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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다형의 시 둘레길 <4> 의령 곽재우·안희제·이병철 길

호국·항일·사업보국…조국 사랑한 의령 출신 3인의 ‘앙가주망(지식인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 실천

  • 전다형
  •  |   입력 : 2021-07-08 19:30:45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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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적 침략에 곽재우 백성들 모아
- 임진왜란 최초로 의병 일으킨 곳
- 600년 된 은행나무 그 결기 서려

- 20세에 독립운동 시작한 안희제
- 교육·언론 통해 외세 탄압 막아
- 본인 호 딴 부산 백산상회 설립도

- 이병철, 기업인으로 국가 헌신
- 오늘날 삼성 초석 마련한 창업주
- 세사람 돌아보며 의령 걸어본다

차기대선 주자 뉴스를 자주 접한다. 교수, 정치평론가, 변호사, 기자, 전문가, 전현직 국회의원 등이 열띤 토론을 한다. 그러나 지식인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뜻하는 앙가주망(engagement)은 이제 ‘그들’만 전유물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국민 누구나 한다. 이번 ‘시 둘레길’은 앙가주망의 뜻을 새롭게 새기며 홍의장군 곽재우, 백산 안희제, 호암 이병철 선생의 생가와 유적이 있는 경남 의령군으로 찾아갔다. 나의 고향이기도 하다.

■ 호국, 홍의 장군 곽재우

   
유곡면 세간리 망우당 곽재우 선생 생가 조형물.
경남 의령은 임진왜란 때 의병이 처음 일어난 의병의 고장이다. 의령읍으로 들어서면 자굴산 아래 의병탑이 서 있다. 곽재우 장군(1552~1617)과 17인의 위패를 모신 의병탑은 의령군민의 기상을 상징한다. 탑의 둥근 고리 18개는 곽재우 장군과 17 장령을, 팔(八)자 형태 기둥은 횃불을 나타낸다.

망우당 곽재우는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서 태어났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세간리 느티나무 아래 북을 걸고 사람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고, 왜군을 막아냈다. 곽재우 장군과 휘하 17인 장령을 기리는 충익사(의령읍 중동리)는 1978년 건립됐다. 충익사 홍살문은 단아하면서 엄정하다. 홍살문에는 악귀를 물리치고 액을 막는 신성함이 깃들어 있다.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문 안으로 들어섰다.

九載休糧絶鼎煙(구재휴량절정연·구년 동안 식량 끊고 밥을 짓지 않았는데) / 如何恩命降從天(여하은명강종천·어떻게 은명이 대궐에서 내려왔을까) / 安身恐負君臣義(안신공부군신의·한 몸 편안히 하자니 군신의리 저버릴까 두렵고) / 濟世難爲羽化仙(제세난위우화선·세상을 구제하자니 신선 되기 어렵다네) - 곽재우의 시 ‘有召命(유소명)’

홍살문에 접어드는 순간 나는 한없이 미끄러졌다. 이곳에 모셔진 큰 사랑 앞에 작아졌다. 존경과 고마움이 밀려왔다. 그런 마음을 안고 의령읍 세간리 곽재우 장군 생가로 갔다. 세간리로 접어들자 그 유명한 느티나무(현고수·천연기념물 제493호)가 있다. 느티나무의 아름드리 환대를 받으며 생가에 들어서자 수령 600년에 이른다는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2호)의 기상이 초롱하다. 나뭇잎은 의병의 푸른 눈빛처럼 빛났 다. 안채 뒤 살구나무에는 잘 익은 살구가 열렸다.

성정이 강건하여 영암으로 유배를 가기도 한 그가 태어난 이곳 지형을 살폈다. 낮지만 깎아지른 산세, 산허리엔 올곧은 대나무. 곽재우의 결기와 어울렸다. 한시 ‘유소명’도 망우당의 기개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유배에서 돌아온 그는 “익힌 밥을 멀리하고 솔잎만 먹었다”고 전한다. 오래된 은행나무를 눈빛으로 어루만지며 다음 행선지로 발을 옮겼다.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
■ 항일·교육·언론, 백산 안희제

백산 안희제(1885~1943) 선생은 부림면 입산리에서 태어났다. 을사늑약 때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20세 나이로 상경해 계몽운동·독립운동을 했다. 구명학교, 의령의신학교, 입산마을 창남학교를 세웠다. 1911년부터 3년간 만주를 돌며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했다. 그는 1919년 기미육성회를 결성하고 언론 쪽으로 눈을 돌린다. 1920년 동아일보 발기인으로 참여했고(부산지국장 지냄), 1929년 중외일보를 인수해 사장으로 취임했으나 외세 탄압으로 파산한다.

“조국은 감옥이다. 자유천지에 나가서 활개를 펴고 조국광복을 기어코 달성하는 데 죽는 날까지 싸워보겠다.” 안희제 선생은 독립자금을 마련하고자 그 많던 문전옥답과 재산마저 다 내놓고 학교를 세웠다. 선생은 교육·언론·항일에서 앙가주망을 실천했다. 1905년 안희제 선생이 쓴 한시 ‘황계폭포’(원제 ‘황계분운득향자)를 2017년 국문학자 동서대 하강진 교수가 발굴해 ‘근대서지 14호’에 소개했다. 안희제 선생이 합천 황강에서 동료들과 배를 타고 폭포를 향하며 느낀 감회와 고향 회상을 담은 소중한 작품이다.

‘黃江葭露白(황강가로백) / 倻岑樹雲蒼(야잠수운창) / 俛仰山水裏(부앙산수리)/ 所謂宛在央(소위완재앙) / 渺茫迷津筏(묘망미진벌)/招招願須卬(초초원수앙)/始看滄海大(시간창해대)/ 喟然徒望洋(위연도망양)’(‘황강의 갈대 이슬은 희고 / 가야산 숲 구름은 푸르다 / 위아래 산수를 두루 보니 / 이른바 물 가운데 있는 듯 / 아득히 희미한 나룻배에서 / 손짓하며 불러 나를 기다리네 / 비로소 창해의 넓음을 보나니 / 그저 큰물 쳐다보며 탄식할 뿐’)(일부)

백산 선생은 일제의 핍박에서 독립운동 세력과 가문을 보호하고자 자료를 거의 남기지 않아 안타깝다. “국민을 교육하는 일이 급선무인데 우리가 가난해서 어렵습니다. 부산을 일본인 손에 넘겼어야 되겠습니까?” 선생께서 1914년 백산상회(부산 중구 동광동)를 창립할 때 토로한 심정이다. 밀고자 조병현의 반역 탓에 투옥된 백산 선생은 심한 고문을 당해 그토록 바라던 독립을 2년 앞두고 눈을 감았다. 백산 선생은 밀고자를 용서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돌로 쳐 죽여도 모자랄 밀고자 조병현이었다. 오랜 수소문 끝에 찾아낸 조병현은 중풍에 걸려 이미 폐인이 돼 있었다고 한다.

   
호암 이병철 선생 생가(경남 의령군 정곡면 호암길) 곁의 별장 전경.
■ 사업 보국, 호암 이병철

다음 방문지는 이병철(1910~1987) 생가였다. 정곡면 중교리에 있다. 우리나라 제일 부자가 난 곳이라 ‘부자의 기운’을 받으려는 사람이 많이 찾아온다고 했는데 코로나19로 문이 닫혀 있었다. 발돋움해 담장 넘어 건너다 보며 내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렸다. 나는 중학생 시절 이병철 생가 뒷집에서 자취를 했다. 친구들과 양손으로 얼굴 꽃받침을 하고 생가 옆 별장 잔디밭에 엎드려 찍은 사진이 내게 있다. 사진 속 교복 입은 단발머리 칠공주는 까르르 웃고 있다.

나의 아버지는 이병철 회장이 어린 시절부터 종이를 보면 지폐 크기로 자른 뒤 실로 묶어 보관하는 것을 보고 경제 관념이 남달랐다고 말씀하셨다. 이병철 회장의 명언은 사업보국, 기업인의 본분으로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신념이다. 오늘날 삼성이 대한민국 경제를 이끄는 초석을 마련한 창업주로서 ‘사업보국’은 그의 ‘앙가주망’이었다.

“나는 기업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살아왔고, 나의 갈 길이 사업보국에 있다는 신념에도 흔들림이 없다.”(1976. 11. 이병철 ‘나의 경영론’·전경련회보) “선도적인 기술혁신으로 (중략) 궁극적으로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 기업인의 본분이며 사회적 의무가 아니겠는가.”(1976. 6. 이병철 ‘재계 회고’·서울경제신문)

■ 시에게 묻다

의령군 정곡면 백곡리 537번지, 내 고향집이며 내 시의 자궁이다. “아버지 푸른 목소리, 당신 소리 품은 그리운 옛 집 537번지 사랑채 딸린 두엄 더미 위 씨암탉 알을 품듯 소리의 알을 품는다 알을 품은 날개가 부푼다 날개 아래 또 다른 날개가 자라 날개가 따뜻하다 삼삼거리는 모이의 유혹도 따뜻하게 품어 준 푸른 목소리 그 소리의 껍질을 깨는 일이다 날개 아래 또 다른 소리 3·4조 7·5조 날개가 돋는다 당신이 못다 품은 소리의 알, 청산리 벽계수야 쉬이 감을 자랑 마라 시조창 일곱 고개.”(졸시 ‘소리-부화’ 전문) 이 시는 내 첫 시집 ‘수선집 근처’에 실렸다.

   
쉰둥이로 태어난 내게 아버지 사랑은 짧고 굵게 끝이 났다. 아버지는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죽음을 알기엔 너무 가혹한 나이였다. 그래서 내게 고향을 찾아가는 날은 슬픔이 환하게 켜지는 날이다. 그런 내 고향에서 태어난 ‘앙가주망’을 톺아보면서 내 시를 돌아보았다. 시가 내게 다그쳤다. 무엇을 실천할 것이냐고. 크게 한 방 맞았다. 고향 가는 길이라, 가볍게 떠났다가 큰 화두를 안고 돌아왔다. 시의 면벽이다.

시민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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