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룡 최민수 실베스터 스탤론… 근육과 거친 눈빛의 사내들에게 영혼을 지배당하던 어린 시절엔 알콩달콩하게 남들 연애하는 드라마를 챙겨보는 건 남자가 할 짓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건 사실 나를 욕하기보다는 날 그렇게 만든 사회를 욕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어엿한 아재가 된 지금은 드라마 보면서 펑펑 울어보지도 못한 사내를 얻다 쓸까 생각하며 모니터 앞에서 가끔 눈물을 흘린다. 물론 피와 땀이 튀기는 육탄전과 총알이 비처럼 쏟아지는 총격전이 반복되는 액션도 정신건강을 위해 틈틈이 챙겨보지만, 역시 싸움보다는 사랑이 더 유익하고 무해하다. 그냥 말로 하지, 다 큰 어른들이 왜 치고받고 싸우는 것인가. 어차피 주인공이 이길 게 뻔하다. 그리고 현실에서 저렇게 멋지게 액션을 펼치면 연행된다.
최근엔 ‘연모’를 끝내고 최우식과 김다미 주연의 ‘그해 우리는’을 챙겨보고 있고, 시청률 1%의 걸작 ‘멜로가 체질’을 틈틈이 복습 중이다. 인간관계는 어렵다. 주변 어르신들이 별일 아닌 일에 역정을 내고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는데, 그게 나이 먹는다고 쉬워지는 건 아닌 것 같다. 그중 연애는 그야말로 인간관계의 모든 고도의 기술을 펼치고 인내심과 이해심을 몽땅 끌어모아 노력해도 항상 실패할 확률이 존재하는, 인간관계 중에서도 난이도 최상급이다. 코로나 시국이 하염없이 연장되는 지금, 어쩌면 많은 이들이 크든 작든 사회성이 결여되고 있는 건 아닐까 심히 우려된다. 특히 당장 열심히 연애해야 할 청춘들 또한 연애에 돌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결코 포기해선 안 된다. 사회적 거리를 지키는 와중에도 예·복습을 겸한 상상훈련이 필요하다. 연애와 사랑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고 수정을 거듭한 검증된 전문가들이 모여 만들어 낸 작품들이야말로 시들하게 말라가는 연애 감성에 양분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이게 또 보다 보면 지구를 지키는 슈퍼 히어로들의 활약은 오히려 시시해질 만큼 쫄깃하게 재미지다. 어쩌면 지구를 지키는 건 가공할 초능력이 아니라 사랑일 확률이 높다. 나 역시 건강상의 이유로 연애를 끊은 지 오래지만, 100세 시대가 왔다고 하니 혹시 몰라 상상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다들 건투를 빈다. 패배한 개들의 말로는 오직 승리뿐이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