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준비 중 7월 작고한 佛 거장
- 사진 등 일상 오브제로 죽음 천착
- 초기부터 최근작까지 43점 선봬
지난 7월 영면한 프랑스 현대미술계 거장 크리스티앙 볼탕스키(1944-2021). 일평생 ‘죽음’이라는 주제에 천착한 그의 첫 번째 유작전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타이틀은 ‘4.4’. 작가가 생전 직접 정한 것으로, 자신이 태어난 해(1944)와 ‘생로병사’로 구분되는 삶의 마지막 단계(4막 4장)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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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립미술관이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전시회에서 선보이는 작품 ‘저장소-카나다’1988(2021년 재제작).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
사실 이번 전시는 1년 전부터 작가의 회고전 성격으로 기획됐다. 작가가 작품 선정부터 공간 디자인까지 모두 참여했고, 한글로 디자인한 작품을 출품하는 등 애정을 쏟았다. 그런데 전시를 석 달 앞둔 지난 7월 14일 작가가 갑작스럽게 타계하면서 이번이 전 세계 최초의 유작전이 됐다. 부산시립미술관 기혜경 관장은 “다른 나라에서 예정됐던 전시 대부분이 취소됐지만, 부산시립미술관 회고전만큼은 어렵게 성사됐다”며 “볼탕스키의 마지막 예술적 영혼이 들어간, 다시는 볼 수 없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미술관 3층과 이우환공간 1층에 마련한 전시는 작가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총 43점으로 구성됐다. 흔히 작가의 작품을 두고 ‘쇼아(Shoah·홀로코스트의 히브리어 표현)’를 떠올리곤 하는데,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된 직후 프랑스 파리에서 나고 자란 삶이 투영된 까닭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쇼아’라는 수식어보다 평생에 걸쳐 ‘죽음’이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룬 작가의 작품 전반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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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탕스키의 ‘기념비’(1986). |
그중에서도 ‘기념비’ 시리즈는 작가를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으로 손꼽힌다. 수집한 사진을 재촬영하고 프레임에 담아 배열했는데 언뜻 종교적 분위기마저 감돈다. 세간에는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어린이를 다룬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어른이 되려면 우리 안의 어린이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어린 시절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작가는 사진뿐 아니라 옷과 같은 일상적 오브제를 즐겨 썼다. 한 예로 거대한 석탄 더미를 연상시키는 작품 ‘탄광’에는 검정 옷 700㎏이 사용됐다. 과거에는 누군가의 소유물이었을 검정 옷들이 형태조차 구분하기 어렵게 쌓여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죽음’을 암시한다. 전시장에는 이 작품과 함께 영혼이 부유하는 듯한 80여 개의 천 작품 ‘인간’을 배치해 절묘한 조화를 만들어냈다. 옷을 사용한 또 다른 작품 ‘저장소:카나다’는 나치가 억류된 유대인의 소지품을 한데 모아둔 창고를 ‘카나다’로 불렀다는 점에서 착안했으며, 1988년 캐나다에서 처음 소개됐다. 작품 ‘탄광’과 ‘저장소:카나다’ 모두 부산에서 구한 재료로 재제작했는데, 전시에 쓰인 옷만 4t 가까이 된다.
작가가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를 녹음해 제작한 ‘심장’(2005)은 그의 부재로 더욱 특별해진 작품이다. 오로지 전구 하나만 불을 밝히는 어두운 공간에서, 쉼 없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심장 박동 소리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전시장을 찾으면 알아채겠지만, 작가의 작품들은 캡션이 따로 없다. 부산시립미술관 양은진 학예연구사는 “작가는 캡션이 정보를 주고, 해석하게 하는 등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며 “작품을 해석하기보다 느끼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해 텍스트를 최소화했다”고 전했다. 전시 무료, 내년 3월 27일까지. 민경진 기자 jnm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