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에게 털어놓기 힘든 고민들
- 곪지 않도록 사회가 귀 기울여야
발달장애 동생을 둔 태은은 엄마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동생을 돌보고 엄마에게 사랑받는 딸이 되려고 대학 전공도 사회복지학을 택했다. 하지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다. “엄마 나도 힘들어.”
진설은 친한 친구에게 조현병을 앓았던 오빠의 존재를 꺼내놓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그 사실을 입 밖에 내면 너를 조현병에 걸린 사람의 동생으로만 볼 것”이라며 단단히 엄포를 놨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진설은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명확하게 구별하며 살아가게 됐고, 주변 사람들은 그걸 ‘벽’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는 장애형제를 둔 이들의 고민과 혼란, 연대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정신적 장애인(발달장애·정신장애)을 형제로 둔 청년들의 자조모임 ‘나는’의 회원 6명이 자신의 실제 경험담을 소설형 에세이로 풀어냈는데, 장애인 당사자나 그 부모가 아닌 비장애형제가 직접 그들의 존재와 삶을 드러냈다는 점이 새롭다.
으레 그렇듯, 장애가족은 장애형제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비장애형제는 장애형제를 사랑하고, 뭐든지 더 잘해야 하며,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어른스러운 역할을 요구받고 일찍 ‘어린이다움’을 포기하게 된다. 뒤늦게 ‘비장애형제가 아닌 나는 누구인가’란 성장통을 앓지만, 살아가며 다른 비장애형제와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적어 고민을 나누거나 답을 찾기도 쉽지 않다.
아동기에 경험한 이러한 우울과 분노는 성인이 돼 사회에 나갔을 때 곪아 터지기도 한다. 우울증을 겪거나 심리상담,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애초 사회적 관심이 전무하다시피한 까닭에 아동뿐 아니라 성인이 된 비장애형제 역시 도움을 구할 곳이 마땅치 않다.
그런 차원에서 장애형제를 둔 이들의 어려움을 가감 없이 담은 이 책은 세상의 또 다른 비장애형제들에게 보내는 한 편의 위로처럼 느껴진다. 아울러 비장애형제가 아닌 한 인간으로 ‘오롯한 나’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저자들의 노력은 장애가정뿐 아니라 모두에게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기 충분하다.
민경진 기자 jnm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