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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정익진의 무비 셰프 <27> '양조위(梁朝偉·Tony Leung)'

양조위, 강렬하고 감미로운 눈빛, 홍콩 최고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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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배우 양조위.


중국계(중화권) 남자 배우를 떠올려본다. 중국계라고 한 이유는, 같은 중국인이라도 국적이 조금씩 다르다. 본토, 홍콩, 대만, 싱가포르 또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활동하는 중국계 배우도 있다.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중국계 남자배우들, 유덕화 주윤발 장국영 금성무 견자단, 이들의 출생지는 잘 모르겠으나 국적은 홍콩이다. 세계적인 여배우 공리, 남자배우 갈우, 강문 등등,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예모, 이들의 국적은 중국이다.



이들 중국계 남자배우의 여러 얼굴이 스쳐 지나가지만, 유독 양조위(1962년 생)의 눈망울이 자꾸 떠오른다. 눈빛이 강렬하다기보다는 순진한 소년 같기도 하고 카리스마가 있어 보이기도 하고 좀 우수에 깃든 아무튼 선이 굵은 눈빛이다. 별로 키가 커 보이지도 않으면서도 남성다운 면모를 풍긴다. 청바지 입고 점퍼 걸친 캐주얼 복장보다는 정장에다 빤잘빤질한 뽀마드(헤어젤의 옛말)를 바르고 넘긴 리젠트 식 헤어스타일이 훨씬 잘 어울린다. ‘무비셰프’에서 처음 중국계 배우에 관해 쓰려 하니 이들의 출생이나 성장 과정이 매우 궁금해 이력을 먼저 살폈다.



양조위, 그가 어린 시절부터 불우하게 자랐고 가난했다는 건 전혀 예상치 못했다. 양조위의 아버지는 도박 중독자였고, 양조위가 8살 때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 그와 여동생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지독한 가난으로 중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하고 중퇴한 뒤 삼촌 집에서 심부름하는 처지였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설화적인 가난(매우 가난함)’을 겪은 그는, 어릴 적부터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양조위를 인터뷰한 기자들은 하나같이 그를 수줍음 많고 왜소한 체격의 사내로 기억한다.



양조위와 장만옥이 주연한 영화 ‘화영연화’의 영어 포스터.


극도로 가난했지만, 인성과 매너가 좋기로 유명하다. 중학교 중퇴였음에도 악의 길로 빠져들거나 어머니 속을 썩이기는커녕 범생이의 전형이었고 효자였다고 한다. 비록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홀어머니가 교육열이 엄청 높아 최상급 교육을 시키기 위해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학교로 보냈다. 이 덕분에 영어가 유창해 국제 영화제에서 인터뷰할 때 양조위가 영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배우 데뷔는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다. 배우 꿈은 꾸지도 못하고 살던 그는 우연한 기회로 배우 지망생이자 뒷날 절친한 친구가 되는 누군가를 만난다. 그 친구가 배우 오디션을 봐야 하는데 도와달라고 부탁해 동행했다가 오히려 그 친구는 떨어지고 양조위가 붙었다. 친구도 1년 뒤인 1982년 붙었다. 그 친구 이름이 주성치. 여담으로 양조위와 똑같이 가난 탓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막일을 하다 친구 권유로 빼우 오디션을 보아 합격해 대스타가 된 선배 배우가 있었다. 그가 바로 주윤발이다.



영화 ‘화양연화’에서 유명한, 두 배우가 밥 먹는 장면이다.


1983년 메이옌팡(매염방)과 함께한 ‘청춘차관’으로 영화계에 입문해 ‘중경삼림’과 ‘해피 투게더’ 등을 통해 한국 영화 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외모상으로 다른 홍콩 배우들과 사뭇 달랐다. 홍콩누아르의 아이콘 주윤발 같은 당당하고 남성적인 매력도, 장국영 같은 꽃미남도, 유덕화 같은 반항아 이미지도 그에겐 없었다. 그러나 그에겐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은 권태롭고 쓸쓸한 눈빛이 있었다.



양조위와 장국영 많이 비교한다. 장국영은 앞문으로 들어와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사람들 눈길을 즐기는 성향이라면, 양조위는 뒷문으로 들어와 사람들 눈길을 부담스러워하며 다소 부끄럼을 타는 성향이라 한다. 장국영이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라면 양조위는 서서히 신비한 아우라가 드러나는 오로라라고나 할까.



‘화양연화’(2000년) 속 양조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양조위가 ‘화양연화’로 2000년 제53회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홍콩영화 역사상 칸 남우주연상은 처음이다. 이후, 세계적인 배우로 이름을 알렸으며 다양한 장르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세심한 내면 연기를 선보이면서 연기파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왕가위의 2000년 영화로 당대 톱스타 양조위와 장만옥을 캐스팅해 중년 남녀의 완숙한 사랑을 담아냈다. 진중한 줄거리에 녹아든 왕가위 특유의 미장센이 빛을 발한다. 2000년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돼 감독과 배우들이 방한했다. 제목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꽃과 같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뜻한다. 1930~1940년대 상하이에서 큰 인기를 끈 가수 주선(周璇)의 동명 곡에서 제목을 차용했고, 영화 삽입곡으로도 사용됐다. 본래 노래 제목에는 花樣과 年華 사이에 ‘的’가 들어있다. 즉 ‘花樣的年華’다.



화양연화의 의미를 몰랐어도 화양연화라고 발음했을 때, 입에서 꽃향기가 퍼져나오는 것을 느낀다. ‘화양연’까지만 하면 이상해질 텐데 전체를 발음하면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꽃이 되는 현상을 보는 듯하다. 장만옥이 매우 스타일리시한 중국 고유 의상 치파오를 입고 우동 또는 국수로 채운 용기를 오른손에 들고 골목길을 걸을 그때, 향수 광고에 나올 법한 젠틀 양조위와 스쳐 지나며 눈빛을 교환하는 그 모습이 아름답게 떠오른다.

배경음악이 소름 돋는다. 깊은 상처를 위무하는 듯 애절한 바이올린 소리 그리고 단조로운 피아노 반주음이 그 애절함을 부추긴다. 영화에서 이런 배경 음악들이 어딘가에서 잠복해 있다가 어떤 절정에 이르러 그 절정의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다 꿀 떨어지는 목소리의 황제 냇킹콜의 노래 ‘키사쓰, 키사쓰(Quizas, Quizas, Quizas/ Perhaps, Perhaps, Perhaps)’를 덮어 씌우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식탁은 이 세상에 없을 듯하다.



감독 왕가위의 음악적 감각이 매우 탁월함을 증명하는 순간들이다. 왕가위 특유의 고혹적이고 감각적인 연출력이 돋보인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와 매혹적인 색감으로 완성된 화면 구성, 애틋한 표정과 우아한 몸동작 선이 강조된 양조위와 장만옥의 연기 앙상블은 ‘화양연화’를 아시아를 넘어 20세기 세계영화사를 빛낸 영화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제53회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굵직굵직한 상을 탔고 세계 평단의 극찬을 받은 필견의 명작이다.



스케줄이 늘어지는 것과 상관없이 맘에 들 때까지 재촬영을 끊임없이 해대는 왕가위답게 꽤 오래 촬영하고 편집했으며, 칸영화제에 출품하고도 상영 직전까지 촬영하고 편집했다. 또한 영어로 된 제목 짓기에 상당히 난항을 겪었다고 한다. 당시 영어 제목 후보로는 Summer in Beijing(?), A Story of Food(...), Secrets가 있었다고 한다. 영화 작업 도중 브라이언 페리(영국 가수) 신곡을 듣던 왕감독이 I‘m In the Mood for Love 구절에 꽃혀 ‘the Mood for Love’로 결정했다.



아마도 영화 ‘색, 계- Lust, Caution, 色,戒’에서 영화배우로서 양조위의 존재감을 느낀 듯 하다. 2007년 개봉한 이안 감독의 스파이-애정 영화. 양조위(이모청 역)와 탕웨이(왕자즈 역)가 주연을 맡았으며, 특히 탕웨이의 출세작이다. 중국 영화같이 보이지만 미국과 홍콩 합작영화다. 원작은 중국계 미국 작가 장아이링(張愛玲)이 1979년 실화를 바탕으로 쓴 동명 단편소설이다. ‘색계’는 홍콩에서 대학을 다니며 연극부 활동을 하다가 항일단체에 가담한 여성의 삶을 다룬 영화로 친일파 관료 이모청(양조위 분)을 유혹하기 위해 막부인으로 위장하고 그를 유혹하려다, 원수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속 인물처럼 그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려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여인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양조위(오른쪽)과 탕웨이가 주연을 맡아 충격적인 인상을 세계에 심은 영화 ‘색계’ 한 장면.


양조위도 양조위지만 탕웨이의 강렬한 모습에 눈을 뗄 수 없다. 위스키에 흠뻑 젖은 붉은 장미와 같이 색감이 풍부하고 강렬한 향기를 풍기는 그런 여성의 이미지다. 탕웨이에 대해서는 ‘무비 셰프’를 통해 언급할 듯하다. 양조위는 이 영화에서 그만의 서늘하고 위험한 눈빛, 다른 영화와는 또 다른 눈빛의 매력으로 관객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국 영화배우 마이클 케인이 왜 “배우는 눈을 파는 직업이다”고 말했는지 실감하게 된다. 탕웨이와 양조위는 영화 시작부터 결말까지 주고받는 눈빛만으로도 긴장감이 느껴지는 케미를 보여준다.



영화 제목 색, 계 色,戒 뜻이 뭘까. 욕망을 뜻하는 ‘색(色)’과 신중을 뜻하는 ‘계(戒), ’표면적으로는 사랑과 욕정이지만 그것을 넘어 내면적으로는 예술과 삶을 의미한다.

‘색’은 그것을 이용하려 드는 자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을 갖고자 하는 자에게는 강력한 위험이다. 분명한 것은 색을 통하지 않고서는 계로 들어 설 수 없다는 조건이 있다. 계는 戒律 할 때 그 계다. 지켜야 할 것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영화에서 색을 이용하려는 자와 가지려는 자 둘 다 본질인 계를 가지고 있기에 이 둘이 합일하지 않는 한 충돌을 피할 수 없다. 이모정과 막부인은 ‘색’을 중간에 놓고 매개로 하여 관계를 맺지만 서로 지켜야 할 계(본질: 각자 역할)가 달라 충돌하여 갈등할 수밖에 없다. 불행이 결말임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 ‘색계’의 강렬하고 밀도 높은 장면.


양조위가 ‘경찰 663’ 배역으로 출연한 ‘중경삼림’을 되돌려 본다. ‘중경삼림’(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 1994)은 직역하면 ‘중경의 울창한 숲’ 정도다. 제목의 중경은 작품 주요 배경이 되는 유명 건물 충킹맨션(重慶大厦)에서 따온 것이다. 충킹맨션은 홍콩 까오룽 중심가에 있는 오래된 상가로 예전에는 마약 유통이나 절도, 강도 같은 범죄가 빈번하기로 유명했다. 삼림(森林)은 충킹맨션과 그 주변 빌딩숲을 의미한다. 감독에 따르면 충킹맨션은 아주 여러 문화가 섞여 있고, 다양한 국적 사람이 얽힌 미시적 세계라서 도시의 메타포로 적절했다고 한다. 역시 왕가위 감독의 촬영지 선택이 탁월했다.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g’과 더불어 식당 Midnight Express 점원 페이의 나른하고 발랄한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싸구려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걸쳐 입고 꿈꾸는듯한 표정으로 말하고 행동한다. 영화배우 이름도 왕페이, 페이는 왕페이다. 왕페이는 페이. 리듬감이 있어 자꾸 반복하고 싶은 이름이다. 이 노래를 중고등학교 언저리에서 들었을 듯하고 영화 장면과 어우러져 이렇게 멋진 사운드로 다가올 줄 몰랐다. 왕가위 감독의 음악 감각에 다시 감탄한다. 많이 들어도 질리지 않는 노래 중 하나이고 들을 때마다 가슴이 설레인다.



 All the leaves are brown And the sky is grey

 (나뭇잎은 갈색으로 변했고 하늘은 회색이라네.)

 I’ve been for a walk on a winter‘s day (나는 그 겨울날 산책을 나갔어.)

 I’d be safe and warm if I was in L.A (L.A.였다면 안전하고 따뜻했을 텐데)

 California dreamin‘ On such a winter’s day (추운 겨울날 캘리포니아를 꿈꾸네.)

 Stopped into a church (멈추어 서서 한 교회로 들어갔었지.)

 I passed a long the way (통로를 따라 나아가서)

 Well, I got down on my knees (무릎을 꿇었어.)

 And I pretend to pray (그리고 기도하는 척 했었는데)

 You know, the preacher likes the cold (목사님께서는 추운 것을 좋아하였다고)

 He knows I‘m gonna stay (그분은 제가 머물 것임을 알고 계시겠지.)

 California dreamin’ On such a winter‘s day (추운 겨울날에 캘리포니아를 꿈꿀꺼야.)

 all the leaves are brown and the sky is gray

 (나뭇잎은 갈색으로 변하고 하늘은 잿빛이네.)

 i’ve been for a walk on a winter‘s day (나는 그 겨울날 산책을 나갔었지.)

 If I didn’t tell her I could leave today

 (그녀에게 얘기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이라도 떠날 수 있을 텐데)

 California dreamin‘ On such a winter’s day (추운 겨울날에는 캘리포니아를 꿈꿔보겠어.)

 On such a winter‘s day (추운 겨울날에)

 On such a winter’s day (추운 겨울날에)



개봉 당시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흐른 뒤까지 수많은 청춘의 가슴에 불도장을 찍은 영화 ‘중경삼림’ 한 장면. 왼쪽 경찰복을 입은 양조위.


양조위가 경찰복을 입고 등장하는 첫 장면이 영롱하게 떠오른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우나에서 목욕하고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를 곱게 빗고 경찰모를 쓰고 나온 듯한 등장 모습이다. 그리고 모자를 벗고 거울을 쳐다보며 자기 손으로 옆머리를 쓸어 넘긴다. 어떤 부탁도 다 들어줄 것 같은 착하고 잘생긴 경찰 663(영화 속 이름), 그러다가 나쁜 놈의 총이나 칼에 맞아 죽게 되는 그런 경찰 663.시인



추신:

양조위를 표현한 말 중에 멋진 표현이 있어 소개한다.



”양조위는 꽃 한 송이를 부탁하면 봄을 가져다주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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