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37> 작사가 천봉의 부산 사랑

경찰 되고도 시인의 꿈 못 버려… 부산 녹여낸 가사로 히트곡 행진

  • 이동순 시인
  •  |   입력 : 2021-11-21 19:28:23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서구 초장동 출신 토박이 문화인
- 평생토록 부산에서만 창작활동
- ‘한 많은 천마산’으로 가요계 데뷔
- 1945년 경찰 시험 합격했지만
- 영남극장 사업부장으로 스카웃

- 작곡가 한복만과 수많은 곡 작업
- ‘앵두나무 처녀’ ‘엽전 열 닷냥’ 등
- 부산의 정서 잘 담아내 큰 인기

오늘은 필명이 ‘천봉’인 작사가 천상률(千相律, 1923~1989) 선생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한다.
미도파 레코드사 시절의 가수 정향(왼쪽부터), 작사가 천봉, 가수 방운아.
모든 노래가 그렇겠지만 작사가는 작곡가를 잘 만나야 하고, 작곡가는 작사가를 잘 만나야 한다. 두 영역의 절묘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하모니가 위력을 발휘하려면 그 악보를 최고로 소화시켜낼 수 있는 가수를 잘 만나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작사 작곡 가창, 이 세 요소는 세 발로 서 있는 솥(鼎)과도 같아서 어느 하나만 결함이 있어도 그 솥은 바르게 설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작사가로 두고 말하자면 조명암 김능인 왕평 유도순 박영호 고려성 강사랑 등의 걸출한 인물이 있었다. 이들과 보조를 맞추는 유명작곡가로는 박시춘 손목인 문호월 전수린 김교성 김해송 전기현 이용준 등을 손꼽을 수 있다. 각 레코드사에서는 이들 작사가와 작곡가를 서로 엇바꿔가며 콤비를 형성하게 해서 히트곡을 생산해내도록 유도했다. 해방 후 작사가로는 반야월 손로원 유호 김문응 한산도 최치수 월견초 정두수 조운파 등이 있고, 작곡가로는 한복남 손석우 김부해 박춘석 백영호 송운선 이봉조 길옥윤 김학송 배상태 고봉산 남국인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작사가 ‘천봉’ 천상률은 부산 출생으로 일생토록 고향을 떠나지 않고 오로지 부산에서 창작 활동을 하며 히트곡을 양산했던 특별한 사례라 하겠다.

천봉이 작사한 청춘등대 앨범 사진.
천봉은 부산 서구 초장동에서 태어난 토박이 대중문화인이다. 부모는 자갈치어시장 제빙공장에서 매일 얼음을 떼어다 판매하는 소매상이었다. 천봉은 소년시절부터 부모의 일을 도우며 일했는데 틈틈이 책을 읽으며 열심히 독학을 했다. 시험을 쳐서 직장을 얻었지만, 부산을 다녀가는 악극단 공연에 심취해서 거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이름난 공연 무대를 보러 다녔다. 평소 시집과 소설책을 늘 끼고 다니며 읽었는데 이 과정에서 시인이 되고 싶은 충동을 갖고 시를 꾸준히 썼다. 하지만 일반 자유시보다는 율격이 규칙적으로 정돈된 정형시, 그중에서도 대중가요가사에 더욱 매력을 느끼며 노랫말 습작에 빠져들었다.

1945년 8·15광복 이후 미 군정 체제가 펼쳐졌을 때 천상률은 군정청 경찰채용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1948년 그는 드디어 ‘한 많은 천마산’이란 가사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프로 자격을 갖춘 그는 6·25전쟁 시절 부산으로 피란 내려온 서울 대중음악인들과 자주 교류하며 어울리는 계기를 갖는다.

1952년 천상률의 재능을 눈여겨 본 부산 영남극장 사장에게 스카웃돼 영화와 악극단 공연 등을 섭외하는 사업부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경찰직을 그만둔 것은 물론이다. 이후 천상률은 작곡가로 도미도레코드를 운영하던 한복남과 친밀한 관계가 되어 다수의 가사작품을 한복남에게 주어 본격적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이 시기부터 천봉이란 필명을 쓰게 되었다.

첫 히트곡은 ‘피란길 고향길’(한복남 작곡, 원방현 노래)이다. 이어 히트곡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는데 그 곡목은 모두 한국대중음악사에서 걸출한 한 자리를 차지하는 비중 높은 작품들이다. 이를테면 ‘앵두나무 처녀’(김정애 노래) ‘엽전 열 닷 냥’(한복남 작곡, 노래) ‘부산행진곡’(한복남 작곡, 방운아 노래) ‘전화통신’(한복남 작곡, 심연옥 남백송 노래) ‘온천의 하룻밤’(백영호 작곡, 신해성 노래) ‘부산 마도로스’(한복남 작곡, 김용만 노래) ‘짝사랑’(한복남 작곡, 손인호 노래) ‘동백꽃 일기’(한복남 작곡, 손인호 노래) ‘방랑일기’(한복남 작곡, 정향 노래) ‘청춘등대’(한복남 작곡, 손인호 노래) ‘울지 마라 철진아’(박현 작곡, 고봉산 노래) ‘이별 슬픈 플랫홈’(백영호 작곡, 남인수 노래) ‘저이가 누구시더라’(백영호 작곡, 이미자 노래) 등이다. 이 모든 노래가 천봉의 작사 솜씨로 이루어진 작품들이다.

곡목만 살펴보더라도 가요팬의 크나큰 사랑을 받은 빅히트곡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천봉의 노래가사 특징은 역사성 사회성 전통성 현실성을 두루 담보하는 품격 높은 노랫말을 써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서민의 구체적 삶과 정서, 친화력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 따뜻한 시인적 감성에 바탕을 두고 창작에 임하는 작가정신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천봉의 작품성이 형성된 바탕에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항도 부산 고유 정서와 지역성이 큰 힘으로 받쳐주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작품에서도 부산적 정서, 부산적 고유성이 담겨있지 않은 가사가 드물 정도라 하겠다. 천봉이야말로 자신을 낳고 키워준 고향 부산을 지극히 사랑했던 대중예술가였다.

남인수의 노래 ‘이별 슬픈 플랫홈’ 가사는 3년 동안의 부산 피란 생활을 정리하고 떠나는 모습과 부산역 주변의 처연한 이별 풍경과 그 현장감을 절절히 담아내고 있다. 가수 남인수의 절규에 가까운 창법이 백영호의 작곡솜씨와 배합되어 최대 효과를 증폭시켜낸다.

그 사람 잊어야지 그 이름도 잊어야지/ 행복을 빌어주고 떠나야 하는/ 정거장 대합실에 내 청춘이 외로워/ 타향 길 밤 열차야 손을 잡고 작별인사/ 아, 주고받을 사람도 없네

고향도 님도 잃고 마음 둘 곳 어드메뇨/ 천리 길 차표 한 장 무거운 발길/ 바람찬 플랫트홈 트렁크를 들고서/ 서러운 운명이라 기적소리 슬피 울 때/ 아, 마후라에 눈물이 젖네

나 혼자 떠나간다 밤 열차에 몸을 싣고/ 미련이 남은 사랑 한이 되어도/ 세월이 흘러가면 잊을 날이 있으리/ 담뱃불 연기 따라 그림자는 사라지고/ 아, 유리창에 밤비가 오네 -‘이별 슬픈 플랫홈’ 전문

천봉의 딸로 태어난 천 데보라는 어려서 어머니와 작별하고 불우한 소녀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타고난 예인적 끼의 발산으로 대학시절부터 밤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일본의 미키프로덕션에 스카웃돼 일본 가요계에서 다년간 가수로 활동하며 독집앨범을 발표했다. 현재는 가요계를 떠나 선교사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시인·가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정부, 공연장 겸 돔구장 추진…북항 돔 아레나 ‘기회’
  2. 2폭발음 뒤 불길…인근 7000명 대피(종합)
  3. 3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4. 4부산시, 퐁피두 분관·라 스칼라 공연 백지화(종합)
  5. 5‘신천지 與 입당 정황’ 친청계 반발…“김 대표, 조사 과정 제대로 밝혀라”(종합)
  6. 6이기대 예술공원 사업도 차질
  7. 7호텔 셔틀 타고 황령산 야경 보러가요
  8. 8구·군은 맘대로 불법 현수막…민간엔 과태료 폭탄
  9. 9[단독] “어? EBS서 봤던 문젠데” 부산 고교 118명 중간고사 재시험
  10. 10변성완·박상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송치
  1. 1‘신천지 與 입당 정황’ 친청계 반발…“김 대표, 조사 과정 제대로 밝혀라”(종합)
  2. 2北 "전날 동해서 2종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시험발사"
  3. 3신임 靑 비서실장에 임광현 국세청장(종합)
  4. 4김민석 격주 부산행 PK 민심잡기…부마항쟁 기념식 찾는다
  5. 5김지용 “정치검사 1호는 尹”…과거 행적 놓고 與 집안싸움(종합)
  6. 6박형준 “새로 할 일 없는 사람들, 전임 시정 뒤집기 집착”
  7. 7여도 야도 농지 전수조사 질타…임대수탁 부작용 등 지적
  8. 8이 대통령, 부캉이 보러 북항 방문…전재수 ‘돔 아레나’ 건의
  9. 9이헌승 “국제신문 100억대 체임 구속사유”…장관 “엄정 대응”
  10. 10“북극항로 가능성, 시범운항서 확인”(종합)
  1. 1호텔 셔틀 타고 황령산 야경 보러가요
  2. 2올해 자사주 62조 태웠다…‘삼전닉스’ 과반
  3. 3부산 호텔업계 “바가지요금 논란 되풀이 막자”
  4. 4금융사 AI해킹 16곳으로 늘어나…130곳은 ‘보안 미흡’
  5. 5친환경에너지·AI기술 각축…업계 트렌드 읽고 미래로 항해
  6. 6현대차, 인도에 20조 통 큰 투자…생산·연구개발 거점 강화
  7. 716, 17일 ‘부산금융주간’…청년교육·세미나 등 다채
  8. 8주가지수- 2026년 10월 14일
  9. 9삼전닉스 급락에 코스피 5600선까지 추락…매도사이드카 발동
  10. 10고리 3·4호기, 오늘 계속운전 심의…의결 땐 2035년까지 전력 더 생산
  1. 1폭발음 뒤 불길…인근 7000명 대피(종합)
  2. 2부산시, 퐁피두 분관·라 스칼라 공연 백지화(종합)
  3. 3구·군은 맘대로 불법 현수막…민간엔 과태료 폭탄
  4. 4[단독] “어? EBS서 봤던 문젠데” 부산 고교 118명 중간고사 재시험
  5. 5변성완·박상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송치
  6. 6부산도시철 교대인력 공백 떠안은 직원들…현장 아우성
  7. 7市 ‘시간 쪼개기 계약’ 채용 관행 전면 손질
  8. 8부산중수청장 “지방청 중심 수사…기존 검찰 구조와 다를 것”
  9. 9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15일
  10. 10“나노산단 분양률 50% 고무적…미래전략 앵커기업 유치 목표”
  1. 1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2. 2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3. 3[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4. 4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5. 5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6. 6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7. 7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8. 8프로야구 한화, 신임 사령탑으로 류지현 국가대표 감독과 계약
  9. 9최동원 어린이 야구교실, 출범 11년 만에 프로선수 배출
  10. 10HJ重·동부건설, 소외층·골프 꿈나무에 3000만원 기부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스타 만나려면 첫 3일·여유롭게 영화 즐기려면 둘째주 공략
얼굴에 담긴 이야기
코 성형과 마음 성형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쉽게 따라 배우는 걷기명상 外
약학박사 연륜이 깃든 시조집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윤상건-Creature
박지은- little talk-Venice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경비원 /박필상
자화상 /최은지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팬덤의 힘 ‘극장판 치이카와’ 1위로…암살자(들) 근소한 차 2위
역사 왜곡 논란에도 ‘암살자(들)’ 정상…애니 ‘극장판 치이카와’ 예매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15일 (음 9월 5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14일 (음 9월 4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이 비 오는 가을밤에 읊은 시
생육신 남효온이 가을 강변의 풍경을 읊은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