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무죄 유죄 선고 징역 재판 형량… 형사 법정에 올라온 사건들은 주로 한 단어나 문장으로 정리된다. 법정 밖 사람들에게 이곳은 유무죄를 가리는 곳에 지나지 않지만, 형량 너머에는 뭉개지고 흐려진 ‘얼굴’이 존재한다. 저자 박주영 판사는 다양한 이유로 법정에 오게 된 얼굴의 서사를 기억하기 위해 쓰고 또 썼다
그는 법정에서 얼굴을 계속 봐왔다.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끌어안다 자신을 해한 청년, 사랑받아야 할 보호자에게 맞아 생명을 잃은 아이, 장기간 성폭행을 당한 여고생, 돈이 없어 교도소에 들어가려는 노인… 이들의 삶은 아예 설명되지 않거나 기사 한 줄로 언급될 뿐이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세상에, 보호자에, 대물림받은 가난에 받은 피해는 평생을 간다. 결국 회복 불가능한 상실을 견디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이들이 끊임없이 돌아 나오는 회전문 같은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저자는 “결국 우리가 먼저 할 일은 묘사할 수 없는 서정을 상상하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묻혀 있는 수많은 서사를 추적하고 발굴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취해야 할 최선의 태도는 보이지 않는 서사를 꼼꼼히 기록하고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
형사사건에는 ‘정의와 불의, 가해와 피해,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 같은 여러 맥락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다. 정신질환을 앓다 엄마를 죽인 피고인은 자신이 누구인지 발 딛고 선 곳이 어디인지도 몰랐고, 비행을 저지르고 법정에 선 아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집 밖을 떠돌 수밖에 없던 처지였다. 같은 죄를 지어도 보호자가 없는 아이는 소년원에 가고 그렇지 않은 아이는 집으로 간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주로 악마나 괴물에 비유되곤 한다. 하지만 법정에 선 모든 악도 처음부터 ‘거악’은 아니었다. 법정에는 거악이 파도처럼 넘실대지만, 법정 밖에는 곳곳에 악이 널려 있다. 우리 내면과 주위에 무수히 포진한 크고 작은 악에 맞서 흑화하지 않으려면 ‘공감 능력과 양심, 죄의식, 염치 같은 것이 필요하다. “악이 진정으로 노리는 건 선이 계속 악을 모른 채 살아가는 거다. 선이 악을 깨닫는 순간 악은 사라진다.”
서로 내가 옳다며 싸우고 불의해서 정의가 사라진 부조리한 사회를 건너기 위해 가져야 할 올바른 입장은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불의한 세상에서 홀로 싸우는 개인을 방치하지 않는 것, 단 한 명도 희생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갈등이 첨예하고 혐오와 증오가 충만한 시대의 이념은 사람이어야만 한다. 이 책의 독자는 알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욕망해야 할 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뿐이라는 걸. 배지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