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는 방역 규제 전면 해제를 선포했다. 마스크 착용 의무와 모임 인원 제한도 없어졌다. ‘코로나와 함께 살기’를 선언한 것이다. 이를 인류학 시각으로 보면 억압·통제 속에서 막다른 길에 몰린 욕구 불만에 출구를 터주는 방편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인간 욕구 분출은 축제 같은 비일상적 세계로의 일탈로 해소될 수 있지만 현재 우리는 오랜 기간 호모-페스티부스(Homo-Festivus) 생활을 못 누리고 있다.
열대야가 시작된 7월 무더운 여름밤은 17년 전, 청춘의 욕망으로 점철된 한 드라마를 떠올리게 한다. ‘발리에서 생긴 일’. 마지막 회 조인성이 쏘아 올린 두 발 총성이 아직 귓가에 생생한, 다 죽고 딱 한 사람 살아남은 결말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 ‘별은 내 가슴에’ ‘천녀지애’를 쓴 김기호-이선미 부부 작가의 작품이기에 여주인공은 전작과 비슷하게 여전히 무일푼에, 자존심 하나는 최고인 진화된 캔디다. 문제는 캔디가 안소니와 테리우스를 모두 사랑했듯 소지섭과 조인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하지원의 캐릭터로 인해 시청자 역시 연민과 동정, 분노를 오갔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 여전한 계급 격차, 부의 승계, 사랑에 관한 인간 욕망을 아주 디테일하게 네 명의 남녀 캐릭터를 통해 엮어 나갔다는 점은 ‘발리에서 생긴 일’이 명작 드라마로 기억될 수 있는 이유다.
90년대 캔디 여주인공을 앞세운 드라마들이 여성 시청자의 판타지를 채운 뒤 해피엔딩으로 끝난 반면, 2000년대 작가들은 비극적 서사를 쓰기 시작한다. 비극적 결말이야말로 주인공들의 영원한 사랑을 완성시키는 선택일지 모르니….
‘발리에서 생긴 일’은 2000년대 이후 놀라운 속도로 발전한 한국 사회의 단면을 반영하면서 그 이면의 어두운 면을 네 명의 캐릭터에 압축했다는 점과 하지원이 지하로 납치된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를 연상시키는 그리스 신화 원형의 현대적 변용이라는 점에서 현재도 연구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하지원이 삼켜버린 욕망의 석류. 인간이 늘 갈구하는 그 욕망의 끝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 여전히 내게는 7월 열대야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드라마다.
경성대 글로컬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