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오랜 세월 복역해온 죄수 203(최민식)은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는다. 삶의 시간이 겨우 2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그는 탈출을 시도하고, 병원에서 일하면서 필요한 약을 훔쳐 자신의 난치병을 다스리던 남식(박해일)은 우연한 계기로 휘말려 203의 탈주에 동행하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이 탈출을 위해 훔친 장의차에는 범죄 조직의 보스 윤여사(윤여정)에게 돌아갈 거금의 돈이 관에 실려 있었고, 탈옥수를 추적하는 경찰에 돈의 행방을 찾는 조직의 하수인까지 개입하면서 203과 남식의 탈주극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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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상수 감독 ‘행복의 나라로’. |
임상수 감독의 ‘행복의 나라로’(2021)는 버디 무비(buddy movie)의 공식을 답습하는 일종의 로드 무비이다. 203과 남식은 도주하는 와중에 서로를 도와가며 긴밀한 우정을 쌓아가고, 생애 마지막 여행을 함께한다. 두 사람을 묶어주는 공통점은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강박이다. 출소일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그보다 먼저 죽음이 찾아올 것을 알게 된 203은 마지막으로 딸의 모습을 보길 원하고, 남식은 약물이 끊기면 목숨을 지속할 수 없다. 뒤를 쫓는 건 경찰과 범죄조직 뿐만 아니라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죽음인 셈이다.
시한부 인생인 두 남자가 콤비를 이루며 추적을 뿌리치고, 마침내 도달한 바다에서 삶의 황혼을 맞이한다는 전체적인 얼개에는 어딘가 익숙한 기시감이 감돈다. 이 영화는 한국적인 배경에 맞도록 각색한 ‘노킹 온 헤븐스 도어’(1997)의 리메이크에 가까워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주제는 형식을 위한 핑계’라는 로베르 브레송의 말을 살짝 비틀어 말하자면 이 영화의 이야기는 감독의 메시지를 위한 핑계일 뿐이다.
‘행복의 나라로’에는 세 개의 죽음이 배치되어 있다. 203과 남식, 그리고 윤여사. 영화의 편집은 세 사람에게 죽음을 번갈아 교차시킨다. 링거에 치료제를 주입하는 이미지가 겹치긴 하지만 필요한 약을 구할 돈이 없어 훔치는 남식의 가난은 안락한 침실에서 주치의의 치료를 받는 윤여사와 대비를 이룬다. 203에게 꺼져가는 생명을 지속해야 할 이유는 딸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지만, 윤여사에게 있어 삶을 이어가야 할 이유는 돈에 대한 탐욕과 갈증이다. 피하지 못할 죽음을 마주하고서도 엇갈리는 인간들의 서로 다른 양상을 통해 감독은 리메이크 버전 ‘하녀’(2010)와 ‘돈의 맛’(2012)의 주제의식을 이어가며 자본과 계급에 대한 비판과 풍자의 함의를 담아낸다.
카메라는 이따금씩 203과 남식의 모습을 와이드숏과 부감으로 잡아낸다. 인물과 배경의 크기를 대비시키며 왜소해보이는 인상을 만들어내는 이러한 촬영은 두 사람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권력의 시선이기도 하며, 이들이 사회의 정상성에 포섭되지 못하고 내몰리는 소수자임을 암시한다. 도로라는 선을 타고 추적하는 국가권력을 피해 두 사람은 산 속과 같은 선 밖의 면으로 도망치고 잠행하지만, 안식의 공간에 머물지 못하고 계속 내몰리며, 종국에는 트럭에 실린 흙과 함께 내다버려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까지 한다.
‘쓰레기가 되는 삶들’(지그문트 바우만) 또는 모더니티로부터 추방당한 사람들. 마침내 도달한 바다는 이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줄 신화적 공간이며, 목적지에 이르러서야 203은 죄수번호가 아닌 본래의 이름으로 불리며 한 사람으로서의 인격성을 회복한다. 정상 사회의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에 대한 시선의 따스함. 블랙코미디 속에서 피어오르는 일말의 휴머니티는 배우 최민식의 완숙한 연기에 실려 잔잔한 여운과 숭고를 자아낸다.
조재휘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