ‘하나 둘 셋’도 쓰지 않았다. 덩, 쿵, 덩더쿵, 덩다당 같은 우리 장단 발음을 썼다. 진짜 한국 춤의 근원으로 파고들기 위한 섬세한, 집요한 노력이었다.

■사상 공부도 강조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사상 공부다. 본인이 모범을 보여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박사 과정을 최근까지 다녔다. ‘주역’과 ‘천부경’을 제자들이 배우게 했다. 김미자 씨는 “저도 서울 혜화역에 있는 대산 김석진 선생의 주역 배움터에서 2년간 매주 한 번씩 수업을 들었다”고 했다. 오늘 여기서 왜 어떻게 춤춰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뜻일 터이다. 많은 사람이 이 모든 엄격함을 요즘 시대에 안 맞는 것으로 여길지 모른다. 그런데 선생은 암이 몸을 덮친 뒤에도 몸소 실천하며 춤을 배우는 사람이 우리 춤의 근원으로 더 깊이 파고들어 익히도록 이끌었다. 그가 지난 25년 동안 배출한 승무 이수자는 21명으로 아주 적다. 거듭 생각할수록, 이 시대에 드문 그의 가르침이 우리 시대 여러 곳에서 분명 필요할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 선생은 돌아가시기 직전 김미자 씨의 9일 국립부산국악원 공연을 위해 쓴 축하 글에서 밝혔다. “춤에서 기본의 의미는, 제대로 바르게 하지 않으면 춤을 크게 쌓아 올라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임기자 bgjoe@kookje.co.kr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실속 없는 ‘국제기구 인증’ 혈세 붓는 기초단체
  2. 2‘부캉이’는 무태상어 아닌 흑상어…수과원 근접영상 분석 최종 확인(종합)
  3. 3부산 전셋집 1년새 11%↓…매물가뭄 심화에 세입자 울상
  4. 4100억대 체임 국제신문 대주주, 국감 증인 채택
  5. 5김도영 굳히기냐, 힐리어드·오스틴 뒤집기냐
  6. 6‘경영난’ 태종대 집와이어 재개장…이용료 1만 원 낮췄다
  7. 7센텀2지구 속도전…풍산 이전지 주민 경청·토지보상 착수
  8. 8부산 금정구 ‘인구감소지역’ 새로 편입…북구는 ‘인구감소관심지역’
  9. 9[사설] 외국인 400만 시대, 부산은 이제 체류형 관광이다
  10. 10매표소 오픈런…레드카펫 ★ 보려 외국인 새벽부터 달려왔다
  1. 1100억대 체임 국제신문 대주주, 국감 증인 채택
  2. 2조희대 “국회·대통령의 제청 간섭은 위헌”(종합)
  3. 3송곳검증 벼르더니…교통·시설公도 싱거웠던 시의회 청문회
  4. 4[속보] 여야, 문체위 국감서 ‘암살자(들)’ 공방…국힘 “감독 나와야” vs 민주 “창작 자유 억압”
  5. 5주호영 ‘아시안게임 금메달 병역특례 폐지’ 법안 발의
  6. 6김정호 “부산·경남 맑은 물 공급을 위해 낙동강 수질개선·취수 다변화 해야”
  7. 7‘홈플러스 사태’ MBK 김병주, 국감 불출석 “회사 경영 관여 안 해”
  8. 8여야, 국감서 알래스카 LNG 사업 집중 추궁
  9. 9[2026 국감 브리핑] 백종헌 “인력 확보 없이 출발한 통합돌봄 담당자 82%가 겸직, 전담인력 ‘0명’ 시군구는 전체의 66.4%”
  10. 10인사청문회서 "영도다리 핸드레일 예쁘게"… 검증 대신 지역구 민원 쏟아낸 시의원
  1. 1‘부캉이’는 무태상어 아닌 흑상어…수과원 근접영상 분석 최종 확인(종합)
  2. 2부산 전셋집 1년새 11%↓…매물가뭄 심화에 세입자 울상
  3. 3센텀2지구 속도전…풍산 이전지 주민 경청·토지보상 착수
  4. 4롯데백화점, 업계 첫 외국인 매출 1조 ‘포문’
  5. 5국토부, “가덕도신공항에 적용할 PBD 공법 문제없다”
  6. 6SMR 골든타임 놓치나…"원안위 심사기준 2032년에야 마련"
  7. 7금감원 “AI 해킹 시도 IP 28개 확인”
  8. 8부산 극지해양 전문강사 “현장 능력 키워요”
  9. 9'한국형 녹색대전환'에 1000조 투자…SMR·전력반도체 등 집중 육성
  10. 10부산 청년기업 ‘DPP(디지털제품여권)’ 국내 첫 상용화
  1. 1실속 없는 ‘국제기구 인증’ 혈세 붓는 기초단체
  2. 2‘경영난’ 태종대 집와이어 재개장…이용료 1만 원 낮췄다
  3. 3부산 금정구 ‘인구감소지역’ 새로 편입…북구는 ‘인구감소관심지역’
  4. 4부캉이 떠나도 북항 북적이려면…“원도심 접근성 개선을”
  5. 5기장군수실 1층 이전 ‘없던 일로’
  6. 6전기車 높아진 인기에 예산 동나…부산시, 하반기 1520대 더 지원
  7. 7[속보]부캉이와 '차가운 이별' 맞게될까…흑상어, 수온 떨어지면 바다로 돌아갈지도
  8. 8부산중수청장 “정치 중립성·수사 독립성 엄격히 지키겠다”
  9. 960대 부부 피살 용의자, 자전거·피해자 차량 갈아타고 ‘용의주도’
  10. 10전재수 시장, 소통 행보…사흘 연속 생중계 회의(종합)
  1. 1김도영 굳히기냐, 힐리어드·오스틴 뒤집기냐
  2. 2롯데, 6위 탈환 사활…3위 싸움 변수로
  3. 3조코비치, 올 첫 우승 눈앞
  4. 4장애인AG 결단식…“金 21개 이상 목표”
  5. 5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6. 6“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7. 7레이예스 200안타 달성에도…롯데, 두산에 4안타 그치며 패배
  8. 8불안한 모레노호 우즈벡전 반등할까
  9. 9‘손흥민 A매치 한국인 최다 골’ 우즈베키스탄에 2-0 완승
  10. 10아시안게임 폐막…한국 金 39개, 44년 만에 최소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스타 만나려면 첫 3일·여유롭게 영화 즐기려면 둘째주 공략
얼굴에 담긴 이야기
코 성형과 마음 성형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약학박사 연륜이 깃든 시조집 外
익숙한 물건에 깃든 삶의 온기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김지효-우리
박세연-Find Your Brave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기다림의 미학 /윤종순
빨래 /심여혜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역사 왜곡 논란에도 ‘암살자(들)’ 정상…애니 ‘극장판 치이카와’ 예매 1위
추석 연휴 ‘암살자(들)’ 정상…2위 ‘타짜: 벨제붑의 노래’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7일 (음 8월 27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6일 (음 8월 26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7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아름답게 억새 핀 모습 읊은 조선 중기 문신 이정형
조선 중기 문신 택당 이식이 가을의 찬 기운을 읊은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