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국내 개봉한 ‘리얼리티 바이츠(Reality Bites)’라는 영화가 있다. ‘가위손’(1990)의 위노나 라이더, ‘90년대 제임스 딘’ 에단 호크가 주연했다. 제목을 직역하자면 ‘청춘스케치, 청춘의 기록’쯤 되는데 90년대 대표 할리우드 스타들이 등장했고 푸른 빛 배경에 풋풋한 위노나 라이더가 어깨에 손을 얹고 살짝 웃는 포스터는 대학가 카페마다 걸렸다. 90년대 청춘영화 대표작이 ‘리얼리티 바이츠’와 ‘싱글즈’라면 2000년대 국내 청춘드라마 대표작은 ‘내 인생의 콩깍지’가 아닐까.
이 드라마가 당시 인상 깊었던 이유는 영화 ‘접속’ ‘연풍연가’ ‘오버 더 레인보우’의 시나리오 작가 조명주가 집필해서다. 이 세 편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느꼈을 이 작가 특유의, 청춘의 아련미가 있다. 아마 직설적이고 돌직구를 날리는 요즘 세대는 90년대 이 아련한 청춘의 감성을 모르리라. 기억을 잃은 이정재가 떠오르지 않아 괴로워했던 사랑의 대상, 그 여인이 바람에 날리는 커튼 속 뽀얀 실루엣으로 드러날 때의 그 미장센. ‘접속’에서 한석규와 전도연이 레코드 숍 계단에서 스쳐 지나가던 그 아련했던 장면을 떠올리며 ‘내 인생의 콩깍지’를 열심히 봤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대한민국 최고 맛 선생 백종원과 알콩달콩 살며 아이 셋 엄마가 된 소유진, 생활 연기 잘하는 박광현, 레이먼 킴 셰프의 아내가 된 뮤지컬 배우 김지우가 주인공이다. 드라마 속 그들이 91학번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동시대 주인공으로서 감정이입되면서 이들의 청춘 고생담과 숨은 짝을 찾아가는 여정이 어찌나 재밌던지. 그 인기를 바탕으로 ‘옥탑방 고양이’를 거쳐 ‘내 이름은 김삼순’ ‘연애시대’까지 청춘 성장 스토리는 2000년대를 주도한 전형적 소재가 됐다.
‘내 인생의 콩깍지’가 독특·유쾌한 청춘의 기록이 된 것은 매회 3분 이내 노래와 춤으로 뮤지컬 드라마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소유진은 댄스그룹 출신이며, 박광현은 노래 실력이 출중한 연기자다. 당시 신예였던 전혜빈 한지혜도 조연으로 등장했다. 이 드라마를 떠올리면 30대 초반 수많은 콩깍지가 벗겨졌을 때 울고 웃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액자 속에 머무는 행복했던 시간들, ‘내 인생의 콩깍지’.
경성대 글로컬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