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달 2일까지 부산 미광화랑서
- 한 곳 정착 힘든 불확실한 생활
- 짐 줄이려 종이·콘테 위주 작업
- 전시장 배치 등 공간 해석 눈길
“이번 작업은 개인적인 서사와 주변에 대한 관심을 드로잉과 회화로 풀어낸 것들이다. 새로운 상황과 환경 그리고 사람 사이에서 얻어진 이미지를 그린 일련의 장면이며, 전시장 내에서 이미지들은 서로 수용되거나 병치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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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출신 중견 작가 감민경이 ‘진공포장전’에서 소개하는 작품 ‘비경’. 미광화랑제공 |
부산 출신의 중견 작가 감민경이 ‘감민경-진공포장상태’展을 소개하는 작가노트의 일부이다. 2014년부터 국내외를 떠돌며 전시활동을 이어오는 감 작가가 모처럼 부산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다음 달 2일까지 미광화랑(부산 수영구)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는 ‘나는 그의 은유였다(2021년)’ ‘잃어버린 밤(2019년)’ ‘지붕 없는 기억(2017년)’ 등을 포함한 그의 최근 작품 3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 제목 ‘진공포장상태’는 부산 일본 독일 등지에서 레지던시 활동 상황을 그려낸 동명의 작품에서 따왔다. 수 년째 짐을 싸고 풀고, 그림을 포장하고 또 연출해야 하는 처지를 투영했다. 유목민 같은 생활은 그의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항상 짐을 최소화하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캔버스보다 종이를, 물감보다는 목탄이나 콘테를 사용하게 됐다. 대부분 작품이 모노톤이지만, 작가는 “한 톤으로 그려도 엄청난 변화가 있다. 색이 결코 적지 않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간극(공간)’에 집중했다. 작품 속에도, 작품 간에도 공간이 있으며, 작가와 관람객 사이에도 많은 공간을 뒀다. 이 때의 공간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또 다른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는 ‘나의 작품의 의미는 이러하다’고 확언하지 않는데, 개인적 서사에서 출발하지만 다의적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것이다.
이선영 미술평론가는 “작가는 평소 많은 드로잉을 해놓고 서로 다른 시기, 소재, 재료로 작업한 것을 병치시키며 그 시공간적 간격에서 오는 차이와 유희한다. 이러한 조합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작품은 개방적 구조를 가진다. 작품들은 비슷한 시각상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데, 만약에 어울리지 않으면 안 어울리는 대로 또 다른 의미가 파생된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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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밤’. 미광화랑제공 |
이러한 경향은 ‘잃어버린 밤’ 작업에서 드러난다. 전시장에는 어두운 밤 풍경, 숲속의 남자, 지친 듯 앉아있는 사람, 고양이 등 작은 작품 10여 점을 한 데 모아 전시했다.
그는 “실제 작업에 1~3년씩 시간 차이가 나는 작품(순간)들을 한 공간에 펼쳐냈다”며 “우리의 기억이나 인식의 조각을 추적해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 그리고 인식하고 있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작가가 경계선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번지듯 그리는 스푸마토 기법을 주로 사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림에서 표현된 대상 또는 현상에 다른 여지(공간)를 만들어내기 위해 연출법인데,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의 얼굴이 흐리게 지워져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전시 공간에 대한 감상도 당부했다. 그는 마치 설치 미술가처럼 공간을 해석하고 그림을 직접 배치했다. 작품과 감상 거리를 조절하며 크고 작은 그림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전시 공간이 커지는 느낌이다. 그는 “사람들이 전시공간 자체를 머릿속에 그려줬으면 좋겠다. 강약을 주기 위해 기존의 회화 연출방법과 다르게 배치했는데 어떻게 봐주실 지 궁금하다”고 했다.
앞으로 작품활동 계획이 궁금했다. 그는 당분간은 레지던시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생각이다. “언젠가 부산에 돌아와 정착하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하지만 당장 내일의 일도 불확실 한데, 먼 미래의 계획까지 세울 형편이 못됩니다. 그저 언제까지나 그림을 그릴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최승희 기자 shcho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