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이병주 탄생 100주년 그를 회고한다 <2> 임헌영 문학평론가

날 선 펜대로 지배층 꼬집는 칼럼 남겨…항도 언론 르네상스 이끌다

  • 임헌영 문학평론가
  •  |   입력 : 2021-09-05 19:38:35
  •  |   본지 1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1959년 국제신보 주필·국장 겸해
- 본지서 부산일보 간 황용주와 쌍벽
- 당시 부산군수기지사령관 박정희와
- 현실정치 비판하며 술잔 기울이기도

- “지배자 바뀌어도 지배계급 그대로”
- 불타는 민족의식에 명문 써내려가
- 예상 뒤엎고 5·16 쿠데타 직후 구속

나림 이병주는 분단문학사에서 거대담론을 담아낸 4대 문제작가(등단 순서대로 박경리 이병주 황석영 조정래) 중 출생 연도로는 맨 앞자리다. 황석영과 조정래는 1943년생 동갑내기로 두 세대 후배이고, 박경리(1926)와는 5년 터울로 이병주가 먼저 태어났다. 이 둘은 식민지 시대에 진주 문화권에서 성장했으나, 나림의 작품이 햇빛에 바랜 역사의 격랑이라면 박경리의 소설은 월광에 물든 신화의 계곡이라고 할 만큼 달랐다.
이병주(왼쪽) 선생이 1963년 12월 16일, 2년 7개월의 수감 생활 끝에 부산교도소에서 출소하던 날 어머니 김수조 여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임헌영 제공
문단사에서 최고 멋쟁이에 바람둥이로 그리스 선박왕이자 바람둥이인 오나시스를 본 따 ‘이나시스’란 별명을 가졌던 작가 이병주는 가장 해박한 지식인에 다양한 외국어도 습득했다. 민족사의 현장에 밀착했던 그는 작품 말고도 희대의 명문을 남겼는데 그 텃밭이 바로 ‘국제신보’(현재 국제신문)였다. 이 시기야말로 나림이 신념을 한껏 펼친 가장 순수한 때였을 것이다.

한국전쟁 때 임시수도(1950. 8. 18~10. 27, 1951.1.4~1953. 7. 27)였던 부산은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 정거장’(1954)의 무대로, 산골 소년이었던 나까지도 국제시장, 영도다리, 12열차(늦은 오후 출발, 이튿날 새벽 서울에 도착한 보통열차)를 동경했던 곳이었다. 전쟁통에 항도 부산은 한껏 몸집을 부풀렸다.

8·15 직후에는 김형두가 창간한 혁신적인 ‘민주중보(民主衆報)’가 있었으나 곧 사라지고, 1950년대에는 ‘부산일보’와 ‘국제신보’(1977.6.1. ‘국제신문’으로 바꿈)가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당시 부산 언론을 이끈 쌍두마차로 용호상박인 두 거인은 김형두와 김지태였다. 김형두는 언론 투사로 진보적이었던 고성 출신이고, 김지태는 사업가에 정치를 겸했던 부산 토박이 대부호였다. 이에 궁합을 맞춘 협객으로 명 주필 둘이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구사범 동기로 밀양 출신인 황용주와, 하동 출신 작가 이병주였다. 이 4인방이 조화를 이뤘던 자유당 독재 말기인 1950년대 후반기야말로 항도 언론의 르네상스로 ‘사설’에서는 당시 최고 명성을 누린 최석채의 필치를 능가했다.

진보적 지식인 황용주가 ‘국제신보’ 주필로 명성을 드높이다가 김지태의 유인에 끌려 ‘부산일보’ 주필과 편집국장 겸직으로 자리를 바꾼 1958년 10월 이병주는 그 후임이 됐다. 이미 그는 1957년 장편소설 ‘내일 없는 그날’(‘부산일보’ 연재)을 통해 명문장가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국제신보’ 대표 김형두는 “천하호걸이며 재사이자 소설가”로 그를 극구 찬양했다. 이병주는 부임 이듬해(1959.7.1) 주필이 됐고 그 두 달 뒤(9.25)에는 편집국장까지 겸하며 황용주와 언론계 용호상박이 됐다.

박정희 소장이 부산군수기지사령부 사령관(1960.1.21~1960.7.30)으로 갔을 때 경남도지사는 신도성(1959.11.24~1960.4.30)이었다. 신 지사가 기관장 회의를 소집하자 이병주는 신문사 사장 대리로 참석했다가 육군 소장 계급장에 색안경을 쓰고 가죽 말채찍을 든 작은 체구의 박정희를 처음 보았다. 그는 도지사가 지정한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획 나가버린 채 돌아오지 않았다. 회의 후 호기심으로 도지사에게 묻자 “2관구 사령관 박정희 소장인데 자리가 도지사석과 시장석과는 먼 말석인 것이 불만이어서 화를 내고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1960년 3·15 부정 선거 항의 시위가 고조되자 4월 10일 전국비상계엄령이 내렸고, 부산지구 계엄사령관을 맡은 박정희는 기관장들을 소집했고 이병주 황용주도 참석했다. 그런데 황이 박 장군 곁으로 다가가 “아, 너 복세이키 아니야?”고 하자 그는 바로 “음, 너 코류슈구나” 하며 서로 손을 붙들고 얘기를 주고받더니 황용주가 이병주를 불러 소개했다. 작가 이병주와 박 장군의 인연은 이후 그들의 대구사범 동창인 의사 조증출까지 가세한 4인방으로 늘어난 술자리로 이어져 언론자유를 만끽하며 온갖 담론이 오갔는데, 황용주는 쿠데타까지 거론할 정도였다.

술자리에 앉기만 하면 박은 “이 주필, 이래 갖고 나라가 되겠소?”라며, “이놈 저놈 모두 썩어 빠졌어.” “학생이면 데모를 해야지. 이왕 할 바엔 열심히 해야지.” “도대체 오열(간첩)이란 게 뭣고. 오열이 어딘가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자유당이 필요로 하겠다 싶으면 출동하는 모양이지? 국민을 편하게 할 방도는 생각하지도 않고 생사람 죽일 궁리만 하고 있으니 원!” 등등 “욕설과 비난을 섞은 열변을 토했다.”(이병주 ‘대통령들의 초상-우리의 역사를 위한 변명’, 書堂, 1991)

그러나 정작 사월혁명이 나자 박 소장은 학생들이 쿠데타를 망쳤다고 투덜거리며, 이승만에 대해 “동정할 여지가 전연 없소. 12년간이나 해 먹었으면 그만이지 4선까지 노려 부정선거를 했다니 될 말이기나 하오? 우선 그, 자기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이 돼먹지 않았어요. 후세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도 춘추의 필법으로 그런 자에겐 필주(筆誅)를 가해야 해요”라며 엄격한 심판론을 강조했다. 그는 일본 청년 장교들의 반역사건까지 거론하며 그 정당성을 갈파하자 황국신민 정신을 비판하는 황용주와 일대 설전까지 벌였다.

박 소장이 1960년 7월30일 다른 보직으로 부산을 떠난 뒤에도 황용주와 이병주 두 논객은 가장 치열한 민족의식에 불탔던 명문을 계속 썼다. 이쨌든 이 시기에 박-황-이 삼총사는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한 불만이라는 공통 정서를 향유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박과 황이 더 밀착했고 이병주는 오히려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진다.

당시 이병주가 본 한국 현실관은 명문 ‘조국의 부재’(‘새벽’ 1960.12)와 ‘통일에 민족역량을 총집결하자’(‘국제신보’ 1961.1.1, 연두사)에 잘 나타나 있다. ‘새벽’에 실리게 된 건 시인 신동문의 기획을 진주농고 때 이병주의 제자였던 시인 김재섭을 통해서였다. “조국이 없다. 산하가 있을 뿐이다. 이 산하는 삼천리강산이란 시적 표현을 가지고 있다”로 시작하는 ‘조국의 부재’는 현재까지도 민족분단을 다룬 최고의 명논설로 가히 함석헌과 겨룰 만하다. “진정 조국의 이름을 부르고 싶을 때”는 8·15와 4·19였지만 그 꿈을 못 이룬 건 5000년간 “지배자가 바뀐 일이 있어도 지배계급이 바뀌어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이병주는 적시했다.

지배계급은 ‘38선을 이용’하여 정권을 유지한다고 본 나림은 “보수할 아무것도 없으면서 보수하려는 세력만 있는 것이 오늘날 이 나라의 보수주의 정당의 상황이다”라고 했다. 국민이란 “세금을 내기 위한 수단”이고, “병역에 충용하기 위한 존재”이자, “부역하기에 알맞은 노동력일 뿐”이라고도 꼬집었다. 그러니 “오호! 통절한 우리들 조국의 부재여!”라고 끝맺는 이 통쾌함!

‘통일에 민족역량을 총집결하자’는 “민족의 분열을 이대로 두고 어떠한 포부도 꽃피울 수 없다”면서, “같은 국토를 갈라놓고 총과 총이 맞서 있다. 한풍설야 속에서 무장을 엄하게 한 장정이 한편은 북으로 한편은 남으로 경계의 눈을 부릅뜨고 있다. / 누가 누구를 경계하는 것이냐? / 어디로 향한 총부리냐? / 무엇을 하자는 무장이냐?“고 추궁한다. 그러니 “장면 씨와 김일성이가 38선상에서 악수하고 통일을 위한 방안 모색을 못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고 다그치며, “혜산진에서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이 아담한 강토가 판도로서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나라들처럼 복된 민주주의를 키워 그 속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절규한다. (이병주 장편소설 ‘그해 5월’, 한길사, 2006)

그 이듬해 1961년 5·16 쿠데타가 일어난 나흘 뒤 두 명 주필은 예상을 뒤엎고 바로 구속됐다. 진보인사 일제 검거에 걸려든 것이었는데 황용주는 한 달 뒤 석방됐으나, 나림은 공소장을 변경하는 무리를 해가며 ‘국제신보’ 동료 논설위원 변노섭까지 추가로 구속, 혁명재판소에 기소됐다. 둘은 똑같이 10년 형을 받아 2년7개월간 복역하다가 부산교도소에서 출감(1963.12.16)했다. 5·16후 된서리를 맞은 건 부산의 언론왕 김지태가 가장 혹심했다. 이로써 항도언론 르네상스는 막을 내렸다. 이후 나림 이병주는 명작가로 변신했으나, 명 언론인으로서 자질을 발휘하여 소설가 중 최고의 명칼럼을 엄청나게 많이 남겼다.

◇임헌영 문학평론가는

▷중앙대 국문학과 교수 역임 ▷현재 민족문제연구소장, 서울디지털대 교수 ▷저서 ‘임헌영 평론선집’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불확실 시대의 문학’, 리영희 선생 대담집 ‘대화’ 등.

공동 기획 : 국제신문·이병주문학관·상지E&A/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그린조이

후원 : 하동군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대 마을버스뿐
  3. 3[도청도설] 발가벗겨진 사우디
  4. 4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5. 5[시민기자] ‘핑크 가을’ 내려앉은 대저생태공원
  6. 6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7. 7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8. 8양산 사송신도시 거점 준공…수영장·도서관·건강센터 한곳에
  9. 9태종대 집와이어 안전 괜찮나…시험탑승 정상도착 40% 그쳐
  10. 10데이터센터로 돌파구…이차전지 공장 유치권 등은 과제
  1. 1언론노조·국제 비대위 “대주주 엄벌” 청와대 간다
  2. 2與, 추미애 ‘재정 빨대’ 진화 안간힘인데 기름 부은 부승찬(종합)
  3. 3또 도마 오른 항만공사 통합…“소신없는 사장 책임” 질타
  4. 4[속보] 진영승 합참의장 “北 적반하장 용납 못해…추가 도발 감행시 단호하게 대응”
  5. 5[2026 국감 브리핑]조경태 “최고 시스템 갖춘 건기연이 가덕도신공항 부지 침하 연구해야”
  6. 6"법령 검토해 결정하겠다"던 김지용 중수청장, 국무회의 참석
  7. 7여도 야도 시중은행 연쇄 해킹 사태 집중 질타
  8. 8이 대통령, "생애 첫 연금 지원사업 신청한 사람만? 실질적 불평등"
  9. 9이 대통령 "관행·절차 얽매이지 말고 주택 공급 전격전 펼치길"
  10. 10통일부. 北 대남확성기 재개 위협에 “문제 해결 노력에 호응” 촉구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데이터센터로 돌파구…이차전지 공장 유치권 등은 과제
  3. 3부산 명물 삼진어묵, 상하이 입맛 잡는다
  4. 4부산 몸집 키우는 해양금융 생태계
  5. 5선원노련 김두영 위원장, ITF(국제운수노련) 집행위 선출
  6. 6[뭐라노] 금양 부활할까
  7. 7"원전 사업자 한수원, '안전 미준수' 과징금만 5년간 338억원"
  8. 8이번엔 할리스…고객 개인정보 276만 건 유출(종합)
  9. 9기술유출 엄단…산업부 ‘특사경’ 도입 추진
  10. 10양현재단 20년, 해운·항만 새 항로 모색
  1. 1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대 마을버스뿐
  2. 2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3. 3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4. 4양산 사송신도시 거점 준공…수영장·도서관·건강센터 한곳에
  5. 5태종대 집와이어 안전 괜찮나…시험탑승 정상도착 40% 그쳐
  6. 6어린이집 앞 석면지붕 빼곡…소유주들 빈집 등 이유로 방치
  7. 7상습 음주운전 꼼짝마…후 불어야 시동 걸린다
  8. 8“미래대응기금 조성, 교부세 축소 안 돼”
  9. 9주 15시간 넘기면 인건비 30%↑…생존 위해 쪼개기 고용
  10. 10재개발 조합장 수사 정보 채팅방 올린 공무원 벌금
  1. 1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2. 2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3. 3KIA 내리 3승이냐, LG 반격 첫 승이냐
  4. 4국대 에이스 곽빈, 최동원상 받는다
  5. 5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6. 6돈으로 우승은 못 샀다…MLB 월드시리즈 연봉 하위팀 반란
  7. 7‘통산 최다안타 3위’ 손아섭, 두산에서 방출…선수 생명 이어갈까
  8. 8배드민턴 '세계 최강' 안세영, 여자 단식 최다우승 기록세워
  9. 9부산시청 고은, 전국체전 金…女사격 비공인 세계신기록
  10. 10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우리은행
얼굴에 담긴 이야기
물극필반(物極必反)
미리보는 제31회 BIFF
스타 만나려면 첫 3일·여유롭게 영화 즐기려면 둘째주 공략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일상 언어에서 찾은 삶의 방향 外
쉽게 따라 배우는 걷기명상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강동윤-Pixelated Oasis
윤상건-Creature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경비원 /박필상
자화상 /최은지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누적 180만 넘긴 ‘극장판 치이카와’ 2주 연속 정상…예매율도 1위
팬덤의 힘 ‘극장판 치이카와’ 1위로…암살자(들) 근소한 차 2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0일 (음 9월 10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19일 (음 9월 9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유배객 자암 김구의 눈에 비친 남해의 가을 바다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이 비 오는 가을밤에 읊은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