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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공작소-영남 음악계 파수꾼 ‘작곡가 이상근’ <상> 이상근 생애와 작품 세계

서양악·국악의 융합…그 난제 풀기와 실험무대에 생을 바치다

  •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  |   입력 : 2021-12-15 19:21:49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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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 음악계를 대표하는 작곡가 이상근(1922~2000). 그는 가곡과 합창곡 실내악곡 관현악곡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빼어난 작품을 남긴 작곡가이자 자애로운 교육자였다. 여러 매체에 음악비평 수필 공론을 발표한 문필가이기도 했다. 지난 12일 막을 내린 부산문화재단의 F1963 기획전시 ‘부산展’의 ‘부산 예술인 아카이빙展’의 섹션을 통해 이상근은 다시 우리 곁에 왔다. 부산을 비롯해 경남 마산과 대구 등지를 음악 활동의 무대로 삼은 이상근은 ‘영남 음악계의 파수꾼’을 자처했고 그렇게 살았다. 이를 계기로 그가 우리에게 남긴, 한국 현대음악과 부산의 지역문화에 굵직굵직하게 새겨 넣은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더욱이 내년은 이상근의 탄생 100주년이다.
이상근의 오페라 ‘부산성 사람들’ 공연 모습. 임진왜란 때 부산성 전투를 배경으로 했다.
- 17세 때 첫 습작 뒤 교육자의 길
- 부산사범대 재직 때 만든 곡으로
- 서울시향과 ‘관현악의 밤’ 개최
- 韓 작곡가 최초 단독작품 연주회

- 1959년 美 연수는 삶의 전환점
- 현대음악에 한국정서 입히는데
- 힘 기울여 ‘조우’시리즈 등 완성
- 우리말 특성을 음악으로 승화도

- 86년작 오페라 ‘부산성 사람들’
- 경상도 억양의 레시타티브 눈길
- 상여소리·굿거리도 선율에 담아

■ 영남 음악계의 파수꾼

1950년대 미국 연수 당시의 이상근.
이상근은 1922년 1월 10일 예향인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신문사 지국을 운영하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남다른 음악적 경험을 했다. 1936년 진주공립고등보통학교(5년제, 지금의 진주중·고교)에 입학했고, 17세 때 첫 습작으로 가곡 ‘나의 사랑은’을 지었다. 1943년 일본 관립동경음악학교(현 국립동경예술대학)에서 공부한 뒤 귀국해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1946년 마산여중 음악교사로 일하면서 자작곡으로 구성한 우리말 교재를 만들어 가르쳤다. 진주와 마산을 오가던 이상근은 한국전쟁 탓에 1951년 아예 마산으로 이사를 해 마산여고 음악교사로 재직했다. 이때 마산에서 제1회 작곡발표회를 열었고, 전시작곡가협회에서 활동하며 서울 음악계와 교류했다. 1952년 부산에서 제2회 작곡발표회를 개최했다. 그 해 윤이상(1917~1995)의 추천으로 부산고교 음악교사가 돼 부산으로 일터를 옮겼다. 1955년 신설된 국립부산사범대학(2년제)에 재직했다. 1958년 시립서울교향악단의 연주로 ‘이상근 관현악의 밤’을 열었는데, 이는 한국 작곡가로서는 최초의 단독 관현악 작품 연주회였다. 그때 연주된 ‘교향곡 제2번’은 완결된 4악장 체계를 갖춘 최초의 교향곡으로 평가된다.

이상근은 1959년 미국 테네시주 조지 피바디 사범대학(현 밴더빌트대학교)에서 연수를 받았다. 미국 연수 중이던 1960년 탱글우드 여름음악제에 참가, 아론 코플랜드(Aron Copaland)의 문하에서 작곡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1961년부터 11년간 대구 효성여자대학교에 출강했다. 1963년 부산교육대학교(옛 부산사범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1974년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로 자리를 옮겼다. 1979년 부산항 개항 100주년 기념 작품으로 칸타타 ‘분노의 물결’을 연주했다. 1985년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1986년 오페라 ‘부산성 사람들’을 무대에 올렸다. 한국전쟁 와중에 분실된 칸타타 ‘보병과 더불어’의 악보가 2006년 발견됐고, 이 악보는 2020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재됐다.
1959년 미국 조지 피바디 사범대학 연수 기간 연주회 기념사진. 이상근(오른쪽)은 내쉬빌심포니 윌리스 페이지(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지휘로 ‘교향곡 제2번’을 선보여 호평받았다.
■ 한국의 정서를 입히다

“서양음악은 평균율에 근거하고 국악은 청각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성격이 다른 두 음악을 융합시키는 것은 근본적인 방법이 발견되지 않는 한 난제일 수밖에 없지요.”

그럼에도 이상근은 해냈다. ‘난제’를 거뜬하게 풀어냈다. 그를 ‘한국의 차이코프스키’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적절한 별칭이 아니다. 그는 평생 현대음악의 뼈대에다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를 입히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미국 연수는 이상근에 대담한 실험정신을 불어넣은 듯하다. 1970년대 이후 그의 작품에는 한국적인 것에 대한 애착이 잔뜩 묻어있다. 양악기와 국악기를 직접적으로 결합한 창작곡 ‘조우(encounter)’ 시리즈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오페라 ‘부산성 사람들’(1986), 연가곡 ‘아가(雅歌)Ⅱ’(1988) 역시 ‘한국적’인 작품들이다. 앞서 이상근이 1975년 제7회 서울음악제 위촉에 따라 고려가사로 지은 혼성합창곡 ‘청산별곡’에는 국악기인 징, 장고, 박 등이 등장한다. 일찍이 1940년 진주공립고등보통학교 졸업 전에 지은 가곡 ‘해곡(海曲)’은 이상근에 “한국 사람이 아니면 못 쓰는 가곡”이란 음악관을 형성하게 해 준 작품이다.

이상근의 가곡 가운데 우리말이 지닌 음악적 특성을 작품으로 승화해낸 게 더러 있다. 최근 ‘부산 예술인 아카이빙展’에서 이상근 섹션을 맡은 지역인문콘텐츠연구소는 이와 관련해 “이상근 가곡의 특징은 피아노 반주가 시(詩)의 행간을 메우거나 이미지의 단락을 이어주는 등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시 작품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시어와 음악의 연결점을 찾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는 이상근의 작품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시어가 지닌 울림의 음성학적 측면을 지나칠 수 없는 까닭이다. 특히 이상근은 유치환 조항 김춘수 최계락 김태홍 등 지역 문인들의 시 작품을 가사로 삼았는데, 이는 그의 지역 연고성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 오페라 ‘부산성 사람들’

오페라 ‘부산성 사람들’은 임진왜란 당시 부산성 싸움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대본은 박두석이, 곡은 이상근이 썼다. 이 작품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제7회 부산시민의 날 경축 행사의 하나로 초연됐다. 1992년에는 부산포 승전 400주년 기념공연 작품으로 개작돼 무대에 올랐다. 그런 까닭에 ‘부산성 사람들’은 임란 당시 부산성 전투라는 역사적 사실과 ‘부산’이란 지역성을 고스란히 반영한 ‘시민 오페라’로 평가된다. 이 작품에서는 합창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합창이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아리아와 중창이 등장하는데, 이는 서양 오페라의 기교적 아리아와는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부산성 사람들’에서 눈에 띄는 장면은 한국적 어법과 ‘부산 또는 경상도스러움’이다. 합창 부분과 레시타티브(서창<敍唱>·오페라에서 대사를 말하듯 노래하는 형식)의 선율은 대부분 전통음악과 연결돼 있다. 장례 장면에서는 경북 예천의 상여소리와 비슷한 선율이 진행된다. 상여를 메고 천천히 걷는 걸음과 잘 어울리는 늦은 굿거리풍의 리듬 형태를 보인다. 결혼식 장면의 음악은 시나위 등의 화음을 구사했고, 덧배기춤의 음악에는 장구의 채편을 치는 듯한 효과를 내기도 한다. 레시타티브의 대부분이 부산 또는 경상도 지역의 억양을 그대로 쓰도록 한 것 역시 두드러진다. 한국적이면서도 지역적인 특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서양 오페라의 양식 속에 한국적인 요소를 가득 채웠다.

글=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사진=지역인문콘텐츠연구소 제공

공동기획: 국제신문·(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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