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칸·자그레브 이어 베를린 진출
- ‘존재의 집’ 단편 경쟁 부문 초청
- 연필 드로잉 기법 8분길이 영화
- 무너지고 부서져 사라지는 ‘집’
- 인간의 삶·내면 은유적으로 표현
# 5년째 영화·영상도시 기반 다져
- 영화아카데미로 연출세계 입문
- ‘먼지아이’‘연애놀이’ 세계 주목
- 남편 김기현 감독과 ‘매치컷’ 설립
- 제작·배급 등 다양한 콘텐츠 다뤄
부산 출신 감독과 지역 제작사가 만든 작품이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황금곰상’을 노린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정유미(41)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 영화 ‘존재의 집’이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Internationale Filmfestspiele Berlin) 단편 경쟁부문(Berlinale Shorts)에 공식 초청됐다고 23일 밝혔다. 다음 달 10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이 영화제의 단편 경쟁 부문에 진출한 21개 작품 중 한국 작품은 ‘존재의 집’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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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 초청된 정유미 감독의 ‘존재의 집’ 스틸컷. 매치컷 제공 |
부산에서 태어나 중앙여고를 졸업한 정 감독은 국민대 회화과를 나와 2004년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21기로 애니메이션 연출 세계에 들어섰다. 서울에서 활동하던 정 감독은 KAFA 동기인 김기현(45) 감독과 2017년 결혼한 뒤 2018년 고향 부산으로 내려와 제작사 매치컷을 설립했다. 남편 김 감독도 부산 출신으로 대연고를 나와 연세대 수학과를 졸업한 뒤 KAFA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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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미 감독 |
정 감독은 ‘수학시험’(2010), ‘연애놀이’(2013)에 이어 올해로 3번째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특히 이번엔 정 감독이 부산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뒤 내놓은 작품이 세계 무대에 인정받은 셈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그는 “서울에서 애니메이션 작업에 지친 시점에 부산에 내려와 오랜만에 첫 작품을 내놓았는데, 좋은 성과를 얻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존재의 집’은 정 감독 특유의 세밀한 연필 드로잉 기법을 사용한 8분 길이의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그는 “형식은 집이 사라져간 뒤 사람이 남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간단한 이야기지만, 집은 보는 관객에 따라 의미가 다양할 수 있는 상징적인 메타포다. 살면서 집중했던 것이 사라지는 경험을 할 때 두렵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런 상황이 생기고 난 이후에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걸 표현했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2009년 ‘먼지아이’가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상영된 이후 세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먼지아이’는 2009년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는데, 당시 심사위원 박찬욱 감독은 ‘박쥐’ DVD 특별부록에 추천사와 함께 ‘먼지아이’를 수록하기도 했다. 박 감독은 추천사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중요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정 감독은 2014년 출간한 그래픽 노블 ‘먼지아이’로 한국 그림 작가로는 최초로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볼로냐 라가치 대상(뉴 호라이즌 부문)을 수상했고, 2014년 ‘연애놀이’로 세계 4대 애니메이션 영화제인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도 한국인 최초로 대상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최근에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의 공식 회원으로 초청받기도 했다.
정유미·김기현 감독이 만든 매치컷은 ‘존재의 집’을 제작했을 뿐 아니라 2020년 ‘파도를 걷는 소년’, 지난해 ‘식물카페, 온정’ 등을 제작·배급했고 올해는 김 감독의 장편영화를 준비 중이다. 애니메이션 제작, 영화 제작·배급, 출판 등 다양한 콘텐츠를 다룬다.
햇수로 5년째 고향에 뿌리를 내린 두 감독에게 부산이 진정한 영화·영상도시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정 감독은 “부산시의 지원사업이 좀 더 다양해져서 저처럼 상업적이지 않은 실험적인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는 사람도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은 있다”고 했다. 김 감독은 “시설이나 인프라는 잘 구축된 것 같은데 부산에서 영화를 찍으려던 사람 대부분이 서울로 가버려 인력이 부족하다. KAFA도 부산에 왔으니 이와 연계돼 부산에서 영화 찍는 영화인이 많아지도록 제작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