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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인간극장] <7> 사기 - 김영길 사기장

1년에 단 한 번 지피는 가마 … 불길은 23시간 백자를 품는다

  •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 이우정 PD
  •  |   입력 : 2022-03-08 19:17:58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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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자기 구울 흙 준비에만 반년
- 10월 말~11월 초 습도 낮은 가을
- 1300도 가마서 밤새 불 다잡아
- 박물관 의뢰 등 옛 작품만 다뤄
- 15세기 백자염주 7년 걸쳐 복원

- 4대째 이어온 도공 집안의 적자
- 어머님 뜻에 日 컴퓨터대학 진학
- 끓는 열정에 다시 도자기의 길로

- “힘든 과정… 제자 3명 중 2명 낙오
- 현대기법 활용 화려한 작품 아닌
- 전통기법 보존하는 것이 내 소명”

부산요(釜山窯). ‘부산의 가마’에선 추수가 끝난 매년 가을이면 2000여 점의 도자기를 구울 불이 타오른다. 이 가마는 전통기법으로 만들어진 토가마, 일명 ‘망댕이 가마’다. 가마는 23시간에 걸쳐 1300도의 불길로 뜨겁게 도자기를 품는다. 한껏 달아오른 가마를 식히는 데 걸리는 시간은 꼬박 사흘. 2000여 점 가운데 200점 안팎의 작품만 옳게 구워져 도자기가 된다.

발물레를 이용해 자기를 빚고 있는 김영길 사기장. 이우정 PD
부산 기장군 장안리 장안사 입구에는 왕실에 진상하는 고족배(다리가 높은 백자)를 제작하던 상장안 도요(陶窯·도자기 가마)가 있었다. 500~600년 전까지 실제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사실은 2009년 기장군과 부산시립박물관의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된다. 이전까지는 상장안 도요에 대한 제대로 된 학술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다는 의미다. 그저 기장 토박이들 사이에 “과거 이곳에 도요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뿐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전까지 상장안 도요는 벼 등 곡물을 담는 이른바 ‘하품 자기’를 생산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2009년 조사에서 고족배와 함께 조선조 때 중앙관청이 상장안 도요를 직접 관리했던 듯한 흔적들이 확인됐다. 이는 기장 일대에 왕실 진상 자기를 빚을 만한 흙이 풍부했고, 이를 이용해 백자를 구워내는 도공들이 상장안 도요에서 활동했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상장안 도요의 위상이 격상되는 순간이었다.

기장에는 상장안 도요 외에도 여러 가마가 존재했다. 백자는 물론 그 이전 조선 초기의 도자기인 분청사기를 제작하던 가마터만 해도 수십 기가 확인된다. 부산시 무형문화재 13호 김영길(57) 사기장은 부산요의 터줏대감이자, 오랜 기간 기장 일대 가마터를 훑어 흙의 성질을 연구한 장본인이다. 선대로부터 4대째를 잇는 도공 집안의 적자이기도 한 김 사기장을 부산요에서 만나 도자기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김영길 사기장이 제작한 백자 등 자기가 진열돼 있다. 이우정 PD
“흙은 도자기 만드는 일의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재료입니다. 기장 일대엔 보물과도 같은 흙이 풍부하죠. 이 흙을 알아보고 성질을 파악하는 것이 도자기 만드는 일의 시작입니다.” 그가 주로 굽는 것은 전통백자. 기장에서 맞춤한 흙을 찾고 이를 ‘아카이빙’하는 데 3년을 투자했다. “도공들은 자기 연구를 통해 쓸모 있는 흙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할 뿐 정보를 공유하지는 않아요. 나는 기장에서 나는 모든 흙을 모으고, 이를 재료 삼아 시편을 구우며 데이터를 모았습니다. 180여 종의 흙도 분류했지요. 도자기의 원토가 될 수 있는 것은 군사용 GPS에 좌표를 찍어 원하는 이 누구라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부산의 사기장으로서, 도자기 만드는 일에 관심이 있는 예비 사기장들을 도울 의무가 있거든요.”

도자기로 쓸 만한 흙 채취는 매년 봄 시작된다. 아카이빙을 해뒀다고 흙을 곧장 가져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흙에서 잔뿌리 등 불순물을 골라내고, 가열 시험으로 성질을 재차 확인한다. 선별한 흙을 오랜 시간 밟아 공기까지 빼줘야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재료로 탈바꿈한다. 6월 초까지 진행되는 이 작업을 ‘흙을 만든다’고 표현한다. 흙 만들기가 끝나면 본격적인 제작이 이어진다. 김 사기장은 “도자기는 7~9월에 빚는다. 가마에 넣기 전 제작되는 것은 2000점가량”이라고 설명했다.

홍송 장작만이 가마를 1300도에 달하는 고온으로 제때 달굴 수 있다고 한다. 장작을 준비하는 일도 수월하지 않다. 불을 때기 전 김 사기장과 제자들은 홍송의 먼지를 깨끗하게 털어내고 껍질을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깎아낸다. 김 사기장은 “티끌이 불에 닿으면 ‘탁’하고 불길이 튀며 가마 안의 작품을 손상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마에는 1년에 한 번만 불을 올린다. 그 시기는 10월 말에서 11월 초. 선대 사기장이자 부친인 도봉(道峰) 김윤태 선생과 김 사기장이 직접 만든 전통 흙가마의 특성 때문이다. “여름에는 장작에도, 가마 안팎에도 습도가 매우 높죠. 전통가마는 말 그대로 다른 화력을 빌리지 않고 오직 장작을 이용해 온도를 올립니다. 습도가 없고 장작이 바짝 마르며, 태풍도 없는 계절이어야 짧은 시간 안에 원하는 온도까지 올려 기물을 구울 수 있어요.”

불을 올릴 때가 되면 김 사기장의 신경은 극도로 곤두선다. 23시간 동안 눈도 붙이지 않고 가마 곁을 지키며 불길을 어루만진다. “흙을 만드는 데서부터 기물을 빚고 장작을 준비하는 데까지 허투루 할 수 있는 과정은 없어요. 결국 가마의 심판을 받고 나서야 1년 노고의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전통가마를 직접 만들고 관리할 수 있는 기법, 그리고 불씨가 튀지 않도록 장작과 불길을 다잡아 전통 방식으로 자기를 구워낼 수 있는 기술이야말로 사기장으로서 내가 지닌 기예의 핵심입니다.”

김 사기장은 사적인 주문은 받지 않는다. 주로 박물관 등 기관으로부터 발굴된 옛 도기와 그 제작법 복원을 의뢰받아 작업한다. 그의 대표적인 역작은 2019년 재현에 성공한 15세기 초 백자염주. “600년 전 자기를 복원하는 데 무려 7년이 걸렸습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선조들의 섬세한 기술에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천생도공으로 보이건만 그는 1990년 일본 소재 컴퓨터 전문대학에 입학하는 ‘외도’를 감행했다. 고된 가업 잇기를 원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바람도 일부 작용했다. 김 사기장은 “도피였다. 재학 중 노트북 한 번 열어보지 않았고 허송세월했다”고 한다. 그의 도피는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그가 찾아든 곳은 아리타 요업(窯業)대학. 아리타는 임진왜란 때 일본에 잡혀간 도공 이삼평 선생을 ‘아리타자기’의 시초로 지금껏 추앙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현대 도자기를 공부했다. 도봉 선생의 장남으로 어릴 적부터 물레를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았다는 김 사기장은 “어머니는 아버지를 도우며 도공 일의 고됨을 몸소 겪은 분이다. 그런 어머니 권유에 일본으로 갔지만, 결국 그곳에서 내게 흐르는 선대 어른들의 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고 했다.

이름 높은 장인인 김 사기장에게도 제자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는 “3명이 들어오면 2명은 도망친다. 흙 만들기에서부터 불 올리기까지 1년, 이 과정을 여러 차례 거치며 기본을 잡아 나가야 하는데 요즘 젊은이들에겐 가혹하게 긴 시간인 모양”이라고 한숨 쉬었다. 곁에 두고 가르치는 1명을 포함해 현재까지 그가 제자라고 칭하는 이들은 6명. 김 사기장은 “제자로 5년을 배워 심사를 통과하면 ‘이수자’가 된다. 기관으로부터 일을 받아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며 “이수자인 제자 5명은 독립해 공방을 차리는 등 제 갈 길을 가고 있지만, 일이 생기면 언제든 달려와 돕는다”고 말했다.

전통기법만을 고집해 자기를 빚는 동안 유혹을 느낀 적은 없을까. “현대의 기법을 조금만 활용하면 훨씬 더 화려하고 눈길 끄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다만 과거의 기술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이 과정에서 발견한 기법을 보존하고 지키는 일의 가치가 더 중요한 일이자 내 소명이라 믿습니다.”

※ 제작지원 B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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