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수아 등 남구 거주 인연 뭉쳐
- 첫 공동작업, 공모 탈락 쓴 잔
- 2016년 프로젝트 씨앗 뿌려
- 모임명 ‘도토리’ 회식 때 작명
- 열심히 공부하고 현지 답사
- 캐릭터·이야기는 치열한 조율
- 황옥공주상, 황령산 봉수대…
- 정겹고 재밌는 그림책에 담아
- 임란 때 부산 무대 2권 준비
당신은 어릴 적 이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열두 번도 더 말했제. 밥 때 되믄 얼른 들어오라고. 어데 오만데 싸돌아댕기다가 인제 오노!” 이런 말을 열두 번도 더 할 수 있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아빠는 더 늦게 왔고, 형제는 내가 싸돌아다닌 ‘오만데’가 대충 어디 어딘지 아는 ‘공범’들이었다. ‘오만데’를 인터넷에서 찾으니 “온데, 여러 군데를 뜻하는 경상도 말”이라는 ‘오픈사전’의 설명이 뜬다. 부산은 경상도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여성 아동문학가 5인이 힘을 모아 ‘오만데 삼총사’를 낳고 데뷔시켰다. 이들 작가는 오만데 삼총사의 엄마들이 됐다.
■ 황옥공주·프린세스 토파즈
 |
| 지난 15일 ‘오만데 삼총사의 대모험1’을 만든 이들이 해운대해수욕장 황옥공주 인어상 앞에 모였다. 사진 찍을 때만 마스크를 잠깐 벗었다. 앞줄 왼쪽부터 곽수아 김나월 배유안 작가, 뒷줄 왼쪽부터 김동미 그림작가, 박미라 이자경 작가.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
지난 15일 아동문학가 배유안 김나월 이자경 곽수아 박미라 씨, 그림작가 김동미 씨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서쪽 끝 ‘황옥공주 인어상’(황옥공주상) 앞에서 만났다. 이들은 ‘황옥공주의 구슬을 찾아라!-오만데 삼총사의 대모험 1’(함향 펴냄)이라는 그림책을 퍽 오랜 협업 과정을 거쳐 이제 막 펴낸 참이다. 갓 나온 이 그림책을 들여다볼수록 ‘이런 방식의 작업은 부산 아동문학계에서 처음일 것 같다’는 판단이 또렷해졌다. 호기심이 생겼다. 이 작가들은 왜 이토록 독특한 방식으로 농사짓듯 함께 책을 엮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책이 품은 이야기도 정겹고 재밌고 아련하고 상상의 나래까지 달고 있어, 아이들 가슴 속으로 부드럽게 날아들어 콕 박힐 힘이 느껴졌다. 만남을 요청했고, 작가들은 모두 방역 수칙을 잘 지키려고 마스크를 꽁꽁 동여맨 채 해운대 동백섬 쪽으로 나와주었다. 동행한 김종진 사진기자가 황옥공주상 쪽으로 먼저 내려가 사진 구도를 잡고, 작가분들을 촬영 장소로 모시고 간 뒤 어쩌다 보니 전망 덱에 홀로 남게 됐다. 사방이 조용해졌고, 황옥공주상 안내문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바다 건너 인어나라 나란다국에서 무궁나라 은혜왕에게 시집온 황옥공주가 늘 고국을 잊지 못해 보름달이 뜨는 밤마다 황옥에 비친 고국을 보며 그립고 슬픈 마음을 달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영어 안내문을 보니 황옥(黃玉)을 topaz(토파즈)로 설명한다. 그러니까 황옥공주는 영어로 표현하자면 ‘프린세스 토파즈(Princess Topaz)’다. 오만데 삼총사 대모험의 입구가 바로 여기서 열린다.
■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쓰네
황옥공주가 그윽이 내려다보는 갯바위에서 사진을 찍은 일행은 화난 듯 뜨거운 한여름 햇볕을 피해 근처 더베이 101 건물 카페로 들어갔다. 더위가 조금 잦아들자, 아동문학가들은 비로소 ‘아침마당’처럼 이야기 마당을 펼치기 시작했다. 김나월(‘하늘을 나는 거미’ 저자) 박미라(금발머리 내 동생‘ 등 저자) 동화작가의 설명을 먼저 들어보자. “저희가 모두 부산 남구에 살았어요.” 그 사이 배유안(‘초정리 편지’ 등 저자) 작가는 다른 구로 옮겼고, 다른 이들은 여전히 남구 주민이다. “남구에 살며 교류하던 우리는 몇 년 전 씨지픽셀이라는 콘텐츠 기업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콩콩랜드’의 스토리를 쓰는 작업을 함께 했죠.”
곽수아(‘땅뚝할매와 여우총각’ 등 저자) 작가의 연결 활동이 초기엔 큰 구실을 했다고 한다. 곽 작가는 “그즈음 부산대 시각디자인 분야 교수님께서 우리에게 공동 작업을 제안해주셨는데, 그때 했던 작업이 공모에서 떨어졌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이 경험은 계기가 됐다. 곽수아 박미라 작가 등이 “그럼 우리가 남구에 사니까 남구 이야기를 바탕으로 뭔가 뜻 있는 부산 이야기 작업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부산에 살며, 지역의 다양한 문화 자산을 품고 살고 베개처럼 베고 사는 동화작가들이 개인 작업의 틀을 넘어 마치 컴퓨터 여러 대를 병렬로 연결하는 듯한 ‘협업’에 나서는 순간이었다. 대략 2016~2017년 이 공동작업 프로젝트의 씨앗은 뿌려졌다.
■ 도토리, 양식이자 씨앗
“모임 이름이 있나요?” 하고 물었다. ‘초정리 편지’ ‘스프링벅’ ‘구멍 난 벼루’ ‘화룡소의 비구름’ ‘쿠쉬나메’ 등 빛나는 작품을 쓴 한국 아동문학계의 중진 배유안 작가가 웃는 얼굴이 되더니 톡 던지듯 들려준다. “있어요. 도토리!” 순간, 배 작가가 ‘유래’를 설명하는데, 이 또한 동화작가들 발상다웠다. “실은, 우리가 함께 밥을 먹을 때 도토리묵이 나왔어요. 문득 ‘도토리’가 모임 이름으로 어떨까 생각했죠. 뜻도 좋고 발음도 좋고. 마침 이자경 작가가 듣고는 좋은 의미를 담아줬고, 모두 그 이름을 반겼죠.”
다들 눈치채셨을 테다. 도토리는 숲속 동물 친구들의 양식이 되어준다. 다람쥐가 나중에 먹으려고 땅에 묻었다가 위치를 까먹는 바람에 묵혀둔 도토리는 뒤에 싹이 터서 큰 나무로 자라 만물이 쉬어 가고 놀다 갈 그늘을 드리워준다. 이자경(‘거북이가 간다’ 등 저자) 작가의 회상이다. “이번 공동 작업은 참 힘들었어요. 홀로 자기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모여 삼총사 캐릭터를 만들고, 개성과 일관성을 다 갖춘 행동·생각을 불어넣고, 이야기 전개도 조율해야 했죠. 책 발간 같은 성과로 이어질 조짐도 없었고요.”
그래서 ‘도토리’는 한동안 ‘사실상 해체’ 상태였다고 한다. ‘오만데 삼총사’ 원고도 꽤 오래 ‘묻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거의 포기했다는 뜻으로 이해됐다. “그랬던 공동 작업 원고가 이번에 ‘오만데 삼총사의 대모험’으로 출간된 거예요.” ‘도토리’가 싹을 틔웠다.
■ “우리 참 열심히 했구나…”
‘도토리’ 모임이 ‘오만데 삼총사의 대모험 1’을 펴낸 과정을 살피면, 지역의 콘텐츠 창작 활성화를 위해 눈여겨봐야 하는 특징과 성과가 꽤 있다. 작가들은 모두 “공동 창작은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시간을 맞춰 모두 만나는 일이 가장 어려웠고(코로나19 상황이 닥치자 화상회의 도구인 줌으로도 이야기했다), 각자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은 때로 치열했다”고 회고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도토리 팀은 부산을 열심히 공부하고 답사했다. “남구 해운대구 부산진구 동래구 금정구 중구…. 우리끼리도 다니고 지역인문학·답사 프로그램에도 참여했죠. 모여서 작업할 땐 부경대 창업 지원 공간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 이렇게 회고하던 배유안 작가가 “돌이켜보니, 우리 모두 정말 열심히 했구나. 대단했네…” 하며 혼잣말을 했다. 지역을 잘 아는 작가들의 이 자발성과 기꺼이 협력하는 마음을 지역사회는 ‘발견’해야 한다.
‘황옥공주의 구슬을 찾아라!-오만데 삼총사의 대모험1’은 해운대해수욕장 황옥공주상에서 시작해 오륙도, 수영성 푸조나무, 황령산 봉수대, 이기대, 신선대를 대기·보리·어진 삼총사가 누비고 다니며 신비한 모험을 펼치는 이야기다. 젊은 그림작가 김동미 씨의 그림 또한 정겹고 발랄하고 기발해 콘텐츠 완성도를 높인다.
■ “제2탄은 임진왜란과 부산”
도토리 팀 구성원은 지역을 잘 알고, 부산에 애정이 많은, 엄마들이자, 작가들이다. 이는 ‘오만데 삼총사의 대모험’이 2권, 3권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박미라 작가는 “제2권 준비에 이미 들어갔다. 임진왜란 때의 부산을 무대로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화작가들이 힘을 합쳐 콘텐츠를 ‘시리즈’로 낸다면 이는 또 하나의 도전이자 모험이 된다. 도전, 모험, 새로운 시도가 많은 곳이 문화도시다. 선임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