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26> 권애숙 시인의 동시집 ‘산타와 도둑’

동시로 확장한 시인의 울림… “내 안의 어린 아이가 만물에 말 걸죠”

  •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3-13 19:30:57
  •  |   본지 1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부끄럼 많았던 초등학생 시절
- 이야기 시작하면 친구 몰려들어
- 빨랫줄에 걸린 버선 한짝 보며
- 다른 한짝 생각에 눈물 흘리기도

- 풀꽃도, 돌멩이도 귀 기울이면
- 절절하게 자신의 속내 털어놔
- 그말 받아적는게 작가의 사랑법

봄이 성큼 다가왔다. 나뭇가지 끝마다 엷은 연두빛을 머금었다. 겨울 내내 모아두었던 힘을 곧 세상에 내보일 것이다. 어린 새싹을 보면 ‘이 세상이 망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장아장 뒤뚱뒤뚱 걸어가는 아이들,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을 볼 때도 그런 마음이다. 시작이며, 진행이고, 또 미래다. 그런 기분으로 동시집 한 권을 읽었다. 권애숙 시인의 ‘산타와 도둑’이다. 그의 시집을 여러 권 읽었기에 동시집이 궁금했다. 시인이 쓴 동시집이 어땠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너무 재미있어”라고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다. 권 시인을 부산 광안리 집필실에서 만났다.
최근 동시집 ‘산타와 도둑’을 낸 권애숙 작가를 부산 수영구에 있는 집필실에서 만났다.
■호기심 많고 울보였던 소녀

권애숙 시인은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살고 있다. 시집 ‘당신 너머, 모르는 이름들’ ‘차가운 등뼈 하나로’ ‘카툰 세상’ ‘맞장 뜨는 오후’ ‘흔적 극장’을 냈다. 김민부 문학상을 수상했다. 동시집 ‘산타와 도둑’은 지난달에 펴냈다.

시인을 만나자마자 동시집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말부터 건넸다. 그는 “내 안에 ‘어린 아이’가 있어요. 그 아이가 썼다고 할 수 있겠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 다.

좋아하는 책들이 가지런한 책꽂이, 넓은 탁자만 있는 소박한 공간에 그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졌다. “전 시골아이였어요. 새까맣고, 비쩍 마르고, 눈빛만 초롱초롱한…. 부끄러움이 많았답니다. 조리 있게 말을 잘 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반장을 시켜주었지요. 소풍날, 반 대표로 노래를 부르라고 해서 나서긴 했는데, 너무 부끄러워서 노래를 부르다가 눈물을 흘렸지 뭐에요. 그래도 노래는 끝까지 불렀어요.”

아이 권애숙이 학교로 가던 길을 동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따라 가보자. “학교로 가는 길은 멀었어요 . 동네를 빠져나와 공동묘지와 여우가 컹컹거리는 굽은 길을 돌아 고갯마루에 닿았지요 . 잠깐 숨을 돌리는 둥 마는 둥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하면 플라타너스와 측백나무들이 운동장을 둘러싼 학교가 보였어요.”

요즘도 이런 길이 있을까. 어린 소녀가 매일 오가기는 좀 힘들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권애숙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친구가 하나 둘 모여 들었다. 아는 이야기가 떨어지면 이야기를 만들며 걸었다. 그 길은 시인의 마음에 오래 남아 세상으로 뻗어 나왔다. 이런 일도 있었다. 교실 창밖을 보는데 어느 집 빨랫줄에 흰 버선 한 짝이 걸려 있는 걸 보았다. 왜 한 짝 뿐일까, 바람에 떨어졌나, 누가 훔쳐갔나 상상했다. 그러다가 버선의 주인은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걸까 하는 생각에 눈물을 주르륵 흘렀다.

호기심 많고 울보였던 소녀는 이제 시인이다. “제가 시인이 될 줄 몰랐어요. 좋아했던 과목은 수학과 과학이었답니다. 그런데 ‘넌 일기를 잘 쓰니까 글을 써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친구들이 제 일기장을 훔쳐보는 일이 많아 화장실 갈 때도 일기장을 들고 다녔답니다.”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들을수록 재미있었다. 어쩌면 그 이야기도 시인 속에 있는 어린 권애숙이 들려주는 것이리라.

■시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법

산타와 도둑- 권애숙 / 달아실 / 2022
권 시인이 동시를 쓰게 된 것은 2015년 동시전문지 ‘동시마중’에서 원고 청탁을 받으면서다. 그 후 5년 여 발표해 온 동시를 엮은 책이 ‘산타와 도둑’이다. 김준철 화백의 그림이 동시집을 장식했다. 어린 시절 그림일기장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다. ‘재밌고 유쾌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고 웃어주었으면 좋겠다’는 김 화백에게 ‘많이 웃었다’고 전하고 싶다.

동시집에서 요즘 읽으면 딱 좋을 동시 한 편을 발견했다. ‘샘과 마중 사이’라는 작품이다. “누가 이름을 꽃샘이라 지었지? / 꽃샘바람, 꽃샘추위 / 왜 그렇게 불러 대지? / 꽃 피는 거 시샘해서 바람이 분다니 / 꽃 피는 거 시샘해서 추위를 몰고 온다니 / 억울하겠다. / 꽃 피는 거 마중한다고 휙휙 / 달려왔을 뿐인데 / 꽃 피는 거 반가워서 펄펄 / 봄눈 뿌리며 춤추었을 뿐인데 / 꽃마중바람! / 꽃마중추위! / 이렇게 불러주면 안 되나?” 마지막 구절을 읊으면서 답해준다. 암, 그렇게 불러 주고말고. 이제부터는 꽃마중바람 꽃마중추위다.

아파트에서만 살아 온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동시도 있다. ‘우리 집 주소’다. “조금만 더 와요 / 모과나무 집을 지나 / 한 번만 더 둘러봐요 / 개망초꽃 핀 계단을 올라 / 가로등 옆 골목 안 / 보이죠? 담장 대신 /키다리 팔손이 손을 흔드는 곳 / 빨간 장미꼿 페달을 밟는 곳 / 끝 집, 아니 돌아서서 보면 맨 첫 집.”

한 미술관의 기획자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초등학생 대상으로 ‘우리 동네, 우리 집 그리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아이들마다 아파트를 그린 똑같은 그림이더라는 탄식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면 앞으로는 아이들에게 ‘집’이나 ‘주택’이라는 공간을 특별히 설명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파트 천지다. 그래서 ‘우리 집 주소’는 더 정겹다.

‘산타와 도둑’은 동시집인데, 어쩐지 시보다 더 깊은 울림이 느껴진다. 쉽고 예쁜 말이어서 읽는 순간 환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고, 어린 시절 추억도 되살아난다. 어디선가 아이에게 주려다가 뺏어서 먼저 읽고 있는 어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재미난 상상도 하게 한다.

권 시인은 시를 쓰는 일이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신을 좀 더 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말’에서 그 마음을 엿본다. “언제라도 세상 만물에 가 닿으면 그들도 내게 와 닿아 절절하게 자신을 쏟아냅니다. 엎드려 귀 기울이면 풀꽃도 돌멩이도 모두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그들의 말을 받아 적는 일, 시는 미완을 완성하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법이 아닐까요.”

풀꽃과 돌멩이를 제대로 보려면 키부터 낮추어야 할 것이다. 아이와 눈을 마주칠 때처럼 말이다. 내 안의 ‘어린 나’와 만나는 순간이 아닐까.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전재수 “생곡 무산 땐 에코델타에 소각장 불가피”
  2. 2센텀2 분수령 풍산 부지보상 본격화…1조 관측
  3. 3‘부산검찰청’ 떼고 ‘공소청’ 간판
  4. 4한달간 부산은 축제도시…‘페스티벌 시월’ 시작
  5. 5김해공항과 ‘50년 동행’ 부산은행…영업점 단독 응찰
  6. 6“부캉이 왜 쫓아내나”vs“먹이활동 안 해 폐사 우려”
  7. 7“부캉이 테마공원 만들자”…동구는 조형물 설치 검토
  8. 8軍·유엔사 “군사분계선 이남 지뢰매설, 北 정전협정 위반”(종합)
  9. 9부산 1000억 문화펀드 조성…퐁피두·라스칼라는 이달 결론
  10. 10HJ중공업 7900TEU급 ‘가닛’ 명명식…중대형 컨선 14척 인도
  1. 1전재수 “생곡 무산 땐 에코델타에 소각장 불가피”
  2. 2軍·유엔사 “군사분계선 이남 지뢰매설, 北 정전협정 위반”(종합)
  3. 3국정원 “우크라가 北포로 송환 비공개 먼저 요청”(종합)
  4. 4‘김종서함’ 울산 진수식 찾은 이재명 대통령 “자주국방이 주권”
  5. 5여야 “軍, 북한에 강력 대응” 촉구
  6. 6北지뢰 1발 추가 발견…대북 방송 재개 등 상응조치 촉각(종합)
  7. 7“통합 논의 항만公 정부 지분, 지자체로 넘겨야”
  8. 8새 광역단체장 재산 1위 김상욱 50억…전재수 6억(종합)
  9. 9[속보] 김여정, ‘DMZ 북한 지뢰’ 발표 전면부인…“서울의 자작광대극”
  10. 10예상보다 무뎠던 검증 칼날…TP원장 후보 기술고도화 초점
  1. 1센텀2 분수령 풍산 부지보상 본격화…1조 관측
  2. 2한달간 부산은 축제도시…‘페스티벌 시월’ 시작
  3. 3김해공항과 ‘50년 동행’ 부산은행…영업점 단독 응찰
  4. 4“부캉이 왜 쫓아내나”vs“먹이활동 안 해 폐사 우려”
  5. 5“부캉이 테마공원 만들자”…동구는 조형물 설치 검토
  6. 6HJ중공업 7900TEU급 ‘가닛’ 명명식…중대형 컨선 14척 인도
  7. 7센텀2 배후지 ‘트리븐 센텀’ 뜬다
  8. 8해운 대기업 부산 이전 효과 내려면…“산업 생태계 구축돼야”
  9. 9반도체 호황에…올 국세수입 478조 역대 최대 예측(종합)
  10. 10삼영이엔씨, 회생계획 인가…3자배정 100억 유증
  1. 1‘부산검찰청’ 떼고 ‘공소청’ 간판
  2. 2전재수 전 보좌진 4명 ‘증거인멸’ 유죄(종합)
  3. 3[한 손 뉴스] 푸바오의 쌍둥이 동생들, 올 연말 중국으로 떠난다(종합)
  4. 4朴시정 선거악재 우려 ‘생곡 용역’ 중단…백지화 소문 키워
  5. 5“110억 투입 부산 의료버스, 플랫폼업체에 예산 1/3 지급”
  6. 6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1일
  7. 74년 방치 창원 짚트랙, 새 체험시설 만든다
  8. 8바리케이드 걷힌 소녀상…2년여 만에 시민 품으로(종합)
  9. 9“비영리법인 설립, 법 기준 세워야”
  10. 10창녕 2세 아들 숨지게 한 父 징역 17년
  1. 1돌아온 금빛 주역들, 프로야구 막판 순위·타이틀 경쟁
  2. 2중원 황인범·투톱 변화…승리 축포 쏠까
  3. 3해볼 만하다…女축구, 8년 만의 AG 메달 도전
  4. 4역시 안세영…AG 2번째 ‘금빛포효’(종합)
  5. 5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중국에 역전승 거두고 결승 진출
  6. 6공격에 쏟아붓다가 골문 열린 모레노호
  7. 79회 4실점 진땀…롯데, 키움에 가까스로 승리
  8. 8일본 대회운영 왜 이러나…한국 육상 남자 400m 계주, 판정 논란 딛고 동메달 지켰다
  9. 9고성군, 통영시 거제시와 손잡고 2029년 도민체전 공동개최
  10. 10한동희 시즌 23호 홈런 '쾅'…롯데, 키움에 4-2 역전승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日 70년史부터 ‘올나잇’ 상영회까지…애니 세계로 초대
미리보는 제31회 BIFF
연상호 ‘실낙원’ 홍상수 ‘눈 둘 데가 없네’ 등 한자리에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익숙한 물건에 깃든 삶의 온기 外
인간 빈자리 차지한 반려 로봇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세계유산 ‘한국의 갯벌’ 얼마나 알고 있나요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박자현-꾸지 않는 꿈
장승택-ayered Painting P60-11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기다림의 미학 /윤종순
빨래 /심여혜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추석 연휴 ‘암살자(들)’ 정상…2위 ‘타짜: 벨제붑의 노래’
‘인턴’, ‘오디세이’ 제치고 정상…허진호 감독 ‘암살자(들)’ 예매율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1일 (음 8월 21일)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30일 (음 8월 20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할아버지·아버지·본인·아들까지 정쟁으로 죽은 김제겸의 글
아침 산안개를 읊은 조선 전기의 문신 월헌 정수강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