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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 팬픽’ 금상에 김향숙 시인 ‘지리산’ 등 3편 선정

이병주 탄생 100주년 기념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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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문학관·하동군·국제신문이 ‘큰 작가 이병주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시행한 이병주 팬픽 공모에서 김향숙·신현진·박진옥 씨가 공동으로 금상을 차지했다.

이병주문학관에 있는 이병주 작가 흉상
이번 공모는 경남 하동군 북천면 출신의 거대한 작가 이병주(1921~1992)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획했다. 고향인 하동군(군수 윤상기), 전담 문학기관인 이병주문학관(관장 최영욱), 고인이 언론인으로서 포부를 펼친 직장인 국제신문이 힘을 합쳐 주최했다. 지난 8월 6일부터 한 달간 산문·운문 부문에서 자격 제한 없이 전국 공모했다.

입상자는 다음과 같다. 금상은 시 부문 여성 3명이 차지했다. 김향숙(경기 양주시) 씨가 ‘지리산’, 신현진(부산 해운대구) 씨가 ‘알렉산드리아의 탄생’, 박진옥(경남 진주시) 씨가 ‘관부연락선을 타고’로 금상 수상자로 뽑혀 각각 상금 100만 원을 받게 됐다. 은상은 시 ‘책상 앞’을 응모한 강은아(인천 부평구) 씨에게 돌아갔다. 은상 상금은 50만 원이다. 동상은 동화 ‘용궁에 다녀온 아이’를 출품한 조현술(경남 창원시) 씨와 소설 ‘돌아보지 마라, 그놈 목소리’를 창작한 민경희(경남 진주시) 씨로 정해져, 상금 30만 원씩 받는다.

상금 200만 원의 최고상인 대상 수상자는 나오지 못했다. 대신, 애초 1명으로 예정했던 금상 수상자를 3명으로 늘렸다. 심사는 이원규 시인, 최영욱 이병주문학관장, 조봉권 국제신문 선임기자가 했다. 시상식은 오는 10월 2일 이병주문학관에서 열리는 2021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 때 있을 예정이다. 조봉권 선임기자 bgjoe@kookje.co.kr



◆지리산 /김향숙

바람에 골짜기가 술렁이는 것이 아니다

안개에 웅장한 능선이 출렁이는 것도 아니다

지리산은 수만 페이지의 이야기를 스스로 품고 있는

장엄한 대하소설



뭇 생명이 매달리는 곳

사람이 들면 사람을 숨겨주었고

짐승이 절뚝이면 발자국을 지우며 보듬어주었다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천년의 바람도

한때는 피로 물든 적이 있었다

피치 못할 궁지(窮地)들의 거점

상처투성이 가슴을 내어주고

무수한 염원들의 집산지가 되었다



골짜기들의 고요가 폭포로 집결할 때

절실한 기도들은 토굴 속에서 떨고 있었다

피맺힌 자리에도 들꽃은 피듯

지리산의 목소리를 받아 쓴 소설가는

일곱 권의 산을 세웠다



캄캄한 밤에는 손끝의 더듬이로 원고를 채우고

달뜨는 밤이면 달빛으로 써 내려갔다

곳곳에 숨어 있는 질곡의 사유

이야기에 이야기를 더해 거듭 높아지는 산

어느 역사의 서고에 꽂아도 빛나는 거대한 소설



가파른 사연들을 말없이 안아주던 산

단 한 순간도 절필한 적 없었다

이념의 거친 봉우리도 완만해지고

골짜기의 거친 바람도 숨을 고른다



은어 떼 올라오는 섬진강 물줄기를 먹물 삼아

지리산은 아직도 제 역사를 써 간다


# 김향숙 약력

▶경기도 양주 거주 ▶2019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 ▶제18회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 시 부문 대상, 제2회 해동공자 최충문학상 대상, 제3회 황순원 디카시 대상



◆알렉산드리아의 탄생 /신현진

사람들은 산에게

얼마만큼의 이야기를 품었기에

산이란 이름만 불러도

이명처럼 들린다고 하는가



골이야 깊어서 그윽하고

숲이야 품어서 말이 없다면

덕천은 오늘도 명산의 전설을

누에고치의 비단실 같이 풀어내고 있었다

오늘 이 바람은 지리산 깊숙이 숨어있는

신선골에 묻힌 아픔을 퍼 날라 슬픈 섬진의 울음으로 흘렸고

더러는 포구의 솔 떼 숲에서 소리 죽여 우는 울음이 되었다

해서 이곳을 나림의 이명산이라고 불렀나 보다

이슬을 묻히고 풀때를 묻히고

노을때까지 묻혀 꽃피운 양귀비꽃 같은 정열이 함함(含含)한

시대의 아픔을 향기로 피워 올리고

도공의 손조차 빌어 너끈하고 이쁜

서양도시 알렉산드리아를 만들어 내어 놓았다

질곡의 살내음으로 빚어 만든 한 다발 한 다발의 꽃들

고집 같은 당신의 땅 덕천의 산하에 풀어서 살게 하고

세상에 알렸다


# 신현진 약력

▶부산 거주 ▶ 윤동주탄생 100주년 공모전 최우수상, 제 1회 타고르 문학상 최우수상, 제 20회 토지문학제 하동 소재 작품상 대상



◆관부 연락선을 타고 /박진옥

여보게

림(林)!



나도 림(林)

그대가 나이고 내가 그대이지 싶네

오늘은 네 그루의 나무끼리 모여 꽃 같은 이야기로

숲보다 더 큰 숲 한번 키워보세

지나고 보니 참 지난한 시간이었네

칼날 같은 일제의 핍박에서 겨우 해방되니

기다렸다는 듯

맞닥트린 미군정의 굴욕이라니

그 속에서 좌우의 대립은

나와 그대만의 것은 아니었을 터

떠오르는 것과 가라앉는 것으로 뒤섞인 이데올로기

아픈 걸음으로 치장한 회색빛 세상

설익은 거대한 파고는 또 어떠했는가

그때

림(林) 자네가

격하게 나의 어깨 흔들어

보다 깊은 발화의 끈 이끌었다면

노려보고 있는 역사의 기록 달라졌을까

아니야

시국을 능멸할

※‘22살 젊은이의 고독은 고독 속에서 이겨내야 한다.’고 했겠지

색깔이 달라 터져버린 여순반란사건은

새벽 세수로 싱싱한 지리산 골짜기

아득한 통증으로 붉게 물들이고

급기야

무덥기만 한 어느 여름날 울음을 터트린 포성

어떤 상징처럼

자네와 나의 운명 무참히 찢어 버렸지

림(林)같이 무성하게 하늘 향해 두 팔 벌리고

림(林)같이 불온하게 죽은 것들 싸안아주며

림(林)같이 큰 숨 한번 쉬어봤더라면

하지만

우리 민족이 걸머지고 가야 했던 핏빛 같은 미아의 길

어찌 피할 수가 있었겠나

여보게, 림(林)

자네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고 말하겠지

이렇게 앞뒤도 맞지 않게

꽃잎을 뿌리는지 맹물을 뿌리는지도 헷갈려하고 있는

나의 이야기가

가슴 말라 비틀어도

물기 하나 없던 그때의 풍경인 것을

그 속에서도 진지함만은 놓지 않으려 바동거렸던 우리들

자의든 타의든 뭉개져 버릴 때가 대다수였지만

자그마하고 굳센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만든

웅장한 혼돈의 바다

짙은 시대의 물결에 맥을 추지 못하였기에

여기 수많은 림(林)이 중 한 사람

밤새 꾼 꿈 이야기처럼

당신 림(林)에게 주절거리는 거라네



가뭇없는 처서의 눈빛이

시린 오후요, 림(林)!


# 박진옥 약력

▶경남 진주 거주 ▶2018년 ‘시산맥’에서 작품 활동 시작 ▶2018년 시집 ‘메니에르’ ▶ 제1회 자유민주시인상 시 부문 우수상, 제3회 10·27 법난 문예공모전 시 부문 우수상, 제 11회 독도문예대전 시 부문 특선 ▶한국문협, 진주문협 등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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