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익진의 무비세프 <25> 조니 뎁 Johnny Depp
그는 어쩌다 캐러비안의 해적왕 잭 스패로우가 됐을까
이 글쓰기를 진행하는 동안 한 가지 뭐랄까 좀 불편할 때가 있었다. 내가 좋아하고 오랜 시간 그들의 영화를 보고 감탄하고 감동받곤 했지만, 영화 속 역할과 실생활 속 모습이 영판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건 우리가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하려는 경향 때문에 불합리한 판단을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이 글쓰기를 위해 그 배우의 객관적 자료를 찾아야 할 경우가 많기에 미처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는 그들(배우들)의 사생활 정보를 어쩔 수 없이 접할 때가 있다. 그 내용이 좋을 땐 마음 편히 글을 쓸 수 있지만, 좋지 못할 땐 글쓰기가 좀 꺼려진다.
이번에 내가 이야기하려는 배우 조니 뎁만 해도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생활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 선뜻 글이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조니 뎁이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내며 다소 특이한 배역을 연기할 때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연기다. 몇몇 보도에 따르면 조니 뎁의 사생활은 도덕적인 면에서 그 정도를 벗어난 경우가 많았다 한다. 한마디로 날라리 개차반처럼 행동했다는 말인데 다소 개운치는 않지만 본 글쓰기에서는 그의 사생활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므로 굳이 그 흑역사를 들출 필요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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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니 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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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뎁은 분위기가 상당히 독특한 배우다. 아이 같이 천진난만하여 동화적인 캐릭터에 잘 어울리는가 하면, 전혀 정의롭지도 못하고 선하지도 않은 악당 역할에도 잘 어울린다.
잘생기긴 했는데 로버트 테일러나 그레고리 펙 같은 정통적 미남은 아니다. 좀 중성적인 이미지를 가진 얼굴이다. 그리고 얼굴에 좀 날카로운 기운이 감돈다고나 할까. 색다르다.
그러니까 조니 뎁은 잘생긴 데다 매우 까다롭고 이상한 역할(컬트적 분위기)까지 기대 이상으로 소화하는 연기력까지 갖추어 배우로서는 버릴 게 없다. 푸른 광기 맴도는 이발사(영화 ‘ 스위니 토드’)부터 기계인간(‘가위 손’)까지 아주 특이한 배역도 조니 뎁이 아니면 안 될 정도로 캐릭터 감정이입 능력이 뛰어나다. 배우 자신이 상상력이 뛰어난 것일 수도 있고 감각이 극도로 예민하여 그 배역의 무의식까지 표현해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퇴폐적 분위기까지 갖추어 극단적인 폐륜아 역할도 잘 소화할 수도 있겠다 싶다. 조니 뎁이 착하고 어리석으리만치 순수한 그런 캐릭터의 연기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어울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숀 펜이 주연한 영화 ‘아이 엠 샘’에서 지적장애인 샘(숀 펜 분) 역을 연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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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니 뎁(영화 ‘가위손’에서 품에 안긴 위노나 라이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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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뎁을 영화 ‘가위손(’Edward Scissorhands‘ 1991년)’에서 첨 보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기상천외한 캐릭터였다. 정말 손이 저렇게 큰 가위로 되어있다면 쉽게 잠들 수도 없고 음식 먹기도 힘들 것이다. 또한 저런 엄청난 무기를 지니면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람을 해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영화 속 가위손은 순수하고 환상적인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특히 에드워드(조니 뎁 분)가 조각하는 얼음이 눈이 되어 날리고 그 아래서 킴(위노라 라이더 분)이 눈을 맞으며 춤추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그 순간만큼은 이 지구상에 위노라 라이더만큼 아름다운 여자는 없었다. 이른바 ‘에드워드와 킴의 스노우 폴링 신’이라 하여 네이버에 소개된 ‘팀 버튼 명장면 20’에서 팀 버튼 감독 작품 중에서도 최고 명장면 1위로 선정됐다. 당시 신인배우였던 위노나 라이더는 이 작품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일약 스타 반열로 힘차게 도약했다.
수줍지만 마술적인 분위기의 자태와 깊은 눈빛 연기로 여심을 흔든 조니 뎁과 당시 할리우드 최고 청순미녀 위노나 라이더의 매혹적인 연기로 관객 마음은 들썩였다. 창백한 얼굴의 에드워드(조니 뎁)에게서 느껴지는 외로움에 대한 깊은 연민과 그의 이루어질 수 없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 그것에서 전해지는 애틋함은 이 영화를 세기의 명작으로 남겼다.
조니 뎁은 이 영화의 팀 버튼 감독과 인연이 많다. 두 사람은 ‘에드 우드’ ‘슬리피 할로우’ ‘유령신부’ ‘스위니 토드’ ‘찰리와 초콜릿 공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다크 섀도우’까지 지난 23년간 영화 8편을 함께 만들었다. 두 사람은 할리우드 ‘창의력 은행’을 탈탈 털어버린 2인조 갱단이라 할 만하다. 좋은 동료, 절친한 친구를 넘어 ‘또 다른 나’(alter-ego)였던 팀 버튼과 조니 뎁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광기를 부렸고, 서로가 천재이며 완벽한 괴짜들이다.
“처음 만나자마자 우리 사이에는 즉각적인 끌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공통점이 느껴졌어요. 각자 세, 네 주전자 정도의 커피를 마셨던 것 같은데 저는 미팅 내내 커피 숟가락을 질겅질겅 씹으며 괴롭히고 있었죠. 믿음을 넘어선 흥분 상태랄까. 미팅이 끝나고 커피 스푼을 들고 일어날 정도였어요. 그리고 속으로 외쳤죠. 멋지다, 멋지다, 정말 멋지다!” (조니 뎁)
“당시 조니는 10대의 아이돌이었고 어둡고 까다롭고 차가운 이미지로 받아들여졌죠. 하지만 실제로 만난 그는 재미있고 따뜻하고 멋진 사람이었어요. 적어도 제 해석으로 그는 ‘정상인’이었단 말이죠. 그런 점이 ‘가위손’의 에드워드와 닮았더군요. 다른 사람들 눈에는 위협적이고 어둡게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반대인 청년이라는 점에서요.” (팀 버튼)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야 말로 조니 뎁의 또 다른 면모(착한 청년)를 확실하게 나의 뇌리에 각인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10대의 나이로 출연해 인생연기를 선보인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어니 그레이프 역)의 명연기도 잊을 수 없다. 조니 뎁은 20대였다. 의외로 착한 조니 뎁의 출연작 중 아마도 유일하게 착한 역할일 것이다.
‘길버트 그레이프’(What‘s Eating Gilbert Grape) 1993년)는 ‘개같은 내 인생’을 연출한 덴마크 감독 라세 할스트롬의 할리우드 첫 연출작. 아버지가 자살한 뒤 상심 때문에 고래처럼 비만해진 엄마와 정신질환이 있는 동생 어니(디캐프리오 분)를 돌보며 고단한 나날을 보내는 길버트 그레이프(조니 뎁 분)에게도 어느덧 사랑의 계절이 찾아온다는 줄거리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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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니 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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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며 내내 궁금했던 것은 길버트 그레이프의 어머니인 보니 그레이프(다렌 케이츠 분)의 극도로 비만한 모습에 사실감이 느껴지지 않아 일종의 분장기술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녀의 실제 몸무게는 500파운드, 220㎏ 조금 넘는다고 한다. 2017년 그녀는 사망했다. 영화에서처럼 수면 중 사망했다고 전한다. 디캐프리오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그녀는 놀라운 재능을 지녔고, 성격도 아주 훌륭했다” “그녀를 알고 그녀의 작품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뇌리 속에선 여전히 훌륭한 배우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이어 “다렌 케이츠는 그동안 내가 겪었던 배우 중 최고의 엄마였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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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니 뎁이 20대에 출연한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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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청년가장 길버트 그레이프 역할을 한 조니 뎁과 길버트의 동생 어니 역을 맡은 디캐프리오의 탁월한 연기 덕에 더욱 빛을 발한다. 영화 속 어니는 걸어 다니는 폭탄 같은 존재다. 지독한 ‘사고 뭉태기’다. 언제 무슨 사고를 칠지 위태위태하다. 생계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는 이런 가족 때문에 길버트는 존재에 대해 깊이 고뇌한다. 자기 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가족(어쩌면 타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다. 그래서 길버트 그레이프의 원제가 ‘What’s Eating Gilbert Grape?’ 즉, 무엇이 길버트 그레이프의 인생을 갉아먹는가이다. 길버트는 자신의 ‘땜빵용’ 삶에 깊은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조니 뎁이 주연한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가 있다. ‘리버틴’(The Libertine 2005년)이다. 위험하고, 어둡고, 칙칙한 영화다. 신비한 면이 있는가 하면 속절없이 세속적이다. 17세기, 영국, 백작, 방탕, 탕아, 변태, 술, 마약, 여자, 매혹, 난봉꾼, 왕권, 시인, 시, 연극 등등의 단어가 주류를 이룬다. 이러한 단어들이 영화 속의 조니 뎁이 맡은 역할에 비교적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 제목은 리버틴 libertine, 자유로운 사상가라는 좋은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원래 뜻은 난봉꾼이다. 술과 색에 빠져 방탕하게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17세기 영국 로체스터 백작(조니 뎁 분)이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고, 19금 영화라 그런지 국내 개봉도 되지 않았다. 아무튼 이 영화는 보긴 보았다. 볼 당시엔 몰두해서 잘 보았는데 지금 기억을 떠올리려 해도 명확하지 않다. 17세기 영국 백작의 의상이 조니 뎁에게 매우 잘 어울렸고 시적인 대사가 많아 17세기 영시의 분위기를 맛보기도 했다. 볼 만했던 장면은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독백 씬이다. 오프닝에서 오만한 표정으로 “당신들은 나를 싫어하게 될 것이다”라고 엄포를 놓았던 로체스터 백작 엔딩에서 “그래서 나를 사랑하게 됐나요”라고 슬픈 표정으로 말한다.
다음은 존 윌못(로체스터 백작)이 남긴 말들 중 하나다.
Before I got married I had six theories
about bringing up children;
now I have six children and no theories.
결혼하기 전에는 아이를 키우는 6가지 이론을 갖고 있었지만,
결혼한 후에는 6명의 자녀가 생기고 이론은 사라졌다.
이제 ‘조니 뎁’ 하면 ‘캐러비안 시리즈’(2003년∼2007년)의 안티 히어로 잭 스패로우 선장을 빼놓고는 논할 수 없다. 놀라운 배역이 아닐 수 없다. 연기의 핵심이 그 역할이 가진 디테일에 있다면 잭 스패로우가 가진 디테일은 조니 뎁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중얼거리는 말투라든지 술에 취한 듯 걷는 모습이라든지, 잭 스패로우의 ‘찌질함’을 표현하기 위해 조니 뎁이 만든 수많은 동작과 어투는 그가 연기 달인임 더욱 확고히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영화는 다른 배우들의 분장과 연기 디테일 더해져 영화사적으로 불멸의 금자탑을 세운다.
이뿐 아니라 깨알 같은 시대 고증 묘사와 센스 있는 연출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거칠기만 한 액션 블록버스터답지 않게 그 시대 생활상을 정말 자세하게 묘사해 크게 호평받았다.
제목답게 카리브해(캐러비안 베이)가 무대다. 다만 블록버스터 특성상 3편에서는 싱가포르가, 4편에서 런던이 나오는 등 다른 지역도 간간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제작 초기의 부정적 예상과는 다르게 그야말로 흥행 대박이 터지며 전 세계적으로 남녀노소 불문 인기가 폭발해 2000년대 해리 포터 시리즈, 반지의 제왕 시리즈 등과 함께 대표 블록버스트 시리즈가 됐다.
음악이 유명해다. 클라우스 바델트와 한스 짐머가 작곡한 오리지널 스코어 중 He‘s a Pirate가 아주아주 유명하다. 이외에도 The Medallion Calls, Davy Jones, Up is Down 등 매 편 명곡이 쏟아진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훌륭한 프랜차이즈였지만 4편까지는 흥행과 평이 모두 안정됐으나 5편이 혹평을 받았고, 더구나 2016년 주인공 잭 스패로우 역의 조니 뎁이 전 아내 앰버 허드와의 법정공방을 벌이고 언론매체 더 선과 명예훼손 소송 등에 휘말리며 앞으로 조니 뎁이 잭 스패로우 역으로 돌아오기 힘든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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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니 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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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뎁의 본명은 존 크리스토퍼 ‘조니’ 뎁 2세(John Christopher ‘Johnny’ Depp Ⅱ, 1963년생)로, 미국의 배우 겸 영화제작자, 음악가다. 아카데미상에 세 번 지명됐다. 골든글로브상과 미국 배우조합상을 받았다. 켄터키주 오언즈버러 태생으로, 플로리다에서 자랐다. 팀 버튼 감독과 오랜 우정을 지키며 여전히 친구이며, 오랫동안 그의 작품에 출연했다.정익진 시인 ij0715@hanmail.net
<추신>
앞서 언급했지만 캐러비안 시리즈에서 해적왕 잭 스패로우(조니 뎁)는 호탕하고 통쾌한 해적의 영웅 모습이 아니다. 어딘지 약간 허술하고 비열한(상당히 찌질한) 안티 히어로 역할을 매우 훌륭히 연기해냈다. 매 번 기괴하고 작가주의 성향이 짙은 작품에만 출연했던 뎁은 아이들(딸 바보라는 소식)과 같이 볼 영화를 찍기를 원했는데, 마침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그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라고 생각해 출연했다고 전한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는 여러 편이 매번 대흥행을 기록하며 엄청난 성공을 했고 조니 뎁은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