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고가장비 탓 그룹활동 대세
- 박성훈 등 14명 30여 점 선보여
- 원작 소실 많아 재편집·재제작
양복을 입은 사내가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본다. 유년시절에서 청년으로, 나이 들어가는 과거의 자신은 마지막 장면에서 거울 밖으로 나와 사내를 위로하듯 꼭 안아준다. 박성훈 작가의 애니메이션 ‘대화(2004)’는 그가 그린 수백 장의 데생을 영상으로 만들었다. 1998년 제작한 ‘자화상’부터 2006년 ‘저끝의 시작 안에서’ 연작을 함께 선보이는 전시 공간에는 영상과 수천 장의 원화가 사방을 가득 메운다. 미세한 표정 하나까지 섬세하게 표현한 그림 한 장 한 장이 모두 작품이다. 평면 회화를 영상으로, 또 공간 연출로 확장하는 이 작업은 미디어 작품을 감상하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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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초기 지역 미디어아트를 조명하는 기획전 ‘새로운 매개들_부산미디어아트의 시작과 계보’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박성훈 작가의 애니메이션 연작 전시.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
2000년 전후 등장한 부산 미디어아트 작품과 역사를 한자리에서 살펴보는 기획전 ‘새로운 매개들_부산미디어아트의 시작과 계보’가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뉴미디어 아트를 추구하는 부산현대미술관이 지역 미디어아트를 집중 조명한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디어아트가 지역에서 처음 움트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20년간 전개됐던 흐름을 기록하고 그 시기의 작품과 재현(재제작) 작품을 소개하고자 기획됐다.
1990년대 후반 부산 미술계는 부산시립미술관 개관, 부산비엔날레 개최, 대안공간의 출현 등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시기이다. 국제 미술계의 흐름이 유입되고 비디오아트 등 다양한 매체의 현대미술 경향이 확산됐는데, 진취적인 젊은 작가들은 초기 인터넷, 컴퓨터, 동영상 카메라 등 다양한 매체를 작품 제작에 접목시키면서 전통 장르 중심의 미술 환경에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미디어를 다루는 작가는 주로 그룹으로 활동했다. 대개 회화나 조각, 설치 작가와 함께 작업하고 전시했던 경향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빔프로젝터와 카메라 등 영상장비는 비싼데다 대학에선 여전히 회화 중심의 교육이 이뤄졌기에 작가들끼리 장비나 기술을 공유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 그룹으로는 1990년대 초 ‘매체이론연구회’를 시작으로 영화와 미술의 경계를 허문 비디오 전문그룹 ‘디지아트’와 ‘인아웃’이 등장했다. ‘픽셀’과 ‘포맷’은 영상, 멀티미디어에 주목했고, ‘미디움’과 ‘코드’는 매체설치 평면 입체 등 다양한 유형의 작품을 포괄적으로 보여줬다.
이번 전시에는 14명의 작가가 참여해 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대부분 원본 작품이 유실되거나 원본의 상태로 재생 불가능한 상태를 고려해 출품된 몇몇 작품은 원작을 토대로 재편집, 재제작된 작품이다. 일부 작가는 최근작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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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국 작가의 ‘스펙트럴시티’.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
박은국(매체이론연구회)은 영화제작 기법으로 촬영한 6개 채널의 영상작품 ‘스펙트럴시티’를, 김상화(디지아트)는 로토스코핑(rotoscoping) 기법의 애니메이션 작품 두 편 ‘꿈꾸는 날’ ‘처용암’을 출품했다.
박동주(미디움·픽셀)는 ‘마그리트 다시 만들기’와 ‘물과 불’이라는 각각 단채널 영상 두 점을 전시한다. 2000년 전후 자신의 작품을 재편집한 작품으로, ‘마그리트 다시 만들기’는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 작품을 영상으로 재해석했다. 독자적으로 활동했던 김희영은 프랑스 유학 시절 제작했던 작품 ‘증강현실 메타 사계절’을 통해 작가 참여적 증강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당시 대안공간 ‘반디’를 운영했던 부산현대미술관 김성연 관장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전개된 지역 미디어 아트의 출발시기에 대한 연구는 지역미술사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도 의미가 있기에 앞으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시는 오는 7월 10일까지 열린다. 무료 관람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