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산 출신, 습작 소설로 등단
- 고교시절 문학의 즐거움 배워
- 사기 당한 가족, 뇌질환 여성…
- 애잔한 사연들에 상상 보태
- 불행 푸념보다 해석이 더 중요
“잘 지내지?” 이 간단한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마음이 담겨 있는지 생각해본다. 아픈 곳은 없는지, 일은 잘 되는지, 힘든 상황은 아닌지…. 그 많은 걱정과 궁금증을 일일이 말하기 번거롭기도 하고 실제로 무슨 일이 생겼을까봐 걱정도 되니까, 잘 지내느냐는 한마디에 담는 것이다. 크게 기쁜 일이 있어야 행복한 삶이 아니라, 나쁜 일이 없어야 행복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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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진해 장복산 기슭에 있는 카페에서 만난 최미래 소설가. 장복산은 최 작가가 걷기 위해 자주 찾는 곳이다. |
가족 중 한 명만 아파도 온 식구가 걱정에 잠기고, 진학과 취업을 준비하는 자녀가 있으면 초긴장 상태이고, 가정경제가 어려워지면 그야말로 힘들어진다. 생각해보면 집집마다 크고 작은 고민거리가 있다. 바람 잘 날 없는 게 우리네 삶이다. 꿋꿋하게 이겨내고 싶지만 마음대로 안될 때가 더 많다. “나쁜 일 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오는 걸까” 하는 억울한 마음도 생긴다.
최미래 작가의 소설집 ‘삶이란, 우주의 룰렛’에는 크고 작은 일 앞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의 일상과 마음이 담겨있다. 경남 진해 장복산 기슭 카페에서 최미래 소설가를 만났다.
■독후감 숙제로 만난 문학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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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란, 우주의 룰렛- 최미래/북인/2021 |
부산 사상터미널에서 출발한 버스는 하단역을 지나서 진해로 가는 동안 여러 번 정차했다. 겨울로 접어든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러다보니 시외버스가 아니라 시내버스를 탄 기분이었다.
진해터미널 못미처 이동에서 내렸다. 최미래 작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만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반가움과 고마움이 와락 일어났다.
최 작가는 걷기를 좋아한다. 장복산은 그가 자주 찾는 곳이다. 등산이 아니라 걷기 위해 간다. 걸으면서 작품 구상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아무 생각 없이 걸어요, 멍 때리는 거죠”라고 답했다. 맑은 공기 마시며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산길 걷기. 생각해보면 그처럼 좋은 시간도 없을 것 같다. 장복산 아래 동네 길은 산을 향해 뻗어있었다. 가파르지 않은 경사여서 걷기도 편했다. 산 중턱에 카페가 두어 곳 있었다. 산길을 걷다가 들어가 차를 마시기에 적당했다. 그의 단골카페에 앉았다. 멀리 진해만이 내려다보였다.
최미래 작가는 1963년 경남 마산 무학산 아래 마을에서 태어났고, 진해에서 살고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주경야독하면서 어렵게 공부했어요.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6년 내내 우등생이었어요. 힘든 학창시절이었지만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해군장교, 대학교수들이 교사로 와주셨거든요.” 그는 옛 추억을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고등학교 때 국토지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해군장교셨는데, 문학을 좋아하는 분이었습니다. 바지 뒷호주머니에 늘 문고판을 꽂고 다니셨죠. 수업 중에 노트 한 면에는 교과 내용을 정리하고, 다른 면에는 자신이 들려주는 말을 쓰라고 하셨죠. 문학작품에서 좋은 구절을 들려주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명언도 말씀해주시고요.” 소녀 최미래는 국어도 아니고 국토지리를 가르치는 해군장교에게서 처음 문학의 즐거움을 배웠다. “방학숙제도 근사하게 내주셨죠. 고전명작 10권을 알려주면서 그 중에서 3권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숙제였습니다. 저로서는 처음으로 문학책을 제대로 읽어보는 경험이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습니다.”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공부를 계속 하고 싶었다. 방송통신대 국문과와 창원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시 공부 모임에 나가면서 시를 쓰는 동안 한국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나도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습작도 몇 편 썼지요. 그 중 한 작품이 ‘경남문학’ 소설 부문 신인상을 받았습니다. 정작 큰일은 그때부터였습니다. 소설가로 등단했다는 기쁨은 있었지만, 준비가 덜 된 상태여서 더럭 겁이 났던 겁니다. 거의 2년간 쓸까 말까, 뭘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또 다른 삶이 시작된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소설쓰기는 저의 두 번째 삶입니다.”
■소설로 두 번째 삶을 산다
두 번째 삶을 안겨준 소설쓰기는 ‘삶이란, 우주의 룰렛’이라는 첫 번째 소설집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소설가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바라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을 일구어내는 길을 걸었던 최미래는 이제 세상 사람의 삶을 향해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인다. 많은 사연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 이야기들 중에서 느닷없이 닥친 불행에 흔들리는 사람들의 아픔을 소설에 녹여냈다. 룰렛은 숫자가 새겨진 회전기구에 구슬을 떨어뜨리는 게임이다. 구슬의 향방을 가늠할 때 중력이니 마찰력이니 하는 원리를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바로 그 숫자칸에서 멈춘 그 구슬처럼 먼 우주에서 삶의 룰렛이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누구나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는거야’라는 말부터 나오지요. 그런데 불행이 닥칠 때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을 만나면서 듣는 많은 이야기들이 그의 마음에서 천천히 삭혀지고, 그 사연 위에 상상이 보태지면 글로 터져 나온다. 소설집에는 10편의 소설이 수록됐다. 투자사기를 당한 아내 때문에 생각도 못한 상황에 처한 남편, 우연한 사고로 병원에 갔다가 뇌질환을 발견한 중년여성, 진학시험 실패로 좌절에 빠진 아들 때문에 점집을 찾아다니는 어머니, 친절하지 못한 의사와 인터넷의 의학정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환자, 불의의 사고로 남편과 딸을 잃고 중환자병실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며 거의 매일 죽음을 마주하는 여성…. 어디선가 들어본 사연들이다. 이런 것이 삶이구나 싶어 애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 한번 견뎌보는 거야’ 하는 생각도 든다.
세상 풍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몸도 마음도 흔들리며 살아간다. 쉽지 않은 여정을 비틀거리면서도 걸어가는 것이 삶이다. 최미래 작가는 두 번째 삶을 살면서 흔들리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안아준다.
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