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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기적’의 배우 박정민

“촬영가는 날이 소풍이었죠…영화 만드는 과정의 행복 안겨준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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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첫 민자역 ‘양원역’ 모티브
- 주민이 직접 간이역 짓는 과정
- 따뜻한 가족애 눈시울 붉히게 해

- 이번엔 ‘10대 수학천재’로 변신
- 찐팬 자처하며 윤아와 첫 호흡
- 아버지역은 연기파 이성민 맡아
- “선배 연기 구경에 푹 빠졌었죠”

- “정선·상주 등 작업 힐링의 시간
- 결과주의였던 날 변화시킨 작품”

영화 ‘동주’의 독립운동가 송몽규 역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이후 작품을 거듭할수록 더욱 믿음직한 연기로 기대감을 충족시키고 있는 배우 박정민이 또 한 번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영화 ‘기적’으로 올가을 찾아왔다.
영화 ‘기적’에서 엉뚱함과 비범함을 모두 갖춘 4차원 수학 천재이자 마을에 기차역 하나 생기는 게 유일한 목표인 준경 역을 맡아 특별한 연기 변신을 보여준 박정민.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동주’ 이후 박정민은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 증후군의 피아노 천재, ‘시동’에서 무작정 집 떠난 어설픈 반항아, 그리고 지난해와 올해 열린 거의 모든 영화 시상식에서 조연상을 휩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는 성전환을 꿈꾸는 성소수자로 출연해 독보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 왔다. 그리고 추석 연휴를 앞두고 지난 15일 개봉한 ‘기적’에서 엉뚱함과 비범함을 모두 갖춘 열일곱 살의 4차원 수학 천재 준경 역으로 특별한 변신을 꾀했다.

따뜻함이 가득한 영화 ‘기적’은 언제 기차가 올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에도 다른 길이 없어 철로로 오갈 수밖에 없는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기차역을 세우는 게 유일한 목표인 준경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88년 역명부터 대합실, 승강장까지 마을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만든 대한민국 최초 민자역 양원역을 모티브로 했다.

박정민은 최근 가진 온라인 화상 인터뷰에서 ‘기적’의 촬영 현장에 대해 “마치 소풍을 나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했는데, 영화 내용만큼이나 촬영장 분위기도 훈훈했다는 뜻일 것이다. 또 “이번 영화 촬영 과정을 거치면서 영화를 대하는 태도도 변하게 됐다”는 말도 했는데, 무엇이 예민하고 결과주의자였던 그를 변화시킨 것일까?

■30대에 열일곱 소년을 연기하다

“시나리오 받았을 때 분명히 나이에 대한 이야기 나올 것이라고 이장훈 감독에게 말했다.” ‘기적’에서 박정민이 연기한 준경은 고등학교 1학년으로 열일곱 살이다. 30대인 그에게 고등학생 역을 연기한 느낌을 물었더니 웃음과 함께 그런 질문을 할 줄 알았다며 말했다. 그런데 영화의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어려 보이는 얼굴 때문인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돌아보니 ‘시동’에서도 10대 연기를 하기도 했다. “시나리오는 너무 좋았지만 이제는 나이 때문에 못하겠다고 이 감독을 직접 만나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감독님을 만나서 대화를 하면서 홀려버렸다.” 이 감독은 그에게 ‘기적’이라는 영화에 박정민이라는 배우가 왜 필요한지,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했고, 이런 감독이라면 믿고 해보자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출연을 결정하고도 여전히 마음에 걸렸던 고등학생으로 보일까라는 걱정이었다. “그래서 함께 출연하는 친구들이나 주변 인물도 열일곱 살이라는 나이에 위화감이 들지 않게 좀 나이가 있는 분들로 캐스팅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외적인 부분에 대한 것은 이 감독을 믿기로 하고 나니 내적인 부분도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준경이라는 인물은 마을에 역을 만들겠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순수한 인물인데, 저의 열일곱 살 때는 그와는 다르게 진솔하지 못한 과도기였다. 다만 저도 그때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순수한 꿈을 꿨고, 무언가에 가로막힌 경험도 있어서 그런 기억과 감정을 이 영화에서 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꿈을 위해 순수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기적’의 준경과 배우 박정민 사이의 공통분모이고, 그 모습에서 우리는 감동을 받는다.

오갈 수 있는 길은 기찻길밖에 없지만 정작 기차역은 없는 마을에 간이역 하나 생기는 게 유일한 인생 목표인 준경과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기적’. 박정민, 이성민, 이수경, 임윤아의 연기 호흡이 좋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족애가 만들어낸 기적

‘기적’은 대합실부터 역명, 푯말까지 모두 준경과 마을 사람들의 힘으로 만들어낸 기적 같은 양원역의 탄생을 보여준다. 그런데 양원역이 만들어지기까지 이면에는 준경과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누나의 가족애가 바탕이 된다. 특히 영화에서는 누나와 아버지를 통해 두 번의 반전이 등장하면서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데,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가족애의 기적을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는 미덕이 있다. “가족과 함께 ‘기적’을 본다면 어떨까 싶었다. 극장을 나왔을 때 평소에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영화가 대신해주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것 같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공감하고 그러면서 가족 간의 사랑을 곱씹어 볼 것 같다.”

가족 간의 사연이 중요한 만큼 배우들과의 호흡도 중요했다. 원칙주의 기관사인 아버지 역에는 이성민, 친구 같으면서도 항상 보살펴주는 누나 역에는 이수경, 그리고 준경의 뮤즈가 되는 친구이자 연인 역은 임윤아가 맡았다. 네 배우의 호흡은 너무 좋아서 단체 연기상이 있다면 주고 싶을 정도다.

이전 영화들에서 이병헌, 황정민, 마동석, 이정재 등 연기파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박정민은 ‘기적’에서 이성민과 부자 사이로 만났다. “이성민 선배님과 함께 호흡할 때는 구경하느라 바빴다. 이전에도 선배들과 연기할 때 구경하다가 대사를 까먹곤 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랬다. ‘내가 이성민 선배님 정도의 나이가 됐을 때 과연 저만큼 깊이감이 생길 수 있을까?, 나이를 먹는다고 가능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누나 역의 이수경은 박정민이 눈여겨보며 한 번쯤 함께 해보고 싶었던 배우였다. “수경 씨의 영화를 보고 주변에 많이 알리기도 했다. 좋아하는 배우였는데 연기할 때 압도감이 있는 단단한 친구였다. 이 친구가 마음대로 하게 두고 제가 잘 받아주면 좋은 장면들이 완성되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소녀시대의 찐팬임을 자처했던 그에게 임윤아는 만남도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이 친구가 제 마음속의 연예인이고 팬이었는데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 했다. 혹시 불편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윤아 씨가 어느 인터뷰에서 너무 친해져서 저랑 놀다가 끝난 것 같다고 했더라. 윤아 씨의 밝은 성격 덕분에 저도 놀다가 촬영 분량이 다 끝난 것 같았다. 진짜 훌륭한 파트너였다”며 흐뭇해했다.

■과정의 즐거움을 느끼게 한 ‘기적’

“‘기적’은 후회 없이 재밌게 촬영했다. 제가 나온 영화를 재밌게 보는 편은 아닌데, 이 영화는 조금 더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아마 재밌게 찍은 기억이 더해져서 그런 것 같다. 마치 소풍을 다녀온 기분이다.” 평소 박정민이었다면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나 모자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했겠지만 ‘기적’에 대해서는 뭔가 많이 편해진 모습이었다. 앞서 좋은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고, 강원도 정선과 삼척, 경북 상주와 영주 등 각지에서의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하면서 기찻길과 개울 풀숲 새 바람 하늘 별에 둘러싸였던 것도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을 것이다. “‘기적’은 영화를 만들어가는 태도나 마음가짐을 많이 바꿔준 작품이다. 제가 좀 땅굴 파고 들어가서 혼자 해결하는 스타일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온전히 나의 성과가 아닌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만나고 제가 유쾌해지고, 도움받는 법을 알게 됐다. 지독한 결과주의자였던 사람인데, 과정에서 오는 행복함과 과정이 주는 만족감을 느꼈다. 그래서 제가 이 영화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마음이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과정에서 얻은 것이 많은 영화다.”

결과의 중요함이 강조되는 시대에 과정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기적’이 관객에게는 어떤 영화가 됐으면 할까? “‘기적’은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다가가는 영화다. 기적은 꿈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일어난다, 세상에 착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분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순수한 열정과 착한 모습(자신은 아니라고 고개를 젓겠지만)이 매력적인 박정민이 바라는 기적은 무엇일까? “큰 기적이 일어나면 무서울 것 같고, 제가 감당하고 버틸 수 있는 작은 기적들이 위기마다 찾아오면 좋겠다.” 아마 현재를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필연이 그가 말하는 기적이 아닐까 싶다.

latehop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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