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시청자가 주목하는 K-드라마를 미국에서 현지화시켜 리메이크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굿 닥터’가 미국에서 리메이크돼 성공했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도 미드 시리즈로 만들어져 넷플릭스에서 방영됐다. 아카데미를 휩쓴 영화 ‘기생충’까지 미드로 제작 중이다. 미국의 드라마 제작사들은 한국 원작 드라마를 발굴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려 22년간 이어져 1088회로 종영된 한국의 전설적인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가 미국에서 리메이크가 된다면? 상상은 돈 들지 않으니까 맘대로 가상캐스팅을 해보겠다. 우선 최불암이 맡은 김 회장은 인자함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갖춘 로버트 드니로가 좋겠다. 전원일기를 통해 국민 엄마의 이미지를 갖게 된 김혜자는 역시 미국에서 현모양처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 샤론 스톤이 적절할 듯하다. 김 회장의 장남, 김용건은 조지 클루니. 차남 유인촌으로는 브래드 피트. 백인 배우들로만 캐스팅하면 논란이 생길 수 있으니 김수미가 분한 일용엄니는 우피 골드버그, 일용이는 윌 스미스가 좋겠다. 캐스팅 비용만 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역대급이지만, 내가 만들 게 아니니까. 복길이는 엠마 왓슨, 순박하지만 어딘지 눈빛에서 퇴폐미가 느껴지는 박윤배가 연기한 응삼이는 스티브 부세미가 딱이다.
알고 보니 응삼이가 의문의 연쇄 살인마였다는 식으로 스릴러를 가미할 수도 있겠다. 현지화를 고민하다 보면 김 회장 댁은 텍사스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소를 키우는 농장을 운영할 수도 있다. 자유로운 총기 소지를 주장하는 강력한 공화당 지지자이고, 소박한 마을잔치에선 바비큐 파티가 벌어지겠다. 마을 청년들은 버번위스키를 마시며 로데오를 즐기는 거친 사내들일 것이다. 평화로운 색소폰 선율로 시작되는 메인 테마는 텍사스 풍광에 어울리는 컨츄리 블루스풍으로 편곡될 것이다. 소소한 말싸움이 멱살잡이로 번지는 갈등은 서로의 가슴에 사냥용 샷 건을 겨누는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을 확률이 높다. 상상할수록 우울해지는 것 같다. 역시 안 되겠다. 그냥 전원일기는 우리의 전원일기로 마음속에 간직하는 편이 좋겠다. 미국의 제작자들아. 전원일기는 웬만해선 건드리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