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가족들과 TV 앞에 모여 ‘특선방화’를 보며 함께 통곡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한국영화를 ‘방화’라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아무래도 미취학 아동이던 동생까지 온 가족이 통곡한 기묘한 순간을 선사한 ‘미워도 다시 한 번’ ‘엄마 없는 하늘 아래’ 같은 이른바 신파 영화들이다.
한국영화가 툭하면 천만 관객이 터질 정도로 발전한 뒤로도 장르 구분 없이 신파 요소는 대부분 기본 값으로 설정됐다. 울려고 내가 왔단 말인가. 스트레스 풀려고 액션영화나 코미디를 골랐는데, 왜 항상 막판엔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강요하나? 늘 못마땅했다. 허나 근성 있는 한국인들은 신파를 포기하지 않았고, 대신 더 디테일해졌고 교묘해졌다. 다행히 덜 억지스러워졌다. 최근 ‘오징어 게임’ (구슬치기 에피소드 편) ‘갯마을 차차차’ 등을 보며 통곡하는 모습이나, 눈물 젖은 티슈 뭉치를 인증하는 외국인들을 보며 의아해졌다. 좀 짠하긴 했지만, 통곡할 정도는 아닌데….
어쩌면 어릴 적부터 수없이 반복된 신파에 우리는 어느 정도 단련돼 있는지도 모른다. 해외 수많은 한국 영화·드라마 팬은 한국 영상 콘텐츠에 대해 유독 가족·친구의 끈끈한 우호적 관계를 표현하는 게 감동적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때마침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도 한국 드라마나 영화 속 가족을 보면 사실 ‘나만 빼고, 남들은 다 저렇게 살갑고, 심하게 정이 넘치도록 사는 걸까’ 의문이 든 적이 있다.
심지어 아카데미상 주요 부문을 휩쓴 ‘기생충’에 등장하는 가족사기단, 반 지하 가족조차 지들끼리는 항상 믿고 의지하며 아낀다. 허나 주변을 관찰해본 결과 역시 픽션은 픽션이라는 게 내 판단이다. 물론 우리나라 가족들이 좀 유별나긴 하다만 어쩌면 저토록 가족 친구 동료 이웃까지 살뜰히 아끼고 배려하는 모습은 우리나라를 넘어 현 인류가 바라는 판타지 아닐까?
신파란 결국 상호간 깊은 애틋함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가뜩이나 사회적 거리를 오래 지키느라 현재 지구인들은 저마다 애틋함이 깊어져 있는지 모른다. 이왕이면 힘들고 서러워도 우리 좀 살갑고 사이 좋게 지내보자. 좀 싸우지들 말고. 어쩌다 보니 지금의 K-신파는 이런 메시지를 인류에게 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