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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기 살아있소” 부산 젊은 영화인 존재와 가치 확인한 자리

부산독립영화제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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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닷새간 상영한 독립영화 대부분
- 부산 영화인이 부산서 만든 작품
- 관객과의 대화 무려 24회 열고
- 상영관 확대해 ‘함께하는 축제’

- 지역 독립·예술영화 흐름 살피고
- 창작자 생각 직접 들은 귀한 기회

부산독립영화협회(대표 오민욱 감독)가 여는 제23회 부산독립영화제(11월 18~22일·집행위원장 오민욱) 현장을 어떻게든 취재해야겠다고 다짐했던 이유는 프로그램 짜임새가 워낙 단단하고 풍성해 보였기 때문이다. 주최 측은 “올해는 ‘Made in Busan 경쟁 부문’에 78편이 출품됐다. 그중 단편 13편과 장편 3편이 본상 4개 부문과 특별상 2개 부문을 두고 겨룬다”고 밝혔다.
   
지난 20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3회 부산독립영화제 현장. 올해 독립영화제는 풍성한 구성과 탄탄한 기획으로 부산 영화 플랫폼 구실을 했다.
‘스펙트럼 부산 나우&리와인드’ 부문에서는 신작과 기성 작품 7편을 상영했다. ‘딥 포커스’ 부문에서는 주최 측이 선정한 정재훈 감독 작품 5편, ‘로컬 투 로컬’ 부문은 부산 외 지역에서 만든 독립영화 17편을 소개했다. 포럼 부문은 국제신문이 제작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초청됐고 지역신문컨퍼런스 대상 등을 받은 다큐멘터리 ‘10월의 이름들’(감독 이동윤)을 비롯해 장·단편 8편을 특강(이미지 연구자 이나리)과 엮었다. 특별프로그램으로 정재훈 감독 시네트크, 특별대담 ‘영화를 만드는 일’도 마련했다.

절대 다수 상영작이 부산 영화인들이 부산에서 만든 영화다. 게다가 상영시간표를 살피면, 영화 상영 뒤 관객이 감독·배우와 대화하는 GV(관객과의 대화)를 무려 24회 마련했다. 이건 ‘GV에 진심인 편’을 넘어 ‘집요한 GV 편성 노력’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 상영공간 또한 영화의전당뿐 아니라 부산 중구 광복중앙로 BNK 아트시네마 모퉁이극장과 북구 화명동 무사이극장으로 넓혔다. 접근성이 나아졌다.

결국, 부산독립영화제에 가면 부산 독립·예술·실험영화의 흐름을 한눈에 보고, 그 영화를 만든 부산 영화인과 이야기할 수 있으며, 그들의 생각과 주장을 접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잘 차린 잔칫상에 숟가락을 올리지 않는 건 이야기가 안 된다고 판단했다.

■ “나는 혼자 영화를 찍습니다”

   
지난 19일 영화의전당 인디플러스에서 다큐멘터리 ‘버스를 타라’ 상영 뒤 김정근(오른쪽) 감독이 관객과 대화하는 모습이다.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 지하 1층 인디플러스는 좌석이 36석뿐이고 아담해 홈씨어터 같은 편안한 느낌마저 받았다. 지난 19일 이곳에서 ‘포럼 4’ 부문 상영작 ‘버스를 타라’(김정근 감독) ‘영아일랜드’(김종한 감독)를 보는 것으로 취재를 시작했다. 2012년 작 ‘버스를 타라’는 여전히 기억에 선명한,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노동자와 함께한 희망버스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2020년 작 ‘영아일랜드’는 김종한 감독 자신이 유일한 배우로 나오는데 인상 깊은 영상 시(詩)를 본 것 같았다. 두 작품 모두 공간은 영도다.

현장에 온 김정근 감독과 관객이 이야기를 나눈 GV는 알찼다. 김종한 감독은 오지 않았다. 이튿날 20일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에서 ‘스펙트럼 부산 나우’ 부문 ‘철선’(감독 김지곤), ‘특별대담-영화를 만드는 일’(진행 김이석, 출연 이남영 장태구 윤지혜 감독, 조영대 촬영감독), ‘Made in Busan 경쟁 부문 3’(‘사랑의 여름’ ‘어디에도 없는 시간’ ‘그림의 커피’ ‘대영약국’ 4편 상영)을 이어서 보았다. ‘경쟁 부문 3’ 상영이 끝나고 GV가 열리자 장태구 홍혜린 감독, 이승미 배우와 함께 김종한 감독이 무대로 올라왔다. 부산 영도가 공간적 배경인 ‘대영약국’이 그의 작품이다.

김종한 감독에게 물었다. “‘영아일랜드’ ‘대영약국’ 모두 영도에서 찍었다. 영도의 매력은 뭔가?” 그는 ‘근사하게’ 답하지 않았다. 솔직담백했다. “나는 영도에 산다. 나는 혼자 영화를 찍는다. 그래서 내 영화에는 주로 배우가 나 혼자다. 나의 창작 욕구를 채우려 찍은 영화들이다. 만들어 (영화제에) 출품한다. 떨어지고, 만들고, 또 만들고 한다. 이번처럼 고맙게 내 작품이 초청되면, 더 의욕을 발휘해 배우를 쓸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한다. 아무튼 영도는 바다 산 도시 마을이 다 있어 영화 찍기에 무척 좋은 곳이다.”

■ 신진이 유입되고 있다

   
영화제를 취재하면서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대답이기는 했다. 그런데 묘한 끌림과 상징성이 뒤이어 따라왔다. 김종한 감독의 답변은 그에게 영화는 삶을 표현하고 창작 의욕을 채우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자 목적이라는 뜻으로 다가왔다. 생생한 에너지가 있는 셈이다. 예술이 수단이자 목적인 사람을 예술가라고 한다. 지역의 영화와 예술을 진흥하려는 정책·시책이 세심하게 이뤄진다면, 더 많은 지역 영화인이 작업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임을 김종한 감독의 대답에서 알 수 있다.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정말 잘해야 한다.

주최 측이 같은 날 마련한 특별대담 ‘영화를 만드는 일’은 탁월한 기획이었다. 동의대 김이석(영화학과) 교수가 진행했다. 무엇보다 부산에서 영화를 열심히 만드는 신진 영화인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어떤 예술 장르가 발전할 것인지 몰락할 것인지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는가? 몇 가지 도구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신진이 유입되느냐 유입되지 않느냐’를 보는 것이다. 신진이 유입되면 그 장르는 살고 신진이 없다면 그 장르는 죽는다. 간단하다.

조영대 촬영감독, 윤지혜 장태구 이남영 감독에게서 받은 인상이 있었는데, BIFF에서 뉴커런츠 부문에 초청된 신인 감독을 인터뷰했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아시아 신인 감독을 발굴하는 BIFF 뉴커런츠상 수상자는 박기용, 지아장커, 송일곤, 박찬욱, 리캉생, 이윤기, 장률, 아딧야 아사랏 등 많은데 지금 거장 반열에 있는 이들 감독이 오래전 BIFF에서 신인으로 뉴커런츠상을 받았을 때만 해도 그저 파릇파릇했다. 특별 대담 출연자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생생했다. 그 토로만 간추려도 부산 영화판 담론이 될 만했다.

■ “영화 시작하긴 좋지만”

조영대 촬영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부산은 영화를 시작하기에는 환경이 좋다. BIFF, 영화의전당 등의 강좌나 교육 프로그램이 많기 때문이다. 일단 시작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정말로 힘들다. 자본·장비·인력은 거의 서울·수도권에 있다. 부산의 영화정책도 부산을 지키며 부산에서 작업하는 영화인에게 오히려 불리한 면이 있다.” 그는 동의대 상경계열에 진학했다가 경남정보대에서 방송을 전공했고 동서대 영화학과를 거쳐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배우는 등 4개 학교를 거쳐 부산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장태구 감독은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고 이남영 윤지혜 감독은 영화의전당 영화 워크숍 수강생 출신이다. 이들은 각자 방식으로 영화에 뛰어들어 주목받는 신예로 떠올랐다. ‘젊은 재능’들이 부산 영화판에 ‘수혈’되고 있음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특별대담 취재는 수확이 있었다. 예술·독립·실험영화는 일종의 ‘예술 공공재’로 보아야 한다. 당장 시장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긴 힘들지만, 그 자체로 중요한 예술 행위이며 미래에 폭발할 새로운 가능성 또한 결국 예술·독립·실험 영화 안에 씨앗으로 숨겨져 있다.

경남 산청 한센인 공동체 성심원을 담은 김지곤 감독의 ‘철선’, 김정근 감독의 ‘버스를 타라’를 보고 이들 감독과 GV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경쟁 부문에 초청된 부산의 신진 감독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었다. 경쟁 부문에 초청된 ‘그림의 커피’(홍혜린 감독)는 뒤로 갈수록 흡인력이 세지는 작품이었다. 홍 감독에게 “주인공의 짝사랑이 결국 이뤄지는 훈훈한 결말이 아니라 굳이 짝사랑이 실패하는 결론을 택해야만 했느냐”고 질문하고 싶었는데, GV 시간이 모자라 묻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 독립영화제라는 플랫폼

올해 부산독립영화제는 짜임새 있고 단단한 기획으로 부산 영화의 흐름을 읽고 부산 영화인의 목소리를 듣게 해준 플랫폼이었다. 부산 영화인들이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소”(안치환 노래 ‘귀뚜라미’ 가사)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조봉권 기획에디터 겸 기획탐사부장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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